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캥거루 같던 네가 등을 놀리고 누워 "피곤해" 한마디로 하루의 고단함을 요약해 내던 그때부터였을까
보이지 않는 벽이 두꺼워지더니 땅거미를 따라 엄습해 오는 통증이 잦아졌어.
방치한 사랑니가 본색을 드러내듯 목에 걸린 가시 같은 불안이 까슬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야.
그때도 몰랐어 나는.
욱신거림도 너의 일부라고,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닮아 하나가 되어가는 성장통이라고만 여긴 거야.
문득문득 외로웠지.
언제부턴가 돌아누운 네 어깨를 감싸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해진 거야.
어떤 손길에도 반응이 사라져 버린 너를 볼 때마다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
가까스로 지켜온 낙원의 붕괴를 감지했어.
걷잡을 수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 거야.
마치 용을 쓰며 빠지기를 거부하던 사랑니가 맥없이 툭 제 발로 자유낙하를 시도하던 순간처럼
멍하니 통증이 밀려왔어
더는 내 것이 아닌 느낌도, 내 것이었던 기억도 모두 희미하게 새어나가고 있었지. 은밀한 속살 같은 뿌리를 드러낸 채 떨어져 나온 것이 정말 내 것이 맞는지, 혀를 놀려 어색한 잇몸을 더듬어 보아도 아직 그 자리에 뭔가가 남은 듯했어. 처음부터 제자리가 아니었다는 듯 자꾸만 삐딱거릴 때부터 느껴온 비릿한 피맛은 한 몸이었던 치아의 부재에 알리바이가 되진 못했으니까.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너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었나 봐.
잘난이들의 그것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는 그런 게 있었던 거 같아.
어디에 꺼내놓지도 못하는 어쭙잖은 거시기 같은 게 내게도 있기는 했을 거야.
이미 한참 전부터 붕괴는 시작되고 있었던 거야.
언제부터인가 내 눈치를 보던 너의 핸드폰.
급기야 날 피하고 숨어 다녔어.
사진 찍어달라며 귀찮을 만큼 연신 보채던 너의 전화기는, 날 반기며 웃어주던 너의 전화기는, 포식자에게 쫓기는 들짐승처럼 좌불안석이었던 거지.
그렇게 하루만큼씩 날 떠나고 있었던 거야.
허연 바닥을 드러내고 저물어가는 시답잖은 숯에 불씨를 살려보겠다고 혼자 울고불고...
차마 널 찌르진 못하고 나를 찔러댄 거야.
아팠지, 좋았던 만큼
슬펐지, 꿈꿨던 만큼
살고 싶게 하던 황홀한 일출.
가슴 뛰게 하던 찬란한 일몰.
고백하게 하던 영롱한 별빛.
벅찬 생명력을 불어넣던 새벽 공기.
어제와 다르지 않았던 파란 하늘, 하얀 구름..
한순간 모든 것이 빛을 잃고 의미를 잃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잃었고 살고 싶은 의욕을 잃었다.
무너져내리는 나의 우주를 끌어안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