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이런 나라도, 이렇게라도

by 상상이상

순간순간

함께하고픈 마음.

그렇게 문득,

그렇게 불쑥,

당신을 원해.


오라고 하고,

와 달라고 하고,

기다려 달라고 하고,

웃으며 차로 달려오던 당신을 기억해요.

같이 무언가를 나누어 먹고

곁에 기대어 새우잠이라도 달콤해하던 당신을 기억해요.


짧으면 짧은대로

조금은 더 길면 긴 대로

아쉽지 않은 밤들이 없었음을 기억해요.


일과를 정리하는 당신을 기다렸다

무작정 고속도로를 달려,

어둑해진 낯선 마을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당신을 토닥이며 별을 보던 밤을 기억해요.


졸린 눈을 비비며 아쉬운 마음을 추스르며

들어가는 당신을 애틋하게 지켜보다 집으로 돌아오던 밤을 기억해요.


멋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삶의 틀이 어떠하든

그 삶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처세가 중요하겠지요.


시작이 어찌되었든 주어진 바탕이 어찌되었든

산다면,

살아야 한다면,

멋지게 살아야죠.

멋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후회없이 미련없이 잘 살았노라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즐겁게 살고 싶어요.

산다면 가슴 뛰게 사는 것처럼


소중해... 순간순간이 너무나 소중해.

할 수 있는 모든 보고픔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남김없이...




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헛헛했던 삶에 이질감 없이 내 것이라 느낀 유일한 사람.

나보다 앞서 당신을 살피고 당신의 눈길을 쫓고 당신의 손길에 애달아하며

당신을 중심으로 채워지는 시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당신을 내 것이라 믿어버린 거예요.

어느새 당신 없는 내일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내 거니까... 샴쌍둥이처럼 서로를 끌어안은 채 함께 늙어갈 거라 믿었습니다.

아직 칭얼거리는 물음표들을 곁에 둔 채로도 사랑할 수 있다 믿었어요.

그러기에 더 당당히, 의연히 이 사랑을 지켜가리라 다짐했습니다.
마지막이었으니까,

더는 없는 취사선택의 여지가 없는,

재고의 여지가 없는

어떠한 밤에도 놓지 않을 사랑이라 믿었으니까

어떠한 낮에도 변치 않을 사랑이라 믿었으니까


서로 마음을 확인한 후,

며칠을 빼곤 거의 모든 날들을 함께 했어요.

길들여졌고, 익숙해졌고...

내색은 못하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 당신은 내 여자니까


평소 그런 나의 생각이,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벽에 가로막히고,

그저 그 시간을 수용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우습겠지만

어쨌든 내 여자가,

다른 남자를 향해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해선 안 되는 상황에서...

그저 비루한 제삼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미안해요' 한마디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하고 치명적인 시간이었어요.

당신 말처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무뚝뚝한 당신이기에

'미안해요' 보단,

보다 강력한 힘나는 말들을 기다렸어요.


팔다리 다 잘린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내내...

기다리기만 하는 내내...

날 지켜준 건 '미안해요' 한 마디밖에 없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기다리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어요.

자꾸만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너무 초라하니까

그래서 전화를 끊자고 했어요.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예정 없이 맞닥뜨린 시간이 힘들었어요.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두려워졌어요.

이젠 아니까

그 시간이 어떠한지를...


오늘은 덜할 줄 알았는데

오늘은 오늘의 몫이 있나 봅니다.


잊지 않을게요.

그럼에도 또렷한 보고픔을

그래서 더 선명해진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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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사랑해 달라고,

사랑을 내놓으라고,

사랑다운 것을 보여달라고,

내가 준만큼

너도 나를 사랑하라고

내 사랑에 보답하라고...

보채고 조르고 따지고 압박하는 듯했어요.


9년의 장거리 연애,

그냥 그럴 나이가 되었고

그때 서로가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절절함 보다는 안정감을 찾아

설렘도 기대도 없는 결혼을 했어.


결혼하고 3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은 건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형식적인 사랑 때문이야.

연애때와 변함없이 떨어져 살며

나라를 구해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로 지냈어.

주말마다 애틋한 마음을 나누기는커녕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각자의 피로를 녹여내기 바빴지.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이 점점 뜸해지더라.


안 되겠다 싶었어.

평범하게 남들 정도는 살고 싶다는 마음에

이번에는 결혼이 아닌 임신을 결심한 거야.

아직 누군가를 책임질 준비가 안되었다며

내가 엄마가 되는 일에 협조할 의사가 없는 남자를 설득하는데

몇 날 며칠도 모자라 눈물까지 동원해야 했어..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왜 그랬을까.. 너무 후회가 되지만

아이가 생기면 뽁작뽁작 가족 냄새나는 삶으로

나도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했어.


병원을 찾아 배란일을 받고 한 달에 한번

임신을 위해 노력했어.

그렇게 3개월 만에 임신에 성공했지.

일주일에 5일은 기숙사에서 지내며

혼자 산책하고 직접 산 과일을 챙겨 먹고 가끔 책을 읽으며

별것 없는 일상에 태교란 이름을 붙였나 봐.

안성에서 춘천까지 2시간 차가 밀리면 4시간 걸리는 거리를

주말마다 혼자 오가며 어느덧 만삭이 되었어.


