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reading
병원에 입원하신 엄마 대신 생전 처음 콩을 심었다.
화분의 흙과 거름을 섞어 부드럽게 만들고 콩 두 알씩을 살짝 묻었다.
과연 그 단단한 콩에서 싹들이 돋아날까,
어느 날, 화분의 흙들이 뭉크가 그린 ‘사춘기’ 소녀의 가슴처럼 살짝 부푼 가 싶더니 며칠 새에 싹이 돋아났다. 거대한 아틀라스처럼 지구를 들어 올린 작은 싹의 힘이라니.....
실제 지구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중력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
그러나 너그러운 중력은 콩이 자라나고 열매를 맺기 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것이다.
어린 싹의 도전 만이랴,
사람의 한 살이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성장은 십대 후반에서 멈추게 되며 성장이 멈춤과 동시에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어느 나이에 다다르면 곧게 솟았던 키조차 작아지고 약해지며 땅으로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점점 눕는 시간이 많아지다가 어느 순간 영원히 중력과 합일하게 된다.
자연의 모든 대소사들이 창조주의 뜻 아닌 것이 없지만
지구의 중력 역시 그의 섭리를 정연하게 보여주는 예표가 아닐지,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며 세상 앞에 겸손 하라는 지극한 싸인.
그림은 피터브뤼헬의 바벨탑이다.
거대한 건물은 구름 위까지 올라서있다.
당당하고 화려하다.
수많은 계단과 사다리 탑은 거침없어 보인다.
바벨은 히브리어로 '혼돈'이란 뜻이라고 성경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bab(문)와 el(신)의 합성어라는 견해도 있다.
창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개역개정) 우리 이름을 날려(공동번역) 우리 이름을 떨치고(현대인의 성경)”
그러니까 바벨탑은 이름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존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허황된 명성에 주력하는 자들의 행위.
그들은 삶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현재만 바라보는 근시안들이다.
바벨탑의 위용은 아름다운 나무들조차 작고 초라해 보이게 한다.
바다조차 건물에 종속된 물줄기처럼 여겨진다.
먼데 산은 아득하기만 하다.
건물을 지어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건물에 압도 되어 건물을 짓는 이가 아니라
건물에 예속된 노예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개 숙이며 일에 몰두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일하시오.
삶에 필요한 돈을 좇다가 오히려 돈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현대인들을 연상하게 한다.
그림의 하단에는 니므롯 왕이라고 칭하는 권력자가 등장한다.
석수장이들은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권력자는 한껏 거만한 표정이다.
화려한 옷에 금구두를 신은 모습이지만 그 역시 바벨탑의 주인은 아니다.
그림을 더욱 자세히 보면 이 거대한 바벨탑은 기우뚱 기울어져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반석 위에 세워져 매우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저기 금이 가고
한 귀퉁이가 흘러내리는 듯한 아슬아슬한 느낌도 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바벨탑의 미완성이다.
마치 우리네 인생의 끝날 같은 모습,
주께서 사랑으로 ‘칭의’ 해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우리의 미래를 바벨탑의 미완성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에게는 ‘바벨탑 본능’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중력을 거스른 치솟는 욕망 같은 것일 것이다.
자족을 모르는 어리석음일 것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피폐함일 것이다.
교회 안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이 혹 자신의 이름을 ‘날리기 위해선지’
남을 돕는 손길이 자신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선지’
혹시 큰 교회를 짓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선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에는 하얀 빨래를 너는 이가 나오고 식물을 기르는 사람도 있다.
권력자가 있는 멀지 않는 곳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지춤을 내리고 큰일을 보고 있는 이도 있다.
그의 뒷모습은 아주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 대목에서는 저절로 미소가 나오고야 만다.
아무리 거대한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생은 결국 아주 소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간다는 브뤼헬의 웅변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브뤼헬은 세 종류의 바벨탑을 그렸는데 두 개만 전해온다.
또 다른 하나는 ‘작은 바벨탑’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아주 작고 섬세한 필치로 바벨탑으로 걸어 들어가는 성직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유심해지는 부분이다.
지금 우리는 헤아릴 수도 없는 바벨탑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계 최대와 세계 최고, 세계 유일을 향하여 부나비처럼 전진하고 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만의 바벨탑.... 작은 지식이나 작은 돈 작은 권력으로
내 이름아래 교만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브뤼헬의 바벨탑을 보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