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Dec 13. 2016

퇴고

나귀를 타고 길을 가는 어느 순간, 

시인 ‘가도’에게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자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

라는 멋진 시구가 떠오른다. 

한참 자신의 시에 빠져 있던 시인은 

미는 것 보다는 두드리는 것이 어떨까, 

골똘히 생각하다 너무 깊은 생각에 젖어 

그만 시장인 한유韓愈의 행차 길을 침범하였다.

한유 앞으로 끌려간 가도가 사실대로 이야기 하자 

한유는 노여운 기색 없이

깊게 생각하더니 

‘역시 민다는 퇴보다는 두드린다는 고가 좋겠군’하며

가도와 행차를 나란히 하였다고 한다. 

퇴고라는 아주 짧은 단어의 시작점 이야기인데 

여러 가지 삶의 갈래가 숨어있다.

우선 문을 밀다와 문을 두드리다의 차이이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것은 

익숙한 집이거나 익숙한 사물과의 조우일 것이다. 

그러나 문을 두드린 후 펼쳐진 정경은 

아마도 틀림없이 익숙하지 않는 낯설음일 것이다.

그러니 시인 가도나 한유의 고민은 

퇴와 고라는 단어의 어울림보다는 

익숙함과 낯설음의 선택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그들은 둘 다 깊게 생각하다가 두드리는 고를 선택한다. 

익숙함보다는 낯설음을 선택한 것이다. 

하긴 시의 길이 

혹은 인생의 길이 

어찌 익숙함에 있으리오.  

시인이 바라보는 중은 달빛아래 서있다. 

달빛 이라 하면 새초롬한 초생달일까, 

아니면 요염한 그믐 달빛?

그보다는 보름달 같기도 하다. 

나무에서 자는 새를 물끄러미 바라 볼 정도이니.....

더군다나 보름달빛은 지독히 맑으면서도 

아련한 서정을 깊게 포함하고 있질 않는가.

그 달빛 아래 삶을 생각하려고 삶을 떠난, 

혹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한 중이 있다. 

그러니 시인이 바라보는 중은 또 다른 시인일 터. 

오랜 망서림과 깊은 사유 끝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가도는 

그 길 가운데서 한유라는

새로운 벗을 만나게 된다. 

낯설음은 외로움과 동행하는 길이다. 

고난한 길이다.

하여 그 길에는 사람이 적다. 

사람이 적은 대신 만나는 이는 벗이 될 확률이 높다. 

한유만 보아도 그렇다. 

가도와 한유는 오랜 지기처럼 같은 문제로 고민하다가 

행차를 나란히 하게 되질 않는가, 

수많은 사람들 속의 고독보다는 

홀로 서성임이 그윽한 이유가 그것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두려운 선택을 하는 이유도 혹 거기에 있을지.

퇴고推敲는 그리하여

새롭게 변형된 진지함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된다. 

진지함은 언제나 그러하듯 

약간의 망서림과 회한의 빛깔이 어려 있기도 하나

돌이키면서 깊게 사유하게 하는 놀라운 지혜를 감추고 있다

인디언 설화가 하나 떠오른다.

시듬과 사라짐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이 세상 아름다운 것들을 

조물주도 가여이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커다란 보자기에 

세상의 덧없는 아름다움들, 

가령, 

파란하늘 몇 조각, 

아이들 투명한 그림자, 

하얀 곡식가루, 

색색의 꽃빛을 모았다. 

보자기를 펼치니 거기 온통 나비였다. 

어느 젊은 시인은 그 아름다운 수많은 나비 중 

매우 불온한 나비를 바라보게 된다. 

그 불온한 나비는 조물주가 하는 일을 엿보기 까지 한다. 

뿐이랴, 

그 조물주의 하는 일을 새소리로 알려주기 까지 하나, 

불행히도 세상에는 나비가 하는 

새소리를 알아 듣는 귀를 가진 이가 많지 않다. 

어디 새처럼 우는 불온한 나비만 시인이랴. 

삶ㅡ 조물주가 엮어가는 ㅡ 

을 바라볼 수 있는 자 모두 다 시인이리.

겨울이 왔다는 이유로

산엘 안가다가 오랜만에 어제 산엘 갔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끓여서 담고

홍삼 두개 담고

오리털 파커입고

바람막이는 가방에 담고 삼천사로 갔다.

절 뒤를 돌아 산의 초입에 서니

날카롭고 쨍한 공기.....

다른 세상에 들어선것이다.

혼자 타박타박 걷는다.

머리 쓰지 않아도 스며드는 음악 

존필드의 녹턴을 열어놓고

여름에도 이쪽길은 그다지 사람이 많지않은데

추운날 혼자일 수 밖에 없다. 

그새 몸이 굳어졌는지 다리가 무겁다.

부왕동암문 가는길로 들어선다.

고행인가.

고행이다.

고행이라 마음이 보이는지도 모른다. 

마음속 산란함이제법 정리가 된다. 

적어도 산에서 만큼은,

부왕동암문을 거쳐 의상봉쪽으로 방향을 잡고 성곽길을 걷는다.

언제나 그렇지만 

능선에 올라서면 안보이던 사람들이 보인다.

용혈봉 용출봉까지 가는데

그 능선길이 정말 좋다 

아기자기하고 

재미나고

시원하다.

용혈봉 용출봉은 순전이 거대한 바위들이다. 

대개 북한산 봉우리들이 그러하긴 하지만.

그래서 드문드문 소나무만 살아남는다.

낮은듯 휘면서

오른쪽으로는 내내 삼각산이 동두렷이 떠 있다.

이상하게 노적봉은 꼭 달같다. 

달처럼 여겨진다.

하늘아래 바로라 그런가.....

생각을 하다가

문득

밤에, 

휘영한 보름달 뜨는 밤에

저 삼각산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조선시대 산수유기중에서 

몇편을 뽑아 엮은

누워서 노니는 산수라는 책에도 노적봉 오르는 기록이 있다. 

열걸음에 아홉번 넘어지면서 노적봉 이르르고

천민과 두 승려가 먼저 올라가 돌틈에 나무 끼면

올라가...노적봉우리에 오르는....

이정구의 유삼각산기....

근 사백여년전 사람의 글인데ㅡ

그가 보는곳

지금 내가 보고있다는 것,


겨울산은< 시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