예정일 한 달 전 출산휴가를 내고 처음 남자와 함께 살게 됐어.

신혼여행 이후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함께 살아본 적이 없는 남편이라는 남자와

진짜 함께 살아보게 된 거야. 참 이상하지 않아?

아이는 쉴 새 없이 발로 차고 주먹으로 밀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으니 셋이 함께 살게 된 거지.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반인들 곁에 있는 느낌,

남편에게서 난 그 정도 위안만 느꼈던 것 같아.

한 번은 자려고 누웠는데 누룽지가 너무 먹고 싶은 거야.

까탈스럽게 이것저것 먹고 싶다고 해본 적이 없으니

그래도 한 번은 임신한 부인을 위해,

누룽지정도는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 정도는.. 하고 기대를 품으면

영락없이 실망을 안기는 남자..

"편의점에 누룽지 음료 있잖아.."

친절한 안내에 감사해. 응... 그 정돈 나도 알아..


자정을 넘기며 슬슬 배가 아팠어..

아이가 나오려 신호를 보내는데,

모든 게 처음이고 참는 게 익숙한 엄마는 아침이 올 때까지 혼자 선명해지는 고통을 삼켰지.

출근길에 따라나서 병원에 갔더니 이미 5cm나 열렸다며 당황해하셨어. 양수 터지기 전에 아이 만날 준비에 분주해진 나를 두고 남자는 출근을 했어. 당장 나올 건 아니니까..

응. 남자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내가 웃고 있었으니까...

괜찮다고..

나아질 거라고..

나 때문이니까..

조금 더 참아보겠다고..

혼자 울고 있었으니까...


아이는 혼자 컸어.

한달에 한두번 만나는 아빠,

엄마 껌딱지인 아이를 효자라고 부르는 아빠,

그런 아빠도 낯설어하지 않고 방긋방긋 웃어주는 걸 보며

이제 희미하게 잊혀진 그날 밤, 그 남자아이를 가슴에 새긴 이후

두번째로 핏줄이란게 참 무섭구나 생각했어.

어쩔 수 없이 엮여 헤어날 방법이 없는 관계

무조건적인 용서와 이해, 사랑을 떠안아야 하는 ..

아이의 봄 햇살 같은 미소를 보면

그런 운명을 던져준 것이 미안했어.

그래서 더 행복한척 했나봐.

괜찮다고..

나아질 거라고..

나 때문이니까..

조금 더 참아보겠다고..

혼자만 울게 해달라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처음 혼자 버스를 타던 날을 기억해.

터미널까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좌석을 확인하고 벨트까지 채워주고

기사님께 아이가 내릴 곳을 알리고 챙겨주시길 부탁드리고도 안심이 되질 않아

버스가 점처럼 희미하게 사라질때까지...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어 ..

눈앞에 너를 태운 버스의 흔적이 사라지면서 불안도 사라졌어.

임신을 준비할 때 부터 무겁게 아주 무섭게 나만의 책임이었던 아이.


아이에게 아빠가 있음을, 친구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음을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기죽을 필요 없음을 너에게도 아빠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제는 내가 동행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먹먹했던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

깁고 또 기워 어떻게든 평범해보려는 노력을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미 수차례 눈빛으로 행동으로 헤어지고 깨어지고 부서진 관계

찾아간 사람이나 맞이하는 사람이나 껄끄러워 부대끼던 시간들이 줄어들겠구나 싶어.

나이를 먹어 가정을 꾸리고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마흔은 남녀

그들에게서 태어난 가엾은 아이가 다시금 나름의 자유를 되찾은 날이지.


이제 나는 '시댁' 이란 주소지를 일년 내내 잊고 살다

너도나도 가족을 찾아 대이동을 시작하는 명절이나

남보다 낯설어진 그들에나 한번쯤 아이와 함께 그들을 만나.

'잘 지냈냐' '어떻게 지내냐' 같은 인사를 생략한지는 오래되었어.

뭐, 같은 집에 살면서도 대면대면

따로 먹고 따로 자고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지 모르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뭐가 문제지 싶어.

그래도 가끔 아이 아빠의 안부를 묻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살림을 합쳐야지'하고 충고를 건네는,

할일없는 사람들의 쓸데없는 관심은 나를 불편하게 하지만

이만하면 괜찮아.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자유도 있고

그런대로 괜찮아.


오늘이 그날이었을 뿐이야.

그냥 잊었던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금방 또 잊혀질 별 의미 없는 날,

속이고 싶지 않아서

당신에게만큼은 모두 털어놓고 싶어서

쉽게 소화하지 못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다녀오겠다는 한마디에 울음을 토할줄은 몰랐어.

어른이 된 이후로 소리내어 울어본적이 없는 나는

어릴 때 부터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일에 익숙한 나는

당신을 위로할 방법을 알지 못했어.

내가 부재한 시간 당신을 버티게할 힘나는 말을 알지 못했어.


이런 나라서,

이정도 밖에 안되는 나라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아파할거면..

계속 그렇게 힘들어할거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접으라고..

더 늦지 않게 떠나라고..

당신때문에 나까지 힘들게하지 말라고

나를 힘들게 하지 말라고

나는 지금도 힘들다고..

그럴거면 가라고..

이제라도...






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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