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 미술관 ㅡ 칼레의 시민
온전히 혼자 하는 행위의 으뜸은 아마도 독서일 것이다.
독서가 사람에게 이로운 행위라고 한다면
또한 사람을 성숙시키는 아주 중요한 동기를 부여한다면
책이 지닌 지식이나 책만이 줄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사고는 일차 원인일 것이다.
그보다 더 태생적인 원인은
독서가 지닌 절대적인 고독의 시간....
오직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깊은 외로움의 힘이 아닐까,
책읽기를 싫어하는 것도 어쩌면 책 자체가 싫어서라기보다는
혼자 해야만 하는 절대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래서,
가능하면 미술관도 혼자 가는 것이 좋다.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알았던ㅡ자신과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과거로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힘을 발휘하며ㅡ
사람이 세상을 하직한 날이라면 더욱,
그대는 그제 아침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세상으로 슬며시 옮겨갈 때
말기암의 고통스러움을 고스란히 견디던 몸을 벗어날 때 그대 혹시 홀가분하시던가.
고통에서 건짐 받은 그대의 몸은 건물 어딘가 깊고 차가운 곳에 있었겠지.
그대의 사진이 걸린 빈소에서...
그대에게 헌화할 때
아직 세상을 떠나지 않는 그대의 영혼이 혹 아름다운 사진 언저리쯤...
사진 주변의 가득한 꽃들 사이....꽃이 있어서 혹시 덜 외로우셨을까.... 쯤서
우리를 보고 있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그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몇 방울 후두둑거리며 차창을 두드렸다.
나는 가요,....
빗방울 소리가 그렇게도 들렸다.
그리고 오늘 봄비 치고는 섧게도 비오시던 날
뜨거운 불에 그대의 육신이 활활 타오를 때도
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삶은 그렇게 고독한 것이다.
태어남도 죽음도 온전히 혼자 치러내야만 하는 ....
바로 그래서, 그렇게 그 자리에서 고독은 솟아나고
아무 때나 솟아나고....
그대의 고독이 나에게 다가와 나도 고독했다.
고독해서 미술관에 스미어들 듯 들어섰다.
‘로댕 미술관’ 아니 지금은 ‘플라토 미술관’
아니 이제는 그대처럼 얼마 후면 사라져버릴 플라토 미술관....에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 있었다.
수년전에 분명히 감탄하면서 설레며 보았지만
오늘 내가 만난 그 여섯 사람은 내가 알던 혹은 보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는 바라보는 내가 존재하는 시간이었다면
오늘 그들은 나보다 더 살아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금방이라도 발걸음을 뗄 것 같은 다리의 근육과 팔의 움직임...
깊고 음울한 눈빛들은 더 깊어졌다.
여전히 날마다 어딘가를 항해하는 듯한,
끝이 없는 지평선이 한없이 이어지는 것에 대한...
아 시지프스의 시작과 끝이 저러할까,
저들의 몸들은 절망의 온도를 보여주는것 같았다.
로댕을 위하여 헌정한 집...미술관.......글래스 파빌리온 ....기도하는 손모양의.....안은
오늘 비가 내려선지 맑고 서늘했다.
저잣거리 오고가는 사람의 기운이 덜 해선가.
그 틈새로 로댕의 작품ㅡ
고통스러운 찬 기운이
슬픔이 지닌 서늘함이
비탄이 지닌 비애가ㅡ 부유하는 듯 했다.
사람들은 우상을 원한다. 창조주의 인내와 기다림은 지루할 뿐이다.
우리에게 왕을 주시오. 사람들은 소리치고 권력을 탐하듯 마조히즘에 무릎 꿇는다.
‘칼레의 시민’....을 원하는 사람들도 그랬다.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주는 사람을 원해요.
우리를 다스려줄 우상이 필요해요.
무릎 꿇고 싶은 영웅이 우리에게 강림하시길....
제3공화국시절 프랑스는 프러시아와ㅡ이 패전으로 인한 저하된 애국심을 고양시키려고
업적을 남길 공공건물을 세웠는데 칼레의 시민 여섯 사람도 이때 로댕에 의해 새롭게 탄생된다.
