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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TNG 상상플래닛 Mar 29. 2021

성장의 밑바탕이 된 곳으로 기억되길

상상플래닛 건축 철학 Part.3: 간삼건축 이승한 건축가 인터뷰


사회혁신 창업가들의 상상을 펼치고, 성장을 이루는 공간 ‘상상플래닛’의 시작은 어땠을까요? 우리가 상상플래닛이라는 공간을 이용하기에 앞서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공간을 만들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근길에서 보이는 단단한 느낌의 외관부터 바쁜 와중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리프레쉬룸까지, 상상플래닛에서 접하게 되는 공간 경험은 설계 단계에서 구상되었다고 할 수 있죠.


‘상상플래닛 건축 철학’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상상플래닛의 설계 과정과 공간별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상상플래닛의 설계를 담당했던 간삼건축 이승한 건축가를 만나 상상플래닛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도시의 맥락을 품은 랜드마크의 시작


간삼건축 이승한 건축가는 상상플래닛의 설계를 진행하면서 공간이 들어서게 될 성수동 일대의 맥락을 주의 깊게 봤다고 합니다. 도시의 성장 배경에서 공간의 과거와 현재, 앞으로의 미래를 본 것인데요. 성수동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상상플래닛은 도시의 맥락을 어떻게 담아냈을까요?


간삼건축 이승한 건축가 *간삼건축 제공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이승한이고요. 간삼건축에는 2003년에 입사해서 어느새 18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한 회사에서 성장한 건축가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간삼건축에서 꽤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왔고, 특히 공연장이나 문화시설, 복합공간을 주로 설계해왔습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기능을 섞고, 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Q. 2018년부터 상상플래닛의 설계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맡게 되었나요?

KT&G와는 상상마당 부산의 설계를 진행하면서 첫 인연을 맺은 상황이었는데요. 상상마당 설계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상상플래닛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좋은 기회를 얻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브랜드 컨설팅 단계부터 간삼건축도 참여해 의견을 나눌 수 있었고, 공통적인 생각을 도출하면서 지금의 공간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설계 단계부터 모두가 공감하면서 진행했기 때문에 상상플래닛과 같은 창의적인 공간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상상플래닛 외관 전경


Q. 공유 오피스 설계를 담당하신 건 상상플래닛이 처음이셨나요?

그렇습니다. 공유 오피스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몇 년 되지 않기도 했고요. 특히, 상상플래닛은 기존 공유오피스와는 다른 부분이 많았습니다. 단순히 업무 공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창업가의 성장을 지원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죠. 성장과 휴식, 삶의 질 상승까지 챙길 수 있는 공간이라 설계하던 당시에는 더욱더 새로웠던 것 같아요.


Q. 설계를 진행하실 때, 공간이 들어서게 될 주변 환경을 많이 고려하시더라고요. 성수동에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당시 성수동에서 코워킹 스페이스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 중 하나가 ‘헤이그라운드’였어요. 헤이그라운드와 같은 코워킹 스페이스가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동네도 발전하는 과정이었죠. 반면에 현재 상상플래닛 주변 지역은 설계를 맡았을 때만 해도 성수동의 힙한 느낌은 없었어요. 주변에 공구상가와 자동차 공업사가 밀집한 곳이라서 상상플래닛의 콘셉트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KT&G가 이곳에서 시작하면 도시 자체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봤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의 컨텍스트(맥락)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도시만의 성장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그중에서 우리가 가져가야 될 것은 무엇이고, 바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Q. 도시의 맥락을 가장 눈에 띄게 적용한 것은 아무래도 외관일 것 같아요.

