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ㅡ 교회가 보이는 성탄 풍경
성탄은 고요해야 한다.
성탄은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슬픔 가득한 시간이기도 하니까,
낮고 천한 곳으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지구가 도는 소리를 못 듣듯이
너무나 헤아릴 길 없는 큰 사랑을 작은 가슴으로 알 수가 없다.
도무지 은총이 아니면.....
꼭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 아닌가,
소수의 아는 사람 몇이 그를 경배했으나
경배하는 그들 뒤에서 경배 대신 오히려 예수를 죽이려 하는 자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성탄은 매해 이뤄지지만
그를 죽이려 하는 사람들 역시 왕성하다.
그분은 그분의 ‘존재’대로 오셨는데
ㅡ그 존재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거나 변형될 수 없는데ㅡ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지적인 사람은 지적인 눈으로 예수의 보편성을 보며 거리를 둔다.
부자인 사람은 부자의 눈으로 구유에 누인 예수가 우습기만 하다.
권력을 지닌 자들은 섬기려 왔다는 그의 말이 권력 없는 자의 탄식으로 여긴다.
젊은이는 예수보다는 더 강렬한 것들을
노인은 자신의 경험이 예수보다 우선하다.
성탄을 축하해요. 메리 크리스마스... 하지만
그 말들은 입술에만 떠돌다가 공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여전히 지금도 예수는 슬픔 가득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실 것 같다.
프리드리히의 화집을 보다가 <교회가 보이는 겨울 풍경>과 만난다.
차갑고 싸늘한 겨울이다.
작은 눈가루가 흩뿌리고 있는지, 아니면 금방이라도 날리려고 하는지
구름은 아주 낮게 강림해 계신다.
눈 쌓인 숲 속 구상나무 세 그루가 숲 속 땅의 높낮이에 알맞게 서있다.
더할 나위 없이 안정감을 주는 바위와 함께 나무는
마치 구도자의 모습처럼 하늘을 향해 서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작은 나무들도 있다.
가느다랗지만 누우런 야생의 풀들이 주는 은유도 상당하다.
저쪽 도시에 있는 고딕 양식의 교회가 아스라이 보인다,
화려하고 거대한 모습의 교회를 한참 바라보다가 구상나무로 시선을 돌리면
그제야 구상나무 앞에 있는 십자가 상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바위 곁에 한 사람... 아픈 다리를 지탱해 주던 지팡이는 눈밭 위에 버려져 있고
다리를 구부리지도 못하는 사람이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교회를 멀리 두고 나무 앞에 세워진 십자가... 그 앞에 경배하는이....가
저절로 첫 번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한다.
구상나무는 교회가 되고
저쪽 고딕의 성전은 혹 구상나무의 그림자가 아닌가....
자연을 경외하는 프리드리히의 구상나무는 경건한 <고백>이다.
그의 풍경은 가벼운 산술처럼 저절로 창조주를 향하게 한다.
어제 오후 세시 즈음 외출을 했다.
구름이 우리 동네로 내려앉아 있었다.
아 구름이 이렇게 가까이.... 생각을 하는 순간,
구름이 내 몸속으로 스미더니.... 나를, 내 안을, 내 마음을, 내 영혼으로 들어왔다.
우뇌 좌뇌나 간이나 심장..... 전부를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며 마치 연기처럼 그렇게 감싸 안았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내 구름이 나를 고요하게 하더니 그 안에서 슬픔에 젖게 했다.
는개처럼 다가오던 슬픔,.. 슬픔은....
아 이게 뭐지.... 차 안에서 혼잣말을 하게 하더니...
이내 차창 밖에 눈 한 두 개가 나풀거리며 날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