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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03. 2016

팔짱을 낀 당신

12월


자연스레 팔짱을 끼게 하는 차가운 겨울. 팔짱을 낀 당신은 저절로 창 쪽으로 다가설 것이다. 무연한 눈길로 창밖 풍경 가지만 남은 나무 원형만 남은 아무 가식 없는 나무를 바라볼 것이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흠 없는 혼’이 되어 서있는 나무. 흠 없는 혼이 흠 가득한 혼을 바라본다. 나무는 그저 맑고 나는 흐릿하다. 식사 약속이 있어 예약해 둔 방으로 들어서는데 창문이 시원스레 넓었다. 아직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눈이 나풀거리며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아름다운 것은 내리는 모양 즉 순간에 있다. 어느 때는 수줍게 어느 때는 부드럽게 어느 때는 가볍게 어느 때는 경박하게 그리고 어느 때는 찬찬히 구슬프게 내린다. 이 세상 존재하는 것들 중 가장 과정에 충실한 정점을 찍는 것이 눈이다 쌓이기 위해서 내리는 눈이 아니라 내리기 위해서 내리는 눈 창안의 빛과 창밖의 어둠 그 경계선 사이에서 눈은 아주 잘 보인다. 창안의 풍경이 허상이라는 것을 성냥팔이 소녀는 일찍이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12월이면 언제나 지나가버린 내 어린 시절처럼 기억나는 소녀, 그 어린 소녀는 가장 순수한 결정체로서 창밖에서 창안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성냥 불꽃 속에서 소녀는 그리운 할머니와 새로운 곳으로 떠났지만 그 동화를 읽은 우리는 그곳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우리가 보는 것은 죽은 소녀 가엾은 소녀 불쌍한 소녀 얼어 죽은 소녀일 뿐이다. 흠 없는 혼을 바라보고 있어선가, 사실 생각은 아주 깊게 오랫동안의 궁구 끝에 나타는 것은 아니다. 섬광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 할머니를 따라 떠난 소녀가 오히려 여기 우리를, 마치 우리가 소녀를 바라보듯 소녀가 우리를 긍휼 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함박눈 같은 겨울동화가 지닌 깊은 어두움이 이 나이 들어서야 바라보이다니...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나는 드문드문 눈 봉사. 12월, 팔짱을 끼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생각에 젖게 된다. 두 손에 시집도 소설도 그림도 아닌 나라서..그럴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아주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12월이 우리에게 하사하는 선물이다 



비 내리는 시간은 하늘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는 날이다. 창가.. 나뭇잎 사이까지 하늘이 내려와 있다. 비와 눈은 하늘이 사람에게 하는 다정함의 표현, 혹 쓰다듬아닌가.. 그래서 시들어가는 사람조차 좋아하는 사람의 그윽한 눈길을 받은 것처럼 설레게 하는 건가. 한참을 밖을 내다보다가... 신문을 보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그리고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듣고 있다. 왜 하필 8시일까.... 7시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네 시 이십 분이 생각난다.  새벽 네 시 이십 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오후 네 시 이십 분은 젊은 아이들이 마리화나를 피우는 시간이라는,

아 오늘 신문의 그들, 86세 동갑 부부 

그들도 새벽 네 시 이십 분에 혹 결심을 했을까...

밤새 내 침대에 누워서 도란거리며 이야기하다가...

기사에는 없었지만 아마 아주 좋은 포도주 두어 잔은 마셨겠지. 

그리고 술이 주는 약간의 로맨틱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배어있는 기억의

 강물 속을 헤엄치며 다녔을까, 어쩌면 조금 냉정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평생 연인이자 지적 동반자인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보다 늙음을 소진을 쇠락을 더 선명하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늙음이 주는 아픔이나 고통 공포도 섬세하게 느꼈을 것이고.....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던. 누구나 다 죽는다는 그 관념을 그들은 풍부한 지력으로 체화했을 것이오. 그래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약간의 시간차라는 것을 확신했을 것이고 

그래서 떠날 용기를 지닐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참 결 고운 사람들 같기도 하다. 60년을 살아온 부부가 신혼 꿈을 키우던 호텔을 세상의 마지막 장소로 정한 것... 아마 그들은 살아오는 동안 서로에게 아주 예의 바르게 아주 친절하게 아주 로맨틱하게 대했을 것이다.. 평생을 서로에게 지켜온 신뢰나 사랑. 관심 배려는 얼마나 그윽하고 아름다운지. 낯선 여인 혹은 낯선 남자들에게서 느끼는 화려하나 경박하기 그지없는 몰입의 감정이 그들이라고 찾아오지 말라는 법 있었을까, 찾아오고 흔들리고 소진시켰겠지. 그러나 그들은 매 순간 선택했겠지, 그때마다 서로를, 어쩌면 삶은 매 순간이 시작이기도 하지만 매 순간이 마지막이기도 하다. 시작과 끝은 맞물려 있는데... 사람들은 거의가 다 시작을 훨씬 중요하게 여길뿐이다. 