맞습니다. 성동구 자체가 도시를 표현할 때 붉은 벽돌을 많이 얘기하세요. 벽돌로 건물을 만드는 이들에 대해 지원 사업을 한다든지, 벽돌로 만들어진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등 벽돌의 상징성에 대해 성동구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데요. 그렇지만, 저는 상상플래닛을 벽돌로 지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건 과거이자 현재일 뿐이고, 상상플래닛의 역할에 맞게 미래를 보려고 했습니다. 컨텍스트를 따라가되 미래를 바라보는 개념으로 접근을 한 거죠. 그래서 색깔은 벽돌에 대한 컨텍스트를 유지하고, 벽돌을 대체할 수 있는 ‘테라코타’라는 재료를 활용했습니다. 벽돌과 똑같이 흙을 구워낸다는 물성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좀 더 크고 강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로 만들어내면 미래를 생각하는 건물로 보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붉은 벽돌이 연상되는 ‘테라코타’ ⓒtexture on texture


Q. 테라코타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입면 디자인에 관해서 얘기를 나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래 상상플래닛의 입면은 세 가지 디자인이 있었더라고요. 디자인 도출부터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상상플래닛은 크지 않은 건물이기 때문에 요소를 다양하게 쓰지 않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였어요. 크지 않은 건물이 상징적으로 보이려면, 장식 요소를 빼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게 효과적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는 정육면체의 큐브 형태를 구상했고, 여러 요소를 덜어내는 것부터 시작했고요. 형태는 단순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싶었어요.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매일 아침이든 밤이든 출근을 하시게 될 거였습니다. 공간을 이용하게 될 사람들이 항상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창업가였기 때문에 매일 다르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오고 가는 길과 날씨에 따라 달라야 한다고 봤는데요. 그게 여러 장식을 달거나 조명을 매일 다르게 한다고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죠. 이 세 가지 입면 디자인 모두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는 제스처를 쓴 겁니다. 중요한 컨셉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을 멤버들 각자가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며 디자인을 했어요.


상상플래닛 입면 디자인 후보 *간삼건축 제공


첫 번째 디자인 ‘MOSAIC’는 펀칭메탈이라고 하는 구멍이 난 금속 패널을 유리 바깥으로 이중 설치를 하고요. 날씨에 따라서 창문을 닫았다가 열었다 할 수 있게 기능을 구현한 디자인입니다. 누군가는 해가 들어오는 게 싫을 수 있고, 누군가는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는 걸 좋아할 텐데 그런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창문의 열고 닫히는 위치가 매일 달라지는 거예요. 정육면체 형태의 단순함이 있지만, 그러한 행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에 첫 번째 디자인이 나온 거고요. 두 번째 디자인 ‘FOREST’는 유리를 크리스탈 커팅으로 엣지가 있게 붙일 생각이었어요. 유리의 각도에 따라 햇빛이 다르게 들어오기 때문에, 보석 같은 느낌으로 보일 거라는 기대가 있는 디자인이었어요. 마지막 세 번째 디자인 ‘MODULE GRADATION’이 최종 선정된 디자인입니다. 제가 디자인했던 거라 더 애착이 가네요. (웃음)


최종적으로 선정된 상상플래닛 초기 조형디자인 *간삼건축 제공


유리로만 된 건물을 만들면 얼굴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구상한 디자인입니다. 유리는 투명한 재료이기 때문에 내부를 보여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얼굴)을 만들 수는 없죠. 또한, 유리는 완전히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어렵습니다. 개폐가 되는 창호나 프레임이 걸리게 되고,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요소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테라코타 루버’였습니다. 이런 막대기 형태의 테라코타 부재를 ‘바케트(Baguette)’라고 부르는데요. 바게트를 썼던 이유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옆에서 봤을 때는 바케트들이 서로 겹치면서 정사각형의 면처럼 보이고, 정면에서 볼 때는 그대로 바깥이 보이는 가시성 있는 거고요. 빛의 위치에 따라 바게트의 그림자가 떨어지는 것도 달라지죠. 결국, ‘GRADATION’’이라는 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보이는 면이 2차원적이지 않고, 입체적으로 보이길 바랐던 겁니다. 결과적으로 유지 관리와 비용적인 부분을 충족하고, 지속해서 모습을 유지하면서 도시의 맥락을 품어내기에 세 번째 디자인이 가장 좋다는 의견이 모여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빛의 위치에 따라 바게트의 모습도 다르게 보인다 ⓒtexture on texture



