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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통샤인머스캣 Mar 04. 2021

마음매력을 채워가는 마음 화장법

자신을 추스르는 위로로 마음 달래기

 우리 삶 자체는 고통스러운 사건의 연속이다. 우리 인생은 기대대로 풀리지 않는다. 나의 기대를 배신한다. 그래서 내 인생이 내 기대대로 안 풀릴 수 있다고 예상해 두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지 모른다.  불운과 예상치 못한 시련도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일 줄 안다면, 삶의 불행에 대해서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사는 것에 비해 현실에서 나아지는 것이 별로 없다고 느낄 때 삶이 고달프다고 느낀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면,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것 같고, 과연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며 힘이 빠지곤 한다. 고단한 세상에서 스스로에게 내리는 위로가 정말 하나도 없다면 술이나 음식과 게임, 충동구매, 각종 행위중독 같은 문제에 더 빠질 수 있겠다. 중독은 조절력 상실의 문제이지만 결국 보상체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헛헛할 때 자신을 추스르는 위로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자기 위로 즉 마음의 화장법이 필요한 이유다.


 홧김 비용이라고 들어봤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홧김에 충동적으로 돈을 쓰게 되면서 들어가는 비용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아까운 비용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돈을 쓰는 것이 때로는 자신을 위로하고 진정시키는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아깝다고 볼 수만은 없다. 평소에 자신에게 제대로 심리적 투자를 하지 않았으니 그 값을 나중에 치러내는 것이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정작 자신의 마음의 상태가 어떤 지도 모른 채 혹은 심각한 상태임을 방치한 채 감정이 소진된 상태로 살아가기 쉽다. 어느새 사회적 역할이나 책임감만 남아 자신 주위의 소소한 행복한 가치들을 놓치는 경우가 흔하다. 설령 가치에 맞는 행동을 실천하더라도 그 과정도 의미 있는 지를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챙겨주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것이 아직은 서툴 수 있다.  


 화장으로 자신을 꾸민다면, 먼저 거울을 보면서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또한 거울을 보고 나서 뭐가 묻었다면, 잘 씻어낼 것이다. 마음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나의 맨얼굴인 자아 이미지에 지나친 욕망이나 높은 기대치, 완벽주의적 태도와 같은 얼룩을 깨끗이 닦는 일일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후 로션과 영양크림 등을 바르는 것처럼 먼저 부정적인 얼룩을 잘 닦고 난 후, 의식적으로 좋은 만남과 사랑받는 경험과 같은 긍정적 경험의 의미를 잠시나마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이렇듯 자기를 위로하는 과정은 순차적인 화장 과정처럼 부정적 분위기를 씻어내고, 긍정적 경험을 덧붙여 과거에 소중했던 기억을 떠올려 기분이 좋아지도록 만든다.


 


 이렇게 보면 마음을 추스르는 위로라는 것은 결코 거창한 것에 있지 않다.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위로의 순간을 기억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작은 일일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경험을 자신에게 선사하도록 환경을 짜임새 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가령, 힘들 때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며 내 이야기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들어주었을 때 고마움이 느껴지고 힘이 났을 것이다. 그런 순간을 생각하면, 자신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마치 신경세포가 서로가 연결해 가듯이 상대를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의미 있는 위로자가 될 수 있다. 만약, 조물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좀 더 입체적인 공감 경험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종류의 위로는 정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고독한 순간, 사랑을 위해 대가 없는 헌신을 하는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또다시 사랑하는 그런 순간들처럼 완벽한 가치를 대변하는 고독한 조물주의 입장에서 인간이 같은 입장이 되어 볼 때 조금이나마 받게 되지 않을까.


 남이 주든, 나 스스로가 주든, 조물주가 주시든 어떤 종류의 위로이든지 위로는 우리 마음에 생명력 있는 활기와 온기를 준다. 발자크란 시인은 ‘불행은 예고 없이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모면할 길은 없다. 그러나 불행을 밟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은 언제나 우리에게 존재한다.’고 말하며, 우리 안에 이런 좋은 것들의 존재를 언급한다. 거친 세상의 험난함 속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를 여전히 위로하는 것은 불행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마음을 추스르는 선택은 우리 자신이 할 수 있고, 그렇게 자신을 돌보며 하루를 견디다 보면 한 발짝 나아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또 괜찮아질 수 있다는 단순한 삶의 진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매일 거울을 보고, 씻고, 화장하고, 로션을 바르듯이 우리 자신을 위로하는 내적 보상시스템이 오염되지 않았는지, 방전되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보고, 보수하고 충전해 줄 필요가 있다. 보상시스템은 우리를 움직이는 내적 동기이고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이자 삶의 의미에 가깝다. 인간이 추구하는 복이란 것도 보상시스템의 일종이다. 우리가 일하는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공정한 가치가 충족되는 것도 일종의 복이다. 보상시스템이 잘 돌아가야 인간은 예측 가능한 평온함을 얻는다. 알다시피 보상은 내적 보상과 외적 보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외적 보상은 칭찬, 보너스, 승진 같은 보이는 결과물이고, 내적 보상은 자신과 세운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만족감, 자기 격려 등 내면적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다. 둘 다 소홀히 할 수 없고 적절하게 만족시켜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외적 보상에 집착할수록 내적 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점점 소홀해질 수 있고 외적 보상을 추구하는 노력에 비해 현실적으로 외적 보상은 상대적으로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위로하는 내적 보상시스템이 잘 돌아갈 수 있으려면 외적 보상에 기대기보다 내적 보상의 빈도를 더 늘려가고 강화시키는 전략이 효과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드문드문 오는 외적 보상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그것이 진정한 내적 보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일상에 머물며 감사하며, 만족감을 깊이 음미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외적 보상과 관련된 비슷한 추억을 떠올리며, 당시의 성취감, 뿌듯했던 감정을 더 깊이 느껴보도록 애쓰는 것이다. 내적 보상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평소에 나를 위로하는 좋아하는 일을 떠올려보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경험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주문해서 받을 때의 설렘을 느끼면서 내적 보상을 관리해주는 경험을 틈틈이 늘려나간다. 힘들어도 일하는 순간에 좋은 의미들을 잠시 돌아보며 잠시 숨을 쉬거나, 간간히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내보고, 목표에만 마음을 뺏기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좋은 점에 머물려 잠시 자신을 쉬게 하는 것이다.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몰입하고, 즐길 수 있는 활동이 정신적 위로가 될 수 있다. 좋은 사람과 만나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고, 조용히 사색하며 산책하는 것, 그리고 영화보기나 다양한 문화생활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들이 지금 이 순간에 좋은 점에 머무는 훈련이 될 수 있다. 공자님 말씀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잘하고,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갖는 것도 내적 보상을 챙겨주는 기본적인 위로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우리 자신을 헤아려, 오늘 자신에게 무엇을 더 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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