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나무 숲의 대 수도원 묘지

카스파르 다피트 프리드리히(1774-1840)

by 위영



11월은 한해 중 가장 스산한 달이다. 산 그림자는 깊어지고 사람들의 뒷모습은 고독하다. 아라파호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을 거라는 위무일 것이다. 만물이 쇠락하는 11월에 자살률이 가장 최저치에 이른다는 의외의 보고서를 본적이 있다. 나무에 물오르고 새싹 눈부시게 움터 오르면 자살률도 증가하기 시작해 오뉴월에 정점에 이른다니 예술의 근간이 고통과 슬픔에 기인되어 있다는 것과 맥이 통하는 이야기일까,

<떡갈나무 숲의 대 수도원 묘지>다. 하늘은 이미 어둠이 점령했고 조금 남은 햇살조차 금방 사라지려고 한다. 한 때는 찬란하게 빛나며 사람들의 탄성을 들었을 *수도원은 이미 그 형체조차 없어지고 파사드만 겨우 남아 음울한 우수에 젖어 있다. 허물어져가는 대수도원의 파사드는 마치 죽음과 삶의 경계선처럼 보여 진다. 수도원보다 더 오래 살았을 떡갈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훠이훠이 수많은 잎들을 떨궈낸 겨울나무는 생의 적막함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황량한 골짜기의 수도원으로 장례식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조금쯤 파여 있는 무덤자리가 보이고 비스듬히 기운 십자가는 오래된 무덤을 나타내주고 있다. 스산하고 쓸쓸하기 이를 데 없는 정경이다. 때는 일몰의 시간이다. 웅혼한 기상을 지닌 떡갈나무는 거대하고 비록 형체만 남았지만 수도원의 문은 여전히 높고 아득하다. 그 아래 사람들은 얼마나 작고 여린가, 어두움이 밀려오는데 그 사이로 초승달이 살짝 내비친다. 초승달은 사실 한낮에도 이미 하늘에 떠있다. 단지 눈부신 햇살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작가는 잘 보이지 않는 초승달을 하늘 위에 살짝 그려 넣었다. 초승달을 한참 바라보다가 떡갈나무를 보니 떡갈나무는 오히려 어떤 계절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어둠이 밀려오지만 어둠의 끝은 새로운 날의 시작이 아닌가, 수도원의 파사드를 지나면 혹시 저물어가는 햇살이 아니라 여명의 햇살이 펼쳐질 수도 있지 않을까,

독일 낭만주의 작가인 프리드리히는 자연을 아름답고 무섭게 혹은 영적인 매체로 표현해서 단순한 자연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깃든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작가이다. 실제로 그는 “자연은 인간에게 비판적 자기관찰의 매체여야 하며 예술경험의 궁극적인 의미도 같다” 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의 뒷모습을 즐겨 그렸다. 사람의 뒷모습은 어쩌면 헐벗은 겨울나무처럼 위악이나 위선이 없는 온전한 모습, 무의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의 뒷모습은 사람이 자연의 일부이며 잠시 머무르다 사라질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대자연의 거역할 수 없는 힘과 신비, 광활한 자연과 깊은 숲, 무한한 바다를 통해 신성, 창조주의 섭리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프리드리히는 엄격한 루터파 신자였던 부친을 두었고 열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일곱 살 때 천연두로 어머니를 잃었고, 이후 차례로 두 누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열세 살 무렵 남동생 요한과 발트해의 얼음이 언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갑자기 얼음이 깨지면서 남동생이 죽는 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일설에는 동생이 그를 구하려다 죽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지만 동생의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그를 자연스럽게 고독한 산책자의 자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지팡이와 스케치 도구를 벗 삼아 홀로 숲을 무수히 산책 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 전반에 나타나는 우수를 평론가들은 ‘알 수 없는 우수’라고 했지만 <떡갈나무 숲의 대 수도원 묘지>를 가만히 바라보면 그의 시선이 얼마나 신과 죽음에 천착했는지를...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서성였는가를 느끼게 한다.

어느 평론가의 단언. “일찍이 풍경을 이처럼 ‘비극적’ 으로 그린 화가는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카스파르 다피트 프리드리히의 <떡갈나무 숲의 대 수도원 묘지>는 한해가 저물어가는 11월에 매우 어울리는 작품이다.

나의 내면을 성찰하게 하고 자연을 뒤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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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 수도원은 그라이프스 발트에 위치한 엘데나 수도원인데 프랑스와 스웨덴의 침략 시 요새를 짓기 위해 파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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