공간에 담긴 사려 깊은 디테일


이승한 건축가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공간에 상상 이상으로 많은 디테일이 숨어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디테일 하나하나에 사려 깊은 마음이 담겨 있었기에 공간에 대한 건축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상상플래닛 공간에는 어떤 디테일이 숨어 있을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Q. 이제 상상플래닛 공간에 대해 하나씩 얘기를 나눠볼게요. 1층의 경우는 다른 층과 다르게 외부에서도 잘 보이게 설계된 것 같아요.

저층부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고, 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1층은 굉장히 크고 투명한 유리로 안이 잘 보이게 만든 겁니다. 보통의 오피스 공간은 누군가가 지키고 있고, 쉽사리 들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는데요. 상상플래닛은 안에서 누군가가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며 편하게 있는 모습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길을 걷다가 누구나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저층부는 개방되고 투명하게 만든 거죠. 그래서 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 건물 자체로 보여줄 수 있길 바랐어요.


바깥에서도 잘 보이는 1층 커넥트홀 ⓒtexture on texture


Q. 1층 커넥트홀을 처음 접했을 때 무대를 둘러싼 좌석 배치가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주위를 계단식 좌석이 둘러쌓은 형상인데요. 이러한 배치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있을까요?

얼마 전에 KT&G 상상 스타트업 캠프의 더 데뷔가 커넥트홀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공간을 설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데모데이’와 같은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였습니다. 다만, 데모데이라는 용도 하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지는 않았죠. 행사가 매일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데모데이 같은 행사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어요. 이 공간을 설계할 때는 데모데이와 같은 행사를 하나의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해봤습니다.


예전에 ‘통영국제음악당’의 설계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데요. 공연장이라는 공간이 가장 흥미로운 점은 모두 다른 좌석과 다른 위치에서 무대를 본다는 점입니다. 보는 곳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는 거죠. 누군가는 얼굴을 굉장히 가깝게 볼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소리가 굉장히 잘 들리는 경험을 할 겁니다.


1-2층 커넥트홀과 코워킹 라운지 초기 단면 계획 *간삼건축 제공


커넥트홀도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00명 이상의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무대를 중심으로 크게 4개의 레벨로 좌석을 나누었어요. 살짝 내려가는 계단식의 공간은 1.1m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큰 차이가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 차를 마시거나 회의를 하더라도 힘들이지 않고 바닥 레벨에 내려가서 쓸 수가 있는 거고요. 이렇게 하면 벌써 두 개의 레벨이 생기는 셈이죠.


다른 두 개의 레벨은 2층과 연결됩니다. 하나는 2층의 오픈 코워킹 라운지이며, 또 하나의 레벨은 1층과 2층이 이어지는 계단입니다. 1-2층을 하나로 연결하고, 2층 라운지와 계단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사람들이 둘러쌓으면 공연을 하거나 발표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관객이 꽉 찬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죠. 계단도 폭을 넓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매달려 있어도, 계단을 이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레벨로 구성된 커넥트홀 ⓒtexture on texture


Q. 4층부터 7층까지는 플래닛 멤버를 위한 사무공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회혁신 창업가를 위한 사무공간을 만들 때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나요?

설계를 진행하면서도,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진행했습니다.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멈출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한 것처럼, 공사가 완료되었어도 세상은 계속 바뀔 것이고, 코워킹 스페이스라는 공간 자체의 운영 방법도 계속 바뀔 거라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공간 별로 역할 정의를 해두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장이 바뀌어도 쉽게 변형이 되게 설계했어요.


