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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통샤인머스캣 Mar 03. 2021

마음의 동안 시술


 얼굴을 볼 때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사람에게 누군가로부터 '어쩜. 동안이시네요'라는 말을 듣는 것은 무척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물론 나이에 맞게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신경 쓰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나마 조금 어려 보이는 것이다. 마음에도 동안 시술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뇌의 조건을 만드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유연한 심리적 대처기술을 갖추고, 나를 둘러싼 환경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도록 적응시키는 것이다.  


분명한 진실은 시간을 거슬러 갈 수는 없다.

 

성경에서 바울은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고 삶의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한다. 우리도 어떻게 하면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면서 삶의 문제와 역경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첫째로,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와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사랑하기만 해도, 아름다운 것만 보기만 해도, 좋은 것만을 경험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매번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마치 수도꼭지를 틀면 펑펑 나오는 물처럼 자신의 시간도 그렇게 풍족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내일은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다. 알다시피 우리는 단 한 번 산다. 욜로 YOLO(You only live once)라고 말하면 좀 색다르게 들리지만, 누구나 한 번 산다는 삶의 진실 앞에서 고민을 하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어떻게 시간을 쓰며 보내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되는 가치를 중심으로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중요한 일에 집중하면서 사사로운 일들은 양보하는 것이다.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우리의 금쪽같은 시간과 바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나는 내 시간을 소중한 가치를 위해 잘 쓰고 있는가? 사랑을 자신의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여긴다면,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을 자신의 처지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계획하고, 계획대로 실행했는지 점검해야 한다.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은 다양하게 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거나 공동체에 적당한 기부를 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공익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책임감을 다해 일을 할 수 있고, 시간을 더 내어 아이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켜 그대로 실천한다면, 자신의 삶이 좀 더 의미 있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때로 우리에게 닥친 문제에 압도되어 시간의 소중함을 잊을 때가 있지만, 언젠가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숙고해낼 때, 그 문제를 돌파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죽음이 주는 지혜를 언급했다. “제 경험으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내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온갖 자존심, 당황하거나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마음, 이런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떨어져 나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게 됩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뭔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미 발가벗겨졌습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췌장암을 진단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발가벗겨진 심정으로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만 남게 됨을 알았고,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가치를 위해 전념해야 후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평생 호스피스 환자를 돌봤던 의사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7가지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고 정리했다. 그것은 죽을 만큼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던 것과 더 일찍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했던 것과 이런저런 걱정을 하느라고 정작 행복을 만끽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마음을 열고 포용하지 못했던 것,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아보지 못했던 것, 아등바등하느라 삶의 여유를 가지고 살지 못한 것과 마지막으로 있는 그대로 삶에 감사하며 살지 못했던 것을 들었다. 죽음의 그림자를 뒤로 하고,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 것도 귀한 일일 테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이 없기에 동시에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는 환자들의 모습은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 없이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는데, 우리의 서글픈 모습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죽음의 문턱에서야 잃어버렸던 삶의 의미를 깨닫는 우매한 존재들일까. 죽음의 그림자를 미리 느끼며, 자신의 가치에 집중하기 위해서 필자가 고안해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에도 한 번 소개를 한 것 같다.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난 뒤 잠시 거울 앞에 서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덮어놓는다. 이때 나는 잠시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0초에서 20초 동안 눈을 감는다. 처음 해보면 정신이 바짝 들면서 잡념이 사라지거나 어떤 연상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일단 죽었다고 생각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한참 후에 눈을 떠볼 수도 있다. 눈을 뜨기 전에, 만약 조물주께서 하루를 더 살 수 있게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면. 나는 어디에다 나의 삶의 열정을 불태울 것인가? 내 감정과 생각을 따라가 본다. 하루가 다시 주어진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좌우명이나 소중한 가치를 숙고하고, 떠오르는 말이 있다면 한 번 말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의미 있는 목표 2가지를 말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간단히 ‘오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다 ‘ 정도로도 괜찮다. 작은 결심을 새겨도 좋다. 컵에 물을 따라 축배를 들듯 삶이 다시 주어진 것을 축하하며 건배사를 말하듯이 삶을 흥겹게 시작하는 분위기를 내볼 수도 있다. 우리가 긍정적인 태도를 갖춘다고 해서 결과까지 다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같은 상황에서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에 더 나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하루를 시작할 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연습은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진지한 마음이 들 수 있고, 오늘 하루를 반드시 행복하게 살아내겠다는 절실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고, 오늘이 지나면 죽음에 하루 더 다가가는 셈이다. 그러다 분명 죽음은 우리 앞에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올 것이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뚜렷이 인식하는 사람은 소중한 가치를 중심으로 인생을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다.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 삶의 가치는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살 때는 삶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죽어야 한다.”는 동은 무문관의 일기에 새겨진 말처럼,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뤄가는 정신적 태도를 통해서 날마다 삶에 철저히 살아낸 사람은 오늘 내가 머무르는 공간에서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고, 사랑스럽게 삶을 다스리고, 후회하지 않는 삶의 궤적을 만들어 내며 죽는 순간에 덜 후회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동안 시술은 감사 연습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감사는 누군가와의 관계의 끈을 이해하고, 지금 이 순간에 고마움의 안전망에 소속되는 느낌을 주고,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는 정신적 보약이다. 행복하기 위해선 행복을 잘 느끼도록 하는 마음이 중요하듯 감사에도 삶에 깊이 만족해하며 감사를 잘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감사를 더 잘 느낄 수 있으려면 무엇이든 당연히 여기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미소, 친절한 경험과 같은 당연히 있어야 할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는 그런 세상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끔찍하고 황폐한 세상일까? 그런데 다행히도 그런 긍정적 경험의 원천이 되는 세상이 아직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든 당연히 여기지 않으면, 감사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필자가 십여 년 전에 미국 대학병원에 연수를 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 처음 영어로 미국인 환자와 병실에서 인터뷰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나를 더 힘들게 느꼈던 것은 나의 생각이었는데, 그 사람이 말하는 말의 맥락을 삶의 경험으로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신과 면담은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비언어적 태도로 얘기해주는 그 밑에 깔린 감정과 그 뉘앙스를 다 파악해서 말의 진의를 깨닫는 것인데, 무슨 말을 하는지 중간에 놓치는 것들이 있을 테니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맞은지도 확신이 안 서고, 그런 내적 고민을 하고 있으니 환자에게 제대로 공감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나 consultation을 간 병실에서 다른 환자들도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서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는 정도로 듣고 이해하는 것이 조금 익숙해졌지만, 나름 적응해나가긴 했지만 정작 한국에서 하듯이 치료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치료적 개입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무척 아쉬웠다.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한국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진료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감사도 심령이 가난해져야 더 잘할 수 있다. 고난과 박탈과 결핍을 느끼며 우리 마음은 어떻게 변화할까? 심령이 가난해지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심령이 가난해지는 경험은 우리가 누렸던 그 모든 것이 당연히 누리는 것들이 아님을 알게 해 주어, 우리를 지금보다 겸손하고, 현명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할 때 반찬을 골라서 먹을 수 있으며, 두 발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도 다 감사한 일이 될 수 있다. 내 앞에 있는 예쁜 꽃을 눈으로 볼 수 있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는 것도, 멋진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당연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감사한 것들이 되어버린다.


