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들라크루아

천사와 씨름 하는 야곱

by 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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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라는 명사처럼 깊고 넓은 단어가 또 있을까?

가령 산을 오를 때 사람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졌을 자드락길, 그 길을 풀들이 덮어내면 푸서릿길.

숨이 가빠오는 가파른 길도 좋고 그러다가 만나는 평평한 길은 쉼이다.

내리막길은 인생의 저뭄을 생각하게 하고

산이나 바위를 에돌아갈 때 걷게 되는 에움길에서는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봉우리에 올라설 때 펼쳐지는 마을들 그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동네 길은 가슴을 왠지 먹먹하게 한다.

하늘 길 바닷길도 있고 길 없는 길도 있다.

눈에 보이는 길만 길이랴, 슬픔과 분노 증오 사랑에 길을 붙여보라 거기 수레길이 활짝 펼쳐진다.

성공과 실패를 아우르는 가도는 어떤가,

생명의 길처럼 죽음의 길도 있으며 무지한 길뿐 아니라 성찰의 길도 있다.

마음속 수많은 길들은 도무지 몇 갈래인지 셀 수조차 없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듯 우람하고 견고한 나무 세 그루는

마치 꿈과 현실을 미래와 과거를 죽음과 삶을 혹은 밤과 새벽을 나누듯 그림 속 경계를 이루고 있다.

조인스킬머는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는 결코 볼 수 없으며, 오직 신만이 나무를 만들 수 있다’고 노래했다.

그러니 나무는 경계를 이루는 지표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소재이다.

자세히 보면 세 번째 나무의 붉은 잎은 붉은 단풍처럼 보이지만 단풍이 아니다.

나뭇가지가 꺾여서 시들어버린 가지이다.

나무에서 벗어나버린....‘너희는 가지’라는 성경말씀을 어떤 웅변보다 더 확실하게 선포해놓았다.

나무의 오른쪽 아래는 야곱이 직면한 현실세계이다.

말에 채찍을 휘두르고 낙타를 탄 사람 과 짐을 머리에 인 여인등...

야곱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듯 얍복강을 건너는 야곱의 식솔들의 모습도 왠지 불안해 보인다.

형을 속여 형의 축복을 가로챈 죄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대로다.

어른이 되고 일가를 이루어 어떤 누구도 넘보지 못할 부자도 되었는데

그의 앞에 커다란 산처럼 자리하고 있는 죄의 모습이라니

....(야곱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움찔하게 하고야 만다.)

야곱은 순전하기 보다는 약삭빠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을 전부 동원해서 에서의 마음을 풀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사람의 방법으로 죄가 사해 질리는 만무하다.

죄의 근원을 면대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과 두려움은 첨예해진다.

밤이 깊어갈수록 야곱은 더욱 고독하다.

야곱은 홀로 더 높고 깊은 숲으로 올라간다.

상쇄되지 않는 죄의 문제가 별빛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야곱은 깨닫는다.

그는 먼저 남을 위협하며 자신을 보호해준다고 여겼던 날카로운 창을 내려놓았다.

화살이 가득 든 화살통도 몸에서 떼어냈다.

자신에게 권위를 준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자신의 껍데기에 불과한 겉옷을 벗고 모자도 벗었다.

그렇게 빈 몸과 빈 마음으로 주의 사자와 독대했던 것이다.

야곱이 비범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

어둠이 물러갈 때 까지 야곱은 하나님과의 씨름을 계속한다.

애통의 눈물이 비 오듯 흘렀을 것이고 회한의 상념이 수만 근의 무게로 짓눌렀을 것이다.

얼마나 간절하게 통회했을까,

아침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야곱은 온몸의 힘을 다하여 천사의 팔을 붙잡고 들이대지만

천사는 그저 가만히 마치 야곱이 넘어지지 않게 막아주기라도 하듯 붙잡고 있다.

명암의 대비는 선명하고 거친 듯 섬세한 붓터치가 야곱의 근육을 생색하게 드러낸다.

천사의 표정은 ...아이고 이러다가 이놈 다치겠네. 아이 참 이놈....제법이군...당차기도 하지,

그 인내심이 제법이야. ......인제 그만 져줘야지...

환도뼈를 잡은 손에 살짝 힘을 가한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시점이다.

절망이 희망이 되는 순간이다

.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시간이다.

야곱은 바로왕 앞에서 말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야곱이 자신의 인생을 표현한 나그네 길은 실제 공간적 길이기도 하고 무형의 길이기도 해서

지극히 서정적이다.

그 나그네 길의 클라이맥스ㅡ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ㅡ을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생쉬필스 교회의 벽에 그렸다.

화가 말년의 대작이다. (교계신문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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