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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16. 2016

나의 그이



사전에도 안 나오는 문장

<미친덕 꺼친덕> 이라는 보성 말이 생각난다. 

무엇엔가 홀려있는 상태에서 다른 일을 할 때 

마치 미친 듯 거칠게 하는 행위를 아마도 그리 표현했을 것이다.  

오 분쯤 차를 타고 원당역을 지나 구파발 방향으로 들어서니

나를 <미친덕 꺼친덕>하게 만든 그이 나타나신다. 

저기 하늘아래 동두렷이! 

나의 그이 우람하기 그지없으시고 늠름하기 형용키 어렵다. 

그 넓고 깊은 품으로 안아 주겠다 팔 벌리며 오라하시니

나처럼 늙은 아낙 홀리지 않을 손가,, 

이십오 분쯤 뒤에 삼천골 입구에 다다랐다. 

아, 정말 미치겠구나!!!! 

차안에서 혼잣말을 했다. 아니 저절로 신음소리처럼 토해져 나왔다. 

혼자라서 삿된 표현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삿된 표현이 가장 적확했기 때문일 것이다. . 

마음이라는 것이 용틀임하듯 내 안에서 움직이며 회오리쳐 오르고

정한이라는 것이 마음속으로 깊게 스미어들어 사무치니

어여쁜가 아픈가 기쁜가 슬픈가, 아름다운가, 고통스러운가,

ㅡ모든 것들이 뒤섞여 혼재하니 도무지 정상이 아닌 것이다.  

나무가 빽빽한 작은 벽돌로 촘촘히 포장되어 있는 그 길에 들어서는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우수수 날리기 시작하는데, 

연갈색 진갈색 붉고 노란 주황 형형색색의 나무 이파리들,

흐느끼듯 춤추듯 

저다지도 어지러우면서 슬픈 춤이 어디 있더라는 말이냐,

저 수많은 가벼운 것들에게 무슨 무게가 있어 

이렇게 사람을 휘청이게 한다는 말이냐, 

어느 뉘라서 저다지도 아취있는 정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길은 어느 때 들어와도 나무 그늘이 짙은 길이다. . 

봄에는 드문드문 찔레꽃 하얗게 피어나고 

여름이 정점일 때는 몇 그루 되지 않지만 개쉬땅나무 있어

신부의 부케로 써도 넘치고 넘칠 우아하면서도 청순한 꽃이 피어나곤 한다. 

올 여름에도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카메라 셔터를 수도 없이 누르며 서있었다. . 

누리장나무의 꽃도 여름 숲에서 솟아나면 나를 멈추고 하게야 마는,  

그러나 오늘은 그냥..... 그냥.....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난 참 소심한 사람이라 뒤서는 것이 편하다.

뒤돌아서는 것들 앞에서 체념도 잘하는 건강한 생활인, 

그러나 ‘스쳐 지나가기’는 잘못한다. 

그래서 오늘은 표현치 못할 우수어린 광경에서 

용감하게 지나가는 연습을 한 것이다.  

낮아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놓아 주기라도 하는 행위를 하는지 

내가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잡자고 하여 잡혀지는 것들 어디 있을까,

나를 피하는 듯 하면 먼저 비켜주자고 내가 말했다. 

내게,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걷기 시작했다. 

감히 산을 오르다는 표현은 내겐 전혀 맞질 않다. 

그냥 산의 품속으로 스미어드는 거지,

길 위로 수북한 나무 이파리들 쌓여서 자기들 세상을 만들고 있으니

새로 만들어진 가을길이다. 

나무에서 져 내린 나무들도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듯

날카로워 있어서 조심해야 된다. 아차 하면 넘어질 수 있거든,

하긴 넘어지면 

혹시 낙엽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북한산 길에서 아마도 삼천골이 제일 사람이 적은 길일 것이다. 

문수봉으로 오르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다. 

단풍 가득 든 그 산에 세상에, 온통 나 혼자다. 

바람이 벗이고 발자국 소리가 또 벗이고 나의 힘든 숨소리가 또또 벗이고

드문드문 청솔모 달려가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리고

위를 보면 색깔 선연한 나뭇잎들이 푸른 하늘아래서 

수많은 가을등이 되어 빛나고 있고 

내 전화기속에서 들리는 첼로 소리는

자연의 소리를 더 크게 해주는 기묘한 작용을 해주었다. 

주황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단풍나무 아래 앉는다. 

고요하다.

온전하다.

온전함이 천국이 아닐까, 

이런 무아가 드리워져 있는 세상이 천상 아닐까, 

산과 내가 

산의 모든 것 들과 내가 합일되는 

그런 시간들이 빛의 세계가 아닐까, 

사람 그림자 없는 호젓한 산을 사람 하나 걷는다. 

온몸으로 산이 느껴져 온다. 

나무가 내 안으로 스며든다. 

나뭇잎의 단풍이 나를 물들인다. 

내 몸을 가볍고 투명하게 말려가는 바람. 

마치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듯 

발이 가을 산길을 음미하며 걷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로 다져졌을 산의 길이 고맙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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