SMART MODULAR OFFICE 평면 아이디어 *간삼건축 제공


‘스마트 모듈러(SMART MODULAR OFFICE)’는 가구 시스템과 유효 이격거리 확보에 최적인 1,800mm 모듈로 동일하게 구획해 평면 가변성을 높인 겁니다. 가구의 크기, 가구와 가구 사이의 간격을 미리 검토한 다음에 그에 맞춰서 외벽과 내벽 기준을 모듈로 정했어요. 결국 건물이라는 것은 20년 이상 쓰게 되는데요. 인테리어 공사는 몇 년 만에 바뀔 수도 있어요. 상상플래닛은 모듈로 구획해 만든 공간이기 때문에 간격에 맞춰서 위치를 조정해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게 만든 거죠. 전체 면을 같은 모듈, 같은 기둥 간격, 같은 유리 크기로 만들어 어떻게 변해도 쓰기에 편할 수 있게 만든 개념입니다.


2x2 모듈로 구성된 8인 미팅룸


Q. 상상플래닛에는 다양한 종류의 라운지가 있는데요. 어떤 차별점을 두고 설계를 하셨나요?


#스케일업 라운지

5층부터 7층까지 세 개 층을 뚫은 ‘스케일업 라운지’는 높은 층고 아래로 해가 가장 잘 들어오게 했습니다. 스케일업 라운지가 지금과 같은 녹지 공간으로 조성된 이유 중 하나는, 성수역 주변에 쉬거나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일만 잘할 수는 없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햇볕을 받으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치 공원처럼 해가 잘 들어오는 곳에 식물을 놓고, 바닥도 잔디처럼 표현을 한 거죠. 마치 캠핑장에서 쉬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스케일업 라운지 초기 계획 *간삼건축 제공


3개의 층을 뚫고 굳이 계단을 만든 것은, 멤버들이 한 번씩 내려오면서 마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내려가거나 올라오면서 모르는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마주치고, 친해지길 바랐습니다. 디스플레이를 붙여놓은 이유도 각자 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잠시 쉬러 왔다가 다른 팀이 만든 결과물이나 홍보물을 보면서 답답했거나 답이 안 나오던 것들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도 있었어요.


캠핑장이 떠오르는 스케일업 라운지의 풍경


#커뮤니티 라운지

8층의 ‘커뮤니티 라운지’는 완전 다른 생각이었어요. 2층부터 7층까지의 공간이 사무공간으로의 기능을 하기 위해 모듈과 형태를 아주 단순하게 만들고, 변형이 쉽게 만들었다면 커뮤니티 라운지는 아예 형태가 달라요. 처음부터 콘셉트를 ‘집’으로 생각했어요. 보통 다른 오피스 같은 경우에는 사무공간 내에 일부 공간을 가구나 책, 소파를 놓고 휴게공간이라고 하는데 커뮤니티 라운지는 좋은 단독 주택의 거실, 방, 욕실 같은 느낌의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붕은 집 모양의 박공지붕으로 만들고, 바닥에는 마루가 깔려있으며, 자거나 씻을 수 있는 공간들을 배치했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집과 같은 편안함을 주고 싶었어요.


작은 마을처럼 보이는 지붕 계획 *간삼건축 제공
햇볕이 스며드는 커뮤니티 라운지 ⓒtexture on texture


Q. 말씀 주신 8층에 있는 ‘리프레쉬룸(수면실)’과 ‘샤워실’은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제가 예전에 24시간 돌아가는 데이터센터를 설계한 적이 있습니다. 직원이 많지는 않지만, 서버 장애가 발생하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수면실이 꼭 필요했어요. 참고차 다른 데이터센터를 보러 갔었는데 수면실에서 사람들이 코를 골고, 옷을 너저분하게 널어놔서 정말 들어가기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공간에 수면실을 만들 기회가 생긴다면, 저렇게 만들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웃음)


상상플래닛도 긴 시간 동안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언제든지 쉬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수면실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누가 옆에서 부스럭대거나 코를 골면 잠을 자기가 어렵겠죠. 또한, 잠을 잔다는 게 누워서 바로 잠드는 게 아닐 수도 있죠. 잠깐 누워서 머릿속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다른 요소로 인해 신경 쓰이는 것을 막고 싶었어요. 리프레쉬룸에서의 소음이나 방해를 받지 않을 방법은 팀 멤버 중 한 명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것입니다.


