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
새해다. 한결같은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오고 흘러가지만
그래도, 새해 즈음이면 창밖을 내다보며 궁구 하게 된다. 잘 살아 가는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70억이 넘는 사람의 얼굴이 저마다 다른 것은 그 삶의 결도 다를 거라는 증빙이니까
내 삶에서 어떻게? 에 대한 답 하나를 적는다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다.
죽음은 울(鬱)하고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죽음은 어떤 존재보다 자연스러운 자연이다.
이별과 아픔, 고통과 늙음이 친근한 벗처럼 죽음의 주위를 서성이고 있지만
그 역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은 더욱 진지해진다.
원하건 원치 않건 가야 할 길이기에, 가야 할 길을 예표 해주기에, 죽음은 삶의 등롱일수도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장 솔로몬의 절창도 죽음 앞에 삶이 무력하고 허무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헛됨을 기억하며 헛되지 않게 살라는 절절한 권면으로
오히려 삶을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아름다운 詩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이란 작품도 죽음의 그림자를 감추고 있다.
한스 홀바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친구인 토마스 모어의 초청을 받아 영국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장 드 댕트빌(Jean De Dinteville)이라는 프랑스 외교관을 만나게 되고
그의 부탁으로 2미터가 넘는 대작 <대사들>을 그리게 된다.
우아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흰 담비 털의 망토는 젊은 대사를 화려하고 기품 있게 만들어준다.
묵직한 목걸이는 왕실훈장이다.
권위를 더해주는 칼집에는 대사의 나이 29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사람은 댕트빌의 친구인 조르주 드 셀브(Georges de selves)로 무려 열여덟 살에 주교가 된,
종교계의 실력가다.
<대사들>은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알레고리적인 함의가 풍성한 작품으로
은유와 상징이 내포된 수많은 소품들이 그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천구의와 원통형 달력이 놓여있고 중간에는 시간과 천문을 측정하는 '투르켓'(Turquet)과 해시계가 있다.
주교 쪽으로 놓인 책에는 25(XXV)라는 숫자가 쓰여 있는데 이는 주교의 나이다.
아래 선반은 지구의가 있고 붉은색 책.. 의 갈피에 십자가가 놓여 있다.
앞쪽에는 찬송가가 펼쳐져 있다. 주교와 텡트빌의 신앙뿐 아니라
작품을 그리는 작가의 신앙까지도 엿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이때 음악은 지성의 또 다른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해선지 류트는 크고 단호한 모습으로 그림 속에 존재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류트의 줄이 끊어져 있다.
줄이 끊어진 류트는 전통적으로 죽음의 상징이다.
작품 속의 이 수선스러운 소품들은 댕트빌의 자신에 대한 설명이다.
문법, 수사학, 논리학, 천문, 기하, 대수, 음악에 정통하며
세상의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과시하고 있다. 탱트빌의 이력서라고나 할까,
그러나 화가는 여기에서 자신의 작품을 끝내지 않는다.
웨스터민스터 사원의 모자잌 바닥에 원반 같기도 오징어 뼈 바케트로 불리기도 한 기이한 물체를 그려낸다.
정면에서는 아무리 봐도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 몇 걸음 살짝 옮기다가 그게 뭐지? 하며 다시 들여다보는 순간,
세상의 영화를 가득 담은 이 작품은 사라지고 해골만 나타난다.
왜상(歪像, anamorphosis)이다.
두 매질의 굴절률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왜곡 각도가 커지는.....
어쩌면 가장 큰 왜곡은
한 사람 속에 자리한 육체와 영혼이 아닐까,
한 사람 속에 거하는 그 둘이 바라보는 세상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한스 홀바인은 한 번 더 관자를 강타한다.
작품의 좌측 위 녹색의 커튼 뒤에 아주 조그맣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 상이다.
가슴이 철렁해진다.
역사의 시작에 존재하시던 분, 역사와 역사의 끝을 관장하시는 분,
그러나 세상의 화려함 속에서 언제나 쓸쓸하게 뒷자리를 차지하시는 그분....,
어느 철학자는 원근법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왜곡된 형상들이 오히려 진실을 내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시 보니 젊음과 권력과 풍요로운 물질과 지성을 지닌 저 젊은 대사들이 허무해 보인다.
해골 앞에서 당당할 자 누구랴,
어제는 히스토리,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은 선물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현재(present)와 선물 (present)은 스펠링이 같다.
믿음의 고백이 가득한 그림을 읽으며 마음이 고요해진다.
한 해의 시작 달이다. 희망과 소망에 가득 찬 시간이라면 좋겠다. 습하고 울한 시간이라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