100년 전쟁 때 영국왕은 칼레시가 항복의 의미로 시민을 대신해 칼레 시의 유지(有志)
여섯 명의 목숨을 가져오라고 했다. 이때 칼레 시의 가장 부유한 인물인 유스타슈 생 피에르가
자신이 맨발에 동아줄을 걸고 나아가겠다고 나섰다.
예수처럼...예수 시대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진실과 로댕의 진실은 많이 달랐다.
시민들은 칼레의 시민 여섯 명이라는 영웅탄생을 원했지만
로댕은 말했다.
나는 좌대가 싫소.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영웅들은 좌대위에 높이 서있다)
나는 사람들과 어깨를 마주하고 싶소.
그들과 함께 그들 사이에서 진실을 이야기 하는 사람을 만들겠소.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죽을 만큼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위대한 영웅의 모습이 아닌
고통과 두려움 회한과 비애...그리고 어쩔 수 없는 슬픔과 탄식에 젖어있는
사람 ‘칼레의 시민’이 탄생된다.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시간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비록 여섯이지만 고통은 오직 개인 각자의 몫이라는 웅변을 담은 작품
주변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인물들
고립되어 있으나 고뇌하는 마음은 하나인.
로댕은 “칼레의 시민”이 영웅이 아니라 사람이기를 바랬다.
휘황한 명성이 아닌 진실한 생의 시간을 그는 들여다 본 것이다.
더불어 아름다움은 힘이 약하다는 것을
아름다움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이
고뇌이며 비애라는 것을
그리고 슬픔이라는 것을,
로댕은 알았던 것이다.
피에르드 비쌍....저 과장된 손가락과 뒤틀린 팔은
마치 연극의 가장 통렬한 압점을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
커다란 팔과 뭉툭하면서도 섬세한 발은
전진과 함께 그마마한 망서림을 절묘하게 포착해낸다.
고통이 눈물이라면 그의 몸은 비를 가득 먹금은 구름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깊은 슬픔을 드리우고 있는 그의 눈빛은
보는 사람의 가슴까지 깊숙하게 파고 들어온다.
중앙의 쌩 피에르는 사려 깊고 침착하지만 단호하고 강인해 보인다.
그러나 그라고 슬픔 없으랴,
오히려 그의 슬픔은 소리 없는 탄식처럼 다가온다.
장중한 슬픔을 나타내는 표정의 절규.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사신이여 어서 오라
나를 사랑하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어찌할까, 신이시여.......
절망가운데 신을 부르는 고독한 영혼의 결기가 느껴지는 얼굴,
머리를 감싼 앙드리에 당드르 품안으로 살짝 고개를 들이 밀어 그와 눈을 마주쳐 보았다.
어둠가운데서 더욱 깊고 선명한 눈.
그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노라 고개를 숙였을까,
눈을 아래로 깐 위스타슈는 가야할 길을 아는 자의 고뇌,
그 고뇌에 대한 체념으로 가득한 얼굴이다.
맨발의 사나이들은 모두가 다른 방향에 시선을 두고 있으나
그들은 같은 길을 가야한다.
함께 간다고 해서 완벽한 별리를 향하는길인데 무슨 위로가 있으리,
벗어나고 싶은 두려움은 발걸음마다 더 깊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들의 뒷모습에는 마치 거대한 돌덩어리처럼 보이는 덩어리진 슬픔이 보인다.
문이 다른 세상이라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겨우 아주 작은 문자만을 해독할 수 있다.
고통은 고통으로만이 상쇄할 수 있고
슬픔은 슬픔으로만이 약화된다는,
고통과 슬픔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아남아서
남은 자를 위무해준다는.,...
<세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짐>
<절대 다시 만날 수 없음>
그대가 떠난 아득한 길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푸르른 길을
‘칼레의 시민’들이 살짝 열어보였다고나 할까,
그들에게 흐르던 강철 같은 고독이
그대의 완벽한 부재로 인한 나의 고독을 다독여주었다고나 할까
미술관을 나올 때는
비가 그쳐 있었고 비맞은 오월의 나무들은 더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