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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03. 2016

비인간적인 고요가 있는 풍경

오후 다섯 시 사십분이었다

 책 여섯 권은  무거웠다.  그래서 품에 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해서 안는 게 아니라 힘들어서도 안을 수 있구나, 사람도 그러네 꼭 사랑해서만 안는 게 아니라 내게 다가오니 내가 할 일이라....  도서관 지하주차장을 빠져 나오니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즈음이 해가 가장 짧은 시절이다. 여름이라면 한낮의 햇살이 여전할 텐데... 노염이라도 부리듯 맹성한 老炎을 자랑할 땐데... 겨울은 마치 정분이라도 나듯 어둠을 불러들이고...들이찬 어둠은 오랫동안 차가운 겨울을 껴안고 있다. 신호등 아래 서니 공존하고 잇는 세가지 색이 선연히 보였다.  아직도 햇살의 잔영을 지니고 있는 푸르른 하늘 그리고 저물어가는 햇살을 몸에 가득 칠하고 있는 불그스레한 일몰 그 아래는 새까만 어두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유별나게 황혼 아래의 산그리메들은 칠흑 같았다. 라이트를 켰다. 설마 차의 라이트에 반응했으랴만, 그 순간 초승달이 보였다. 세상에....프리드리히의 대 수도원의 묘지위에 떠있는 초승달이었다. 마치 초승달을 처음 본 것 같았다. 더할 수 없이 신비롭고 아련하게  처연한 슬픔인 채로...누가 뭐래도 가지만 남은 앙상하고 거대한 참나무 군락...소멸의 전조를 가득 품고 있는 대 수도원의 문, 그 위에 가느다랗게 떠있는 프리드리히의 초승달이었다.   누군가는 초생달을 초사흘달이라고도 부른다던데...오늘이 초사흘인가(집에 와서 달력을 확인해봤더니 초나흘이었다) 거기 그렇게 그대로 한정 없이 서있고 싶었다. 그러나 신호등은 금방 바뀌었다. 다음 신호등에 서서 옆을 보니  그래도 초승달이 보였다. 이파리 져버린 가로수 나뭇가지 사이로...마치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걸쳐 있는 것처럼... 그리고 딱 내 팔아름 정도 되는 거리에서 개밥바라기별이 떠있었다. 초저녁이라 그리도 싱싱해 보이는 게냐, 마치 새초롬한 은교처럼 차가운 듯, 무미한 듯, 무념한 듯 떠있고...나의 초승달 역시 그러했다.   개밥바라기별과 초승달은 참으로 멀고먼 시간과 공간속에서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내 모르지 않거늘, 초승달과 개밥바라기별이 하늘과 함께 빚어서 내게 보내주는 이 황무한 싸인이라니, 고요! 내게 엄습해오는 이 깊은 고요라니, 이 서늘한 충격이라니,  

      

세라 메이틀런드의 침묵의 책은  이즈음에 읽은 책중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책이다. 그는 침묵을 사랑했고 침묵이 그리워서 홀로 황무한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는 황량한 자연 속에서 침묵을 탐험했고 침묵이라는 비밀의 공간속으로 아주 깊게 들어갔다. 강력하고 가혹하면서도 비인간적인 고요가 있는 풍경이 그녀가 가고자 하는 침묵의 세계로 그녀를 인도해주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놓고 다시 지상으로 나와 초승달을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참람한 건물들을 피해 어디론가 숨었을 것이다. 타박타박 내 발자국 소리를 걸으며 집으로 걷다가 소스라치게 깨달았다. 프리드리히의 초승달과 개바바라기별이 내게 보내준 고요는 세라 메이틀런드가 만난 강력하고 가혹하면서도 비인간적인 고요가 있는 풍경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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