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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방송작가

방송국에서 프리랜서로 사는 법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이상향

덕업일치

우리는 이런 삶을 성공한 삶이라 부른다


그리고 부러움의 감탄사도 감히 아끼지 않는다

좋겠다’ 

매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일도 일 같지 않겠다..‘하며...

 


글짓기 대회 수상 수두룩. 

백일장 장원.  

국문학과 졸업.  

대학시절 소설론 수업 때, 

개발새발 쓴 소설 당선.

이런 이력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

아마도 방송작가?  

 

초반엔 모든 게 다 좋았다

차마 월급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돈을 받아도

(그 땐,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일만 배우게 해달라며 

다짜고짜 이력서를 들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피디들은 작가들이 고충을 토로하면 

‘너 아니어도 할 사람들이 줄을 섰다’며, 

배짱을 부리는 일도 가능했다. 

라떼 시절 이야기다.)

글을 쓰는 게 좋았다

연휴가 있어 방송이 죽어 

며칠 글을 안 쓸 때는  

쓰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지금도 방송은 여전히 재미있다

이런 저런 사안들에 

내 생각들을 찔끔 녹여보고

내가 아닌 것 처럼 다른 이의 목소리에 실어 

내 이야기도 슬쩍 해보고  

또 그런 글들에 사람들의 피드백이 전해져 오고... 

하는 일들은 생각보다 꽤 매력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직원도 아니고

계약직이나 일용직도 아닌

정부가 발표하는 고용이나 처우 대책에 

어떤 카테고리로도 분류되지 않는 

3지대에 위치한 프리랜서라는 신분은 

방송국에서도 사람을 많이 외롭게 했다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인력의 절반 이상이 프리랜서인데 

회사 내에서 뭐만 해도 

프리랜서는 제외되는 이상한 아이러니!!

 

명절 때 직원들에게 돌리는 배 한쪽에도 

프리랜서는 제외였고 

심지어는 노트북 인터넷이 되지 않거나

프린터랑 연결이 되지 않아 원고를 뽑을 수 없다고 해도 

전산실 관리 목록에서 프리랜서의 pc는 열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의 재미에 빠져 야곰야곰 보낸 세월이 19

9 to 6의 족쇄 없는 

프리랜서의 자유로움은 좋았지만

가끔은 제도권 안에서

조직이란 울타리 안에서 

거센 바람을 피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보다 연수가 훨씬 적은 

직장생활 십 수년차에 

실장이나 팀장 타이틀을 달고 관리자나 

자기 분야에서 뭔가가 돼 있는 이들의 모습을 

인터뷰로 접하거나 할 때는 

묘한 상실감이나

'내가 여태 하고 있는 뭐지?'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날 자괴감에 빠뜨린 건 

이십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거의 제자리 걸음인 원고료였다. 

그 마저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방송이 죽으면 

방송이 죽은 날은 철저하게 제외되고 계산되는..

행여, 원고료를 좀 올려달라 말이라도 꺼내면 

어디는 프로그램이 없어졌네, 

개편땐 프로그램 색을 바꿔야 해서 작가를 바꿔야할지도 모르겠네, 

이런 달라지지도 않는 고정 레퍼토리들로 

기어이 내 목에 칼날을 들이대는 일도 허다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아무리 재미있는 일도 

경제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그건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모래사장 위에 

화려한 경력으로 

글빨(?)을 휘날릴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아니 자주자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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