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
희미하지만 광적인 젊음이
지천에 나부끼던 시절이 있었다
솟구쳐오르는 청춘을
뿜어져나오는 열정을
덫없이 뿌리고 다니던 날들
순수는 우리 안에 유일했고
현실은 끔찍히 절망적이었다
짓눌린 무게를 견딜 수 없어
침묵으로 높은 성을 쌓아올렸다
희생과 헌신을 즈려밟고
유리 성 안에서
나는 오직 자유했다
짐승처럼 울부짖고
야만스럽게 탐닉했다
타락한 사재처럼
겁쟁이 위선자로
순결한 자유를 지어냈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무엇이 될수도 없었다
무엇도 아니라서
고개 들 수 없었다
바닥만 보고 걷는다
잔뜩 까라져 걷는다
뭉게뭉게 벚꽃이 쏟아지는데
토닥토닥 햇살이 하염없는데
살곰살곰 봄이 오는데
바닥만 보고 걷는다
잔뜩 까라져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