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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22. 2016

숲에서

맑고 구슬픈 날씨이다. 천지의 기운이 쇄락하여 처연하기조차 하다. 슬픔과 처연은 맑음 가운데서 온다. 거기 어디 혼과 탁이 끼어들지 못하는 곳, 오직 자연만이 쇄락한 것일까, 사람에게 다가오면 그 맑은 것들은 스며들지 못하고 쭈뼛거리다가 자기들 갈 길로 가버리고 만다. 

 가을이 사라지고 있다. 가을은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져 있다. 계절이 무한공간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 스며든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땅에서 스며 나온다는 것을  차바퀴 구르는 힘으로 따라 움직이는 노오란 은행잎을 보며 생각한다. 도시의 낙엽은 참람하다. 자연을 잊고 사는 도시인들처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혼비백산이다. 그러다가 모두 함께 어두컴컴한 봉다리 속으로 들어간다. 압축하고 또 압축해서  저들을 화장시키는 것은 어떨까,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할 바에야 차라리 산화시키는 것, 적어도 수 날 정도는 낙엽 타는 냄새가 세상을 감싸줄 것이다. 낙엽에 대한 예의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 향기를 흠흠거리며 생을, 삶을 뒤적여보지 않겠는가,  

 숲 가운데서 져 내리는 나뭇잎들은 마치 자기 집을 찾아든 것처럼 안온하고 평안해 보인다. 고요한 숲에서 아주 커다란 소리를 내며 ‘나 이제 돌아갈래’ 기차를 보며 외치는 슬픈 젊음(?)처럼 나뭇잎들은 땅으로 져 내린다. 혹 바람이 불어서 우수수 져 내리면 소녀처럼 즐거워 보이기도 한다. 서로를 덮어주며 서로를 위무하며 그렇게 아주 천천히 땅속으로 스미어들 것이다. 

 숲이 속삭인다. 너의 늙음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향기로울 수도 있지. 

 저물어가는 낙엽의 냄새는 고귀하다. 고답한 향기이다. 꽃의  향기가 화려하고 유혹적이며 사람의 오감을 자극한다면 낙엽의 향기는 사람의 이면을 바라보게 하는 매우 지적인 향기이다. 생의 덧없음을 체감하게 하는 득음의 향기이다. 돈이라는 천박한 소유에서 멀어지게 하는 치료의 향기이다. 권세일지 누림일지, 지위일지,,,그 허탄한 것들을 허탄하게 바라보게 하는 투명한 향기이다.  솔로몬의 잠언처럼 덧없고 덧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서 허무에 대한 철학을 각인시키는 고요한 스승. 뿐이랴. 다시 그의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주며 전진하라는 명료한 사인을 해주는 유능한 코치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안 되는 것, 올가을 단풍은 그렇게 내게 말하기도 했다.  

 생강나무 노오란 단풍도 홍단풍의 붉음도 그리고 복자기의 주황도....모두 함께 어우러질 때 아름답다. 선명한 색이 아니더라도 함께 하면 더욱 빛이난다. 빛이 색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햇살 찬란하면 단풍 아름답다. 그러나 저물어가는 색을 입는 단풍은 그윽하고 그윽하다. 새벽 여명의 빛 속에서 빛나기 시작하는 단풍은 서럽기조차 하다. 언제든 이른 새벽은 슬픔과 함께 존재하니까, 

 어젠 오랜만에 산엘 갔다. 비슷한 속도로 걷는 이가 다가오면 멈추어 서서 보내고 또 보내고 그래서 내내 혼자 걸을 수 있었다. 이미 산속의 나무들은 훨훨 빈 몸으로 서있었다. 얼마나 가벼워 보이는지, 얼마나 자유로워 보이는지 얼마나 담대해 보이는지, 드문드문 아직도 늘푸른 기세로 서있는 소나무 잣나무 노간주나무들이 오히려 초라해보였다. 돌아 갈 곳을 아는 모습이었다. 돌아갈 때를 아는 모습이었다.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숲 가운데서 오랜만에 아주 깊은 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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