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베르메르 /캔버스에 유채
편지, 참 좋은 글 태입니다.
단순히 좋다기 보다는 사랑스러운 장르이기도 하지요.
길지도 않고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그런가 하면 길어도 되고 짧아도 되는
품새 넉넉하여 자유롭기 이를 데 없어요.
시처럼 깊은 사고를 담거나 낭랑하지 않아도 되고
산문처럼 지성을 담거나 고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소설처럼 삶의 행간이 녹아있지 않아도 됩니다.
철학적일 필요는 더더욱 없구요.
원한다면 어떤 철학서보다 더 심오할 수도 있습니다만,
편지는 그저 아주 가볍고 고요한 장르이지요.
타인을 아주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에만 쓸 수 있는 글이구요.
가장 깊은 무게를 지닌 글이 편지가 아닐까,
무시무시할 정도로 자신을 드리는 고백록이기도 하니까요.
더불어 다정하기 이를 데 없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제
병처럼 앓게 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누구의 고백일까요. 저 여인 아마도 사랑에 빠져있는 듯 합니다만 또 모르지요, 멀리 떠나있는 부모 형제들에 관한 소식일지두요. 어쨌든 오매불망 그리워하는...그리움 가득한 편지일 겝니다. 아마 날마다 우체부를 기다렸을 것 같아요. 그러다가 편지를 건네어 받고 정신없이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왔을 거예요. 사람들 있는 곳에서는 읽기 싫은 내밀한 편지니까요. 침대와 의자...간결해 보이는 방의 구조이긴 합니다만, 창문이 있어 방은 환합니다. 햇살 탓인지 붉은색의 커튼 보다 녹색의 커튼이 우아해 보입니다. 아, 커튼을 매달고 있는 봉도 커튼과 같은 톤이군요. 빛의 화가라는 별호에 맞게 벽의 색이 지닌 농담은 참 섬세하고 대단해 보입니다.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저렇게 자연스런 빛의 결을 그릴 수 있을까요. 아침부터 날씨가 좋았는지...붉은 커튼을 창문에 걸쳐 걷어놓은 채 환기를 하고 있던 방인 것 같아요. 여인의 성품이 보이기도 하죠. 정갈하고 밝고 순후할 것 같은..... 창문 뒤의 커튼과..그녀의 실루엣이 창문에 비치네요. 자세히 보니 편지를 읽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조금 어둡지 않은가...싶기도 하군요.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지였던가 봐요. 침대 위 과일 접시 좀 봐요. 편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급했던지 아무데나 놓아서 과일은 접시 위에서 굴러 떨어지고....
저보세요. 아주 편지에 몰입되어 있습니다. 눈은 숫제 편지 속으로 편지의 글자들을 눈에 아니 마음에 새기듯 합니다. 얼마나 종이를 반듯하게 펴고 보는지 손에는 힘이 가득 들어가 있구요 세상에 힘줄조차 보이잖아요. 아 이게 무슨 말이지...또 읽고 또 읽는 중인지도 모르겠어요.
편지를 쓴지도 받아본지도 아득합니다. 문득 참 건조한 세상을 살아가는구나 싶어 서늘해지는군요. 손가락 터치 한번으로 지구의 반대쪽에도 보낼 수 있는 마음과 펜을 들고 또박 또박 써내려가는 마음..... 근수가 같을까요. 편지 속 그녀처럼 우울한 시선으로 마음을 들여다보니 영특한 생각도 떠오르던걸요.
...... 너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편지이고 네가 읽는 성경은 그분께서 너에게 보내시는 편지 아니니.......
베르메르의 <편지를 읽는 여인>이란 그림을 보며 생각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