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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pr 04. 2023

<패키지 여행 예찬>

스포모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의 콜롬버스 동상




아주 오랜만에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이름하여 스포모. 

요즘은 패키지여행에도 럭셔리함과 느림, 자유를 가미한 여행이 생겨났지만 

나의 스포모는 전형적인 패키지 여행.

겨우 12일이란 시간에 그것도 싼 가격이라 직항이 아닌 갈아타는 비행기였으니 

오가는 시간이 2-3일이다.   

더불어 많은 곳을 가봐야 하므로 버스 타는 시간이 많고 

아무리 좋고 마음 맞는 곳을 만나 아, 이곳에 좀 더 있고 싶다고 해도

가이드가 오라고 하는 시간에 맞춰 돌아서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지 않으면 그야말로 진상이자 민폐인이 된다.

그러니 여행의 느긋함은 전혀 없고 마치 일을 처리해야 하듯 아주 빠르게 걷고 

가이드를 잘 따라다녀야 한다.     

작년 가을에는 미국 시누이네 가족과 함께 2주가량 독일 여행을 했다.

조카 아이가 계획을 짰고 숙소는 에어비앤비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취리히를 갔고 

딸과 여행할 때 들른 곳이었었지만 짤즈부르크를 거쳐 다시 독일로 왔다. 

기차에서 내리면 지하철이나 혹은 택시를 타고 숙소를 찾아 들었고 짐을 푼 후 슬슬 동네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 동네 마트를 들려서 

과일과 먹을 것을 사서 저녁과 아침을 지어 먹었다.

관광지도 찾아갔지만 마치 현지인처럼 풍경에 얽매이지 않는 여행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동네 역시 매우 매우 낯선 곳이니 손색없는 여행 아닌가. 

취리히의 집에서는 시차로 새벽까지 잠 못 들어 

결국, 아무도 없는 거실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하염없이 빗소리를 들었다.

정원의 나무와 꽃들에 내리는 빗소리, 정원의 의자 위에 그리고 잔디 위의 소리를 구별하며 들었다.

내겐 아주 근사한 시간었다.        

대만과 동유럽을 딸과 자유여행을 했었다.  

물론 그때도 딸이 계획을 다 세우고 구글앱으로 찾아 다니는 여행,

미술관 위주로 여행을 했기 때문에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먹는 것이 숙제긴 했다.

가끔은 여행 외의 것들이 스며들기도 했다. 

숙소를 찾아가야 하고 밤에 우버를 타는데 안전에 대한 걱정 같은 것,        


 이제는 제주도 여행을 가면 절대 먼 곳을 가지 않는다. 

동쪽에 있으면 동쪽을 서쪽에 있으면 서쪽 주변만 돈다. 

서귀포에 있으면 가운데 주변을 돈다.

그러니 운전하는 시간은 적고 풍경 속에 서 있는 시간은 길다. 

비행기 타지 않고 지방에 가는 여행은 더 그렇다. 

청주엘 가면 청주 주변만 아산엘 가면 아산 주변을 다닌다. 

안동도 그렇고 경주도 그렇다.

편안하고 느리고 자유롭다.      

패키지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가성비다. 

자유여행을 한다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비행기 티켓팅부터 시작해서 숙소예약, 관광지 혹은 미술관 박물관 예약, 

예약해도 시간에 맞춰가려면 숙소에서 찾아가는 동선들도 연구해야 한다. 

그렇게 다 맞춰가도 줄이 길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그런 복잡한 일을 패키지여행이 전부 해결해준다.

가이드가 그랬다. 

“여러분의 여행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지 모른다고.”

곳곳마다 지역 가이드가 함께 했으니, 

하다못해 골목길 투어를 해도 지역 가이드가 함께 했다. 

차를 좀 길게 타면 어떤가, 

피곤하면 잠깐씩 졸기도 하면서 윈도우 투어를 하는 것이다.

가령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를 가는 길, 

이미 예약은 되어 있고, 줄은 길게 서잇지만 

그 지역 가이드가 나와서 우리를 금방 입장시켜 준다.

음식은 마음에 들 때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내가 내 입맛에 맞게 음식을 해도 어느 땐 맛없고 어느 땐 흐뭇한데…….

아 그리고 여행 가서 맛없게 먹으면 살도 좀 빠지고 일거양득 아닌가,

(맛집 투어도 있긴 하지만)

잠자리? 시트만 깨끗하면 되지 무슨,

집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시트도 아니다.  

물론 모로코에서는 약간 베드버그가 있을까, 걱정하긴 했지만,


마치 달리기하듯 스치는 외국 여행이 나쁜가 하면 그렇지 않다. 

조금 더 지체한다고 하여 무얼 더 알 수 있을까, 

많이 바라본다고 하여 깊이에 이를 것인가,  

오히려 내 삶의 대부분도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닐까,

워낙 삶의 양태가 목적 지향주의가 아닌 해찰주의라 

원하는 목적을 향하여 열심히 걷는 것도 괜찮았다.

마드리드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에 광장 네 개를 돌아야 했다. 

가이드가 너무 많은 곳을 넣었다고 말했지만 자기는 다 돌아야 한다고

그 대신 시간이 너무나 없으므로 달리기를 하면서 찍어야 한다고.,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니 가이드는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지상으로 올라가니 벌써 이어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을 달려가고 있었다. 

마침 궁전의 정원이어서 그곳에서 느긋한 산책을 했다. 

이구동성 우리에게 

“안오시길 잘했어요.”

정말 달리기에 정말 발찍고 왔다며,   

얼마나 스릴 있는가, 

앞으로도 패키지 투어를 할 것이다.

물론 자유여행도 마다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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