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Mar 02. 2023

맥락! 근조!




<파스칼 메르시어><페터 비에르>는 한 사람의 이름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나 ‘레아’의 작가일 때는 파스칼 메르시어가 되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철학적인 글 ‘삶의 격’을 쓸 때는 페터 비에르가 된다.

외국어가 주는 느낌이라 썩 적확하지는 않을 수도 있으나 

파스칼 메르시어는 로맨틱하며 자유롭고 본명인 피터 비에르는 명료하며 단정하다.

<레아>는 아주 쉽게 읽혔다.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음악에 경도된 딸 레아, 그 딸을 사랑하는 혹은 책임지려 하는 아빠.

그들 사이를 관통해 흐르는 거대 소재인 음악, 주인공 몇몇의 삶이 거침없이 소설 속에서 흘러간다. 



<삶의 격>은 쉬 읽히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무지한 독자인 나는 답을, 

그것도 아주 간결한 답을 원하고 있었는데 

답은 없고 과정이 기록된 글이었다. . 

과정뿐 아니라 결조차 많은 글이었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의 존엄 혹은 인간의 격이 살짝 제시되기도 한다. 

평정과 평상심이 존엄이고, 입센의 노라가 참된 자신을 찾아 나서는 것이 존엄이라는 것.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열린 상태를 내보인다. 

예시된 사람들의 수도 많았고 그들의 존엄은 각자의 위치에서 매우 상이했다.

“존엄은 인간관계를 통해 내가 변할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와 필요하다면 

그 관계를 끝낼 수도 있다는 각오를 의미하기도 한다(쉽지 않다).” 

충실성과 열린 미래가 이어지고 거기에 솔직한 이야기까지 첨언 된다. 



가령 이런 이야기도 있다. 

저자를 찾아온 손님은 사회복지 관청에서 오는 길이었다. 

(페터는 그 장소를 존엄성이 위협받는 장소라는 표현을 썼다.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곳에서 누군가 구토를 했다. 

악취가 풍긴다. 모두가 다 외면한다. 

신사 한 명이 양동이와 물걸레를 찾아 가지고 와서 토사물을 치운다.

바지에 얼룩이 묻었다. 

그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페터의 손님은 말한다. 

해야 할 일을 기꺼이 하는 마음가짐, 그것이 인간의 존엄 아닐까요?



인간의 존엄은 

목적 앞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릴 줄 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글 앞에서 나는 멈췄다. 

수단도 많고 방법도 알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가려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역 검사니까 오죽하랴. 

법을 밀가루 반죽처럼 주무르는 게 그들의 할 일 아닌가,

그런데 솔직히 나같은 민초들도 내 아이가 귀중하면 남의 아이도 귀중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삶의 격까지도 가지 못한다.

어쩌면 유치원 아이도 가려서 가야 할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같은 이야기다. 


내 아이가 그렇게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당연히 내 아이를 나무라고 그 아이에게 사죄해야 하지 않을까, 

미안하구나, 

네가 너무 상처를 입었겠구나. 

어떻게 사죄를 해야 할까.....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용서해다오. 

너 얼른 사과하지 못해?

이렇게 그 부모가 나서서 말했다면 

상처 입은 그 아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까지는 안 했을 것이다. 

사실 정상적인, 아니 상식적인 부모라면 이렇게 해야 하질 않겠는가.

그렇게 해야 겨울 가고 봄 오질 않겠는가, 

그런데 사과는커녕,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검사 변호사 영감님께서 말씀 하셨다. 

수사본부장으로 천거된(아니 경찰에는 그렇게 인물이 없다는 말인가, 경찰의 사기를 팍 꺽는, 마치 잘 마른 소나무 가지 꺽어 아궁이에 넣는 인사 아닌가) 

사람도 많이 알고 지위도 높은 이 영감님은 

아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하여 고소를 하는 기염을 토했고 

이 역겨운 싸움은 결국 대법원 까지 갔다.

그런데 얼마나 상황이 안 좋았으면 

그런 무서운 영감님의 아드님 사건인데도 대법원이 기각을 했을까,


또 하나 매우 흥미로운 것은 

그런 무서운 영감님의 아드님이 택한 서울대학교 철학과다. 

철학은 자신과 사람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주조를 이루는 학문인데

제주도에서 온 돼지새끼...좌파 빨갱이 더러우니까 꺼져라

라고 했던 그 입으로 철학을 할 수 있을까,


더 궁금한 것은 

공부를 못해서 감히 

검사와 변호사를 꿈도 꾸지 못한 나같은 민초의 아들 딸들 조차 

평생 입에 담기는커녕 꿈도 꾸지 못하는

그 상스러운 단어를 

저 높으신 영감님의 아드님은 과연 어디서 누구에게 배운것일까, 



맥락!!!!!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다. 

맥락은 사람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도구이며

단순하고 날카로운 판단을 멈추게 하는 기제다. 

맥락은 모든 관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언어다. 

멋진 단어다. 


그런데 

수사본부장으로 천거되신 검사 변호사 영감님께서 

맥락이라는 이 아름다운 단어를 사형시켰다. 


오늘 나는 그 맥락에 삼가 근조를 표한다.





작가의 이전글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