 당연한 것들에서 감사한 것을 찾아내는 어려운 과정을 해냈다면, 당연히 해야 할 감사들은 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감사를 하면 현재에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것들에 더 쉽게 머물 수 있게 된다. 내 주변에 있는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품어볼 수 있다. 좋아하거나 고마운 대상을 떠올리며. 좋은 감정을 느끼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다. 어떤 분은 새끼 고양이를 돌보면서, 고양이가 재밌게 놀고, 맛있게 먹어주는 것에 감사하는 것을 보았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부모님께,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께, 월급을 주는 고용주, 이 순간 모든 곳에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점을 떠올리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보자.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표현해보자. 감사는 필연적으로 표현할 때 완성되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할 때 행복감이 더 커진다. 고대 로마의 사상가인 루키우스 세네카는 ‘감사를 표하는 마음은 감사를 받을 행동을 한 마음만큼이나 훌륭하다’고 했다. 감사는 본질적 가치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의식을 갖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자.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다시금 떠올려야 한다. 우리가 당연시 느끼는 이 모든 좋은 것이 혹시 치매가 오게 되면 느끼지 못한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을 느낀다는 이 순간은 그래서 소중하다. 태양이 뜨고, 활기찬 아침을 맞으며, 황사가 지나가 산뜻한 바깥공기를 마실 때, 조물주에게도 감사로 인사를 건네 보자. 인간이 겸손해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색다른 경험을 하는 돈 안 드는 투자다. 오프라 윈프리는 하루에 5가지 감사한 일을 적는다고 한다. 미국의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도 감사한 것을 찾고 매일 적어보는 일이 행복감을 느끼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동안 시술은 당연하게 기대하는 요구나 기대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우리 삶이 꼭 금메달을 따고, 대박을 터트려야 삶이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행복과 만족을 얻는 길은 멀리 있지 않고 생각보다 다양한 경로에서 다양한 의미로 얻을 수 있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사람의 표정을 보면 은메달을 딴 사람보다 심리적 만족감이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금메달인데.’라고 금메달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에 젖어있지만, 동메달을 딴 선수는 하마터면 메달을 못 딸 뻔했다는 경험을 돌아보며 참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의미부여를 한다. 리우 올림픽 남자 태권도에서 금메달이 확실시되었던 이대훈 선수는 동메달을 목에 걸고 “비록 8강에서 졌지만 내게 소중한 기회가 왔다. 그래서 매 경기 최선을 다했다. 금메달만큼 값진 동메달을 가져갈 수 있어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물론 은메달을 딴 선수는 방금 전 패배에 집착하고, 동메달을 딴 선수는 방금 전 승리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와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감이 달라지고, 기대 수준을 낮추면, 만족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생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기대는 엄격한 자기비판과 불만족으로 이어질 수 있고, 타인에 대한 완벽주의적 기대도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를 부여하고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기대를 높게 가지고 있지 않은 지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기대 수준을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해내야 만족할 수 있다면, 삶의 행복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작은 일을 이뤄가며 삶의 과정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을 자주 느끼는 것이 결국에 나중에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다.


 당연한 삶의 기대를 낮추는 것이 삶을 체념하듯 살아간다거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해서 현실적이며 입체적인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런 기대는 부정적인 신호를 긍정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도움이 된다.  나를 잘 알아가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거기에 맞게 합리적인 기대를 갖고, 나 자신의 기대를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부당한 대우에 맞서가며 나 자신을 지켜가며 상처 받지 않고 지혜롭고 현명하게 이웃을 사랑하도록 내 마음을 지켜가는 것도 자신의 기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도 자신에 대한 입체적인 기대를 하며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삶의 적당한 기대를 갖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루면서 잘살고 있다고 느낀다면, 어느 정도는 괜찮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이 인정하지 않아도 나 자신 스스로가 삶의 아름다움과 관계 안에서 만들어가는 아름다움에 조금이나마 자족할 수 있다면, 그런 인생은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유연한 뇌의 조건을 갖춘 사람인 것이다. 

 요컨대, 분명한 진실은 우리가 쓴 시간을 거슬러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의 한계성과 그 안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서 삶의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결과를 늘리는 행동이자, 그나마 조금 어려지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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