벽이 ‘ㄱ’ 자로 꺾이는 리프레쉬룸 *간삼건축 제공


리프레쉬룸을 잘 보시면 벽이 ‘ㄱ’ 자로 꺾여있습니다. 한쪽 방의 문을 열면 침대가 아래에 있고, 반대쪽 방은 사다리를 타고 침대로 올라가는 구조로 벽이 나뉘어 있는 겁니다. 방의 크기를 키우지 않고, 2층 침대를 만들지 않고도 각자 다른 방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거예요. 1인 샤워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벗은 모습을 보는 게 민망할 수 있잖아요. 오롯이 혼자 샤워를 하면서 기분 전환하길 바랐습니다. ‘공유’ 오피스에서 일하지만, 적어도 잠을 자거나 씻는 순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했어요.


환기나 채광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독립적으로 사용을 하지만, 결국 여러 명이 쓰는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리프레쉬룸과 샤워실에 창문을 만들어놨어요. 언제든 환기를 할 수 있고, 빛을 통해 자연적인 살균을 할 수 있죠. 창문의 위치와 실의 구성을 지그재그로 만든 건 창문을 통해서, 외부에서 안쪽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한 겁니다. 프라이버시는 지켜주면서 채광과 환기는 유지하는 장점이 있어요.


온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리프레쉬룸


Q. 혹시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신경 쓴 디자인의 디테일한 부분이 있을까요?


#정방형설계

건물을 지을 때는 허용 가능한 크기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땅의 경우 건폐율이 60% 이상을 넘어가면 안 되는 대지였어요. 상상플래닛을 설계할 때는 차를 집어넣어야 하는 주차장도 필요하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주 출입구와 위치들이 중요했는데요. 땅의 모양이 직사각형이면 그것에 맞춰 장방형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지금 바로 옆에 성수AK밸리도 그렇게 되어 있죠.


정방형(좌)과 장방형(우)의 매스 대안 *간삼건축 제공


하지만, 저희가 정방형을 주장했던 이유는 형태에 대한 완결성도 있지만, 멀리서 이곳으로 다가올 때 건물이 잘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려 길의 한쪽으로 건물을 최대한 보이게 해야 하거든요. 평소 하던 대로 땅이 직사각형이니까 길게 만들어버리면 건물이 뒤로 밀려서 다가올 때까지 보이지 않습니다. 상상플래닛이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서는 빨간빛의 큐브가 어디서든 잘 보여서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다가오게 만들어야 했죠.


#테라코타 루버

입면에 관해 얘기할 때 말씀드렸던 테라코타 루버는 아무 위치에 놓은 게 아니라 루버의 위치에 따라 열리는 창문이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바깥에서 봤을 때 창문과 같은 프레임이 덜 보이길 바랐어요. 그리고 혹여나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루버가 있어서 막아주는 역할도 하고요. 대신, 사람들이 전망을 보거나 빛이 들어오는 장소는 루버 없이 깨끗한 유리로 구성했습니다.


루버의 위치에 따라 배치된 창문


#서포트존

5층을 예시로 들어볼게요.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면 누구나 이용하는 스케일업 라운지가 나옵니다. 라운지니까 좀 떠들어도 되죠. 하지만, 바로 옆이 사무공간이기 때문에 중간을 ‘서포트 존’이라는 버퍼의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일하는 곳과 쉬는 공간 사이를 회의실, OA, 폰부스 등으로 막은 거예요. 소음을 1차로 막을 수 있는 방패 같은 공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사실, 이런 디테일은 사람들이 잘 모르시죠.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건축가는 필요한 것을 기능적으로 풀면 되는 거고, 사람들이 그런 것을 불편해하지 않고 잘 쓰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잘 만들어낸 공간, 마음껏 자유롭게 쓰길


