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테 콜비츠
가을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하늘의 처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오고
땅위의 처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온다고 했던가. 이제 처서 말후이니
풀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것이고
천지는 쓸쓸해질 것이며 벼는 홀로 익어갈 것이다. 시인의 고백 ㅡ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ㅡ 은
기도가 깊은 성찰이자
고독한 행위라는 것을 알려준다.
가을의 기도는 바라고 원하는 것만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선 나를 직시하며 사람들 사이의 나를 객관화하는, 무엇보다 자연의 쇠락을 보며 삶의 쇠락도 바라보라는 권면이다.
<죽은 아들을 껴안고 있는 어머니>
수년 전 케테 콜비츠의 작품과 일기문으로 된 책을 읽었다. 아주 인상적인 한 대목,
“죽는다는 것, 그것은 나쁘지 않다”
그녀는 평생을 죽음과 대화했다고도 고백했으며 나중에는 자신의 묘지에 쓸 부조까지 스스로 만들었다.
케테 콜비츠는 행동하는 양심가였다.
그녀의 조부는 법관이었으나 부조리한 현실과 타협하기 싫다며 목수라는 직업을 택해 땀 흘리며 일했고
외조부 역시 경건한 크리스챤으로 자유와 양심의 가치를 존중했던 사람이었다.
케테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이면서 가난한 자에게 무료로 의술을 베푸는 의사 카를 콜비츠와 결혼한다.
이런 환경 때문에 그녀는 고달픈 노동자의 세상에 눈을 맞추게 되었고
부조리한 현실을 작품으로 표현해 낸다.
그녀의 작품은 어떤 수사도 없으며 부드러운 조화나 섬세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직 본질을 향한 절규만이 가득하다.
노동자· 농민·군인 같은 억압받는 민중들의 모습을 어둡고 강렬한 선 굵은 판화로 표현했다.
그녀는 세상의 고통과 절망을 눈을 부릅뜨고 직시한다.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는 케테콜비츠의 피에타이다.
참척의 슬픔과 고통, 비탄을 온몸으로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던, 아이를 돌보던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니다.
감정이나 이성 같은 것들은 송두리 채 사라져버리고 그저 한 물체....슬픔덩어리 고통덩어리가 되어있다.
작고 가느다란 아이의 몸을 껴안은 채,
마치 아이를 잡아먹을 것처럼ㅡ
아이의 어깨를 껴안고 있는 저손은 마치 아이의 살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지독한 슬픔은 고통과 비탄이 되어 아이의 어미를 악귀가 되게 한다.
차라리 아이와 함께 산화하고 싶은 비탄의 덩어리.
죽은 아이의 모델이 된 페터 콜비츠는 당시 여섯 살, 케테 콜비츠는 36세였다.
11년 뒤인 1914년 8월, 페터는 지원병으로 제 1차 세계 대전에 나가서
20일 만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서 돌아왔다.
두 번째 탯줄을 자른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배웅한 아들이었다.
페터를 잊지 못해 형은 자신의 아들에게 페터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손자 페터도 제 2차 세계대전에 나가서 전사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74살의 콜비츠는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를 제작했다.
작품설명이 책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자식들을 외투 속에 품고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팔을 활짝 펴 소년들을 감싸고 있다.
이는 율법이다. 명령이다.>
탐욕으로 인한 인류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닷가에서 죽은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어린이를 보았다면 케테 콜비츠는 무어라 했을까,
그녀의 작품은 깊은 모성이었으며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했다.
로망롤랑은 페터콜비츠의 작품을 보며 “현대독일의 가장 위대한 문학작품이다.”고 말했다.
미술이라는 장르를 넘어서 인간 본연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충만하다는 예찬일 것이다.
모든 예술의 귀착점은 삶이 그러하듯 죽음에 대한 차분한 응시다.
산화하기 전 가장 화려한 시간을 보내는 단풍도 금방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아름다운 단풍이 소멸을 위한 전주곡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 가을,
케테 콜비츠처럼 그 너머를 응시해 볼 것이다. (교계신문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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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의 초대 친구로서의 죽음
죽음을 영접하는여인 죽음
죽음에 붙들린 여인 죽음이 덤벼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