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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ster Feb 11. 2019

폴 랜드(Paul Rand)의 좋은 그래픽 디자인이란?

‘아름다움과 실용성’에 서술된 좋은 그래픽 디자인의 정의에 대해


폴 랜드(Paul Rand)는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그