어느덧 설계를 시작하던 당시로부터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상상하던 대로 다양한 사회혁신 창업가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고, 많은 멤버가 공간에 애착을 갖고 이용하고 있어요. 이승한 건축가도 종종 상상플래닛의 최근 소식을 접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건축가가 바라는 공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Q. 아마 직접 설계한 공간인 만큼, 모든 공간에 애착이 있으실 것 같아요.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을 하나만 고른다면 어떤 공간일까요?

다 애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스케일업 라운지가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공간을 제공하는 게 쉽지 않다고 봐요. 대부분은 한정된 땅에서, 한정된 사업비로 많은 효율과 이익을 얻어야 하잖아요. 휴게공간을 조성하지 않고, 업무공간을 더 만들어서 수익을 높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도 이런 공간이 코워킹 스페이스에는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 것이고, 그만큼의 희생을 한 겁니다. 스케일업 라운지와 같이 3개 층씩 뚫린 공간이 로비가 아닌 곳에 만들기란 쉽지 않거든요. 사람은 공간의 차이에서 굉장히 다른 감정과 힐링을 느껴요. 좁고, 낮은 공간에만 있다가 높고, 넓은 공간으로 가게 되면 심리가 안정되고, 재미도 느끼고, 에너지도 받는 거거든요. 처음 온 분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갑자기 되게 넓고 시원한 공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런 효과를 내는 공간이기 때문에 스케일업 라운지에 애착이 있어요.


Q. 스케일업 라운지에 있는 해먹은 개관 초기에 플래닛 멤버 중 한 분이 기부해주셨는데요. 애착을 가진 공간을 이용자가 잘 이해한 사례로 기쁘게 느끼셨을 것 같아요.

너무나 의도대로 쓰고 계셔서 신기했어요. 스케일업 라운지를 앞으로 더 자유롭게 쓰시길 바라고 있었는데, 별다른 설명이 없는데도 해먹과 같은 것들을 놓고서 쓰겠다 하신 것만으로도 저의 의도를 이해해주신 것만 같아 기뻤습니다.


플래닛 멤버가 기부한 해먹


Q. 상상플래닛이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자기 성장의 밑바탕이 된 곳으로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상상플래닛을 통해 성공하는 분들도 많이 나오실 거예요. 물론, 성공 못 할 수도 있죠. 성공 여부를 떠나 20~30대의 추억 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날을 추억할 때 스케일업 라운지에 앉아 멍하니 해를 바라보면서 미래를 그렸던 순간을 떠올리는 거죠.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성장했던 곳으로 기억해준다면 저한테는 정말 큰 보람일 것 같아요.


Q. 끝으로, 앞으로 상상플래닛 공간을 이용하게 될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공간을 쓰셨으면 좋겠어요. 운영팀에도 적극적으로 제안을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저희가 8층의 의자나 가구를 고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마룻바닥에서 요가를 할 수도 있고, 춤을 출 수도 있고, 명상을 할 수도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저희는 어떻게든 잘 쓸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으니까 이제 이 공간을 어떻게 하면 재밌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얘기하시면 됩니다. 아마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재밌는 아이디어가 가득해져 설계 단계에서는 상상하지 못한 공간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그동안 ‘상상플래닛의 건축 철학’ 이야기를 시리즈로 전해드렸습니다. 이승한 건축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상상플래닛이라는 공간에 담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전할 수 있었어요. 인터뷰에 응해주신 간삼건축 이승한 건축가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초기 사회혁신 스타트업이 상상플래닛을 성장의 밑바탕이 된 곳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가꾸고, 양질의 성장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겠습니다. 공간으로부터 비롯될 사회혁신 창업가들의 성장을 지켜봐 주시길 바랄게요!



<상상플래닛 건축 철학>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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