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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Sep 03. 2016

크로이처 소나타



                          프랑소아 자비에 프리네의 크로이처 소나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에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



가을이네, 가을이야. 탄식하듯 몸으로 가을이 느껴져 오면 

꼭 듣고 싶은 곡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다. 

3악장으로 구성된 이 소나타는 베토벤이 영웅 교향곡을 작곡할 무렵 지은 곡으로

힘 있고 당당하면서도 투명하기 이를 데 없다. 

1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ㅡ 프레스토가 시작되면 

습기 없는 쨍한 가을 햇살처럼 바이올린의 고음이 나타나면서 

그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내리 꽂히듯 저음으로 비상하며 사위를 투명하게 빛나게 한다.

바이올린의 마디가 끝난 후 피아노 소리가 잇따른다.

마치 가을 햇살을 일렁이게 하는 바람소리처럼,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처럼

부드럽고 다정하게, 

원래 베토벤 이전 시절에는 바이올린 소나타라 해도 피아노의 조주부 역할에 그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곡에서 베토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등히 연주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 형식을 만들었다. 

그래서 어느 사람들은 이 곡을 듀오 소나타라고 부른다.

처음 베토벤은 이곡을 브리지 타워라는 바이얼리니스트에게 주려고 했는데

소문으로는 그들 사이에 여자가 끼어들어 사이가 나빠졌고 대신 프랑스 출신의 크로이처에게 헌정되었다. 

베토벤이 살던 시절도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은지 진원이 확실하지 않은 소문들이

날개를 달고 여기저기 날아다녔는데 그중의 하나가 베를리오즈의 증언이다.

그때 크로이처는 자신에게 헌정된 이 9번 소나타에 대해 ‘난폭하고 무식한 곡’이라는 평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가 베토벤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할지라도 곡에 대한 느낌과 감도는 보통사람들보다 뛰어났을 유명한 연주가가 이렇게 아름답고 강인하면서도 고귀한 음을 들으면서 난폭하고 무식한 곡이라는 평을 할 수 있을까 말이다. 

이 곡이 나온 지 약 팔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62세의 톨스토이가 이 소나타를 제목으로 아주 비극적인 결혼생활을 그린 단편 소설을 쓰게 된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결혼생활에 대한, 살인에 까지 이르게 된 질투심에 대한, 

혹은 사람의 속물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설의 주제이다. 

제목인 그리고 소재인 크로이처 소나타를 피아니스트인 아내와 아내의 연인이 된 바이얼리니스트가 연주한다.

주인공은 소설에서 절규하듯 말한다. 

프레스토를 아세요? 아십니까? 

주인공 남자는 음악을 무섭다고 표현한다. 

자신을 잊게 하고 자신을 전혀 다른 곳에 데려다 놓고 변화시키는,

오래전 작곡가의 시대로 데려가서 머무르게 하는 영적인 힘을 발휘하게 하는 음악! 

실제 크로이처 소나타 이야기는 그 대목에서만 나온다. 

얼핏 보면 정말 하나의 작은 소재이며 제법 멋있어 보이는 제목으로 그칠 법도 하지만

기실 내면은 그렇지 않다. 

주인공 남자가 아내를 살해하게 된 그 무의식 속에는 

바로 이 음악이 주는 매혹, 

즉 아내와 바이얼리스트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연주를 할 때 음악만이 줄 수 있는 교감

그 교감이 사랑에 이르게 하고 그 교감을 그는 질투했던 것이다.. 

1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ㅡ 프레스토를 눈을 감고 들으면서 

새로우면서도 세련된 파리 남자와 남편과의 평이한 삶에 싫증 날대로 난 여인의 연주 광경을 그려본다. 

넋을 앗아갈 듯 한 첫음절이 바이올린에서 시작되며 

음과 함께 남자의 그윽한 시선이 그녀를 바라보고 

그에게 화답하듯 천천히 흐르는 그녀의 피아노 소리 속에는  얼마나 그녀가 그득 담겨 있겠는가. 

사람들 사이에서,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그래서 가장 우아한 간통이 음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  

내게는 삼십여 년 가까이 된 크로이처 소나타 테이프가 있다.

이십 대 초반 무렵 클래식에 입문한 뒤 

(지금도 여전히 입문 상태이지만) 베토벤 테이프라면 무조건 사들이곤 했다. 

그때 돈으로 3500원, 혹은 4000원이었는데

테이프 하나 사면 며칠씩 행복했고 며칠씩 부자가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크로이처 소나타였다. 

잔서 무량함에도 그래도 가을이라 생각하며 오랜만에 크로이처 소나타를 생각한다. 

오래된 그 테이프는프는 몇 년 전 이미 늙은 할미가 되어 늘어질 대로 늘어져버렸다. 

하긴 지금까지 여전하다 하더라도 이제 그 테이프를 넣고 들을 기기도 없다



.                           

.















    크로이처 책의 표지화 파벨 페르 토프의 그림


**

헤밍웨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에릭 로메르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고

체코의 작곡가 야나체크는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영감을 받아'라는 부제가 붙은 현악 4중주를 작곡했다

***

오늘 아침 어디 크로이처 소나타 없나.... 검색을 했더니

어느 의사면서 교수이신 나으리께서 의사신문에 기고한 글이 나왔다.

음악 이야기는 말고 중간 톨스토이 크로이처 소나타에 대한 이야기는 

내 글과 거의 획 하나 틀림없이 똑같았다. 마치  내가 혹시 이분 글을...... 할 정도로 너무 같아서

날자 확인을 했다. 아이고 내용이라도 좀 바꾸시던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라도 좀 넣으시던지....

하긴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읽지 않으셨다면 바꿀 수나 있으리..... 그런데 정말 그러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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