그들의 마침, 그들의 마침표가 아름다운 이유기도 하다.

나는 종교적인 이유로 자살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누추해지면 누추해진 대로 흉하면 흉한 대로 열심히 살다가....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그런 그들을 내가 먼저 기억하며 

그래도 외로울 때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무를 벗 삼고 풀을 동무 삼아 누군가 내 영혼을 데려가실 때까지 

새벽 네시 이십 분의 스산함과 우울, 날카롭고 예민한 시간의 손길을 견뎌낼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새벽기도를 할 때 세상의 무수한 일들 하찮아 보이는 시간이 다가왔다. 그런 후  이내 대범한 마음이 생기며  이루지 못한 것들을 서슴없이 놔버리는, 지니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을 지우기도 했다.

가끔 시간은

내게 다가오는, 

나의 것인가 생각도 들지만, 

시간이 지닌 고유의 색채가 있어,

마치 향수가 사람들과의 합환 작용을 일으켜 그만의 독특한 향이 되듯...

시간도 내게 다가와 나 아닌 어떤 것과의 합일을 이루어가는 게 아닌가..


베르나르와 조르제트 카제...

그들의 죽음으로 알게 된 이름을 

아는 듯 불러보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십이월.


다음 생애에 여기 다시 오면 

걸어 들어가요 우리 

이 길을 버리고 바다로 

넓은 앞치마를 펼치며 

누추한 별을 헹구는 

나는 파도가 되어 

바닷속에 잠긴 오래된 

노래가 당신은 되어 ///강릉, 7번 국도 / 김소연- 잘 닦여진 길 위에서 바다를 보다  


베르나르 카제(Bernard Cazes)는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학교로 꼽히는 국립 행정학교(ENA)를 졸업한 경제학자다. 국가 경제기획 파트에서 일했고, 유럽우주국(ESA)이 1985년 시작한 장기 우주 프로젝트 ‘Horizon 2000’ 그룹에도 예산 파트 요원으로 가담했다. 그는 여러 시사 저널 편집진으로 활동했고, 86년 ‘미래의 역사’와 91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프랑스 아이덴티티의 미래에 관한 에세이’등 책을 출간했다. 말년의 그는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ㆍInstitut français des relations internationals)’의 계간지 ‘폴리티크 에뜨랑제 Politique Etrangere’의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PE 부고기사에 따르면 카제의 소원 중 하나는 “60여 년간 사랑한 아내와 함께 죽겠다”는 거였다. 부부는 그 소원대로 2013년 11월 21일, 40년대 학창 시절 만나 60년을 해로한 86세 동갑 아내 조르제트 카제(Georgette Cazesㆍ고전 교사)와 파리 6구 뤼테 시아 호텔에 투숙, ‘  자살 봉지(Suicide Bag )’로 함께 목숨을 끊었다. 그곳은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특별한 데이트를 즐기던 곳이었고, 아내 조르제트가 대전 중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던 아버지와 재회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두 통의 유서를 남겼다. 한 통은 프랑스 검찰에게, 다른 한 통은 자녀에게 쓴 거였다. 검찰 유서에서 그들은 약물 처방으로 안락한 죽음을 맞을 수 없게 한 프랑스 형법을 비판하며 “평생 일하며 나라에 세금을 냈는데, 조용히 생을 마치고자 하는 지금, 우리는 왜 보다 부드러운 방법이 아니라 잔인한 방법으로 자살할 수밖에 없는가”라고 항변했고, 자녀에게 쓴 유서에는 조력자살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달라고 당부했다. 부부의 딸은 “부모님은 죽음보다 사별과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아야 하는 노년의 삶을 더 두려워했다”라고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당시 프랑스 법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만 인정했다.   프랑스 상ㆍ하원은 2016년 1월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에 한해 수면유도제(치사 약물 사용은 금지)로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웰 다잉 법’을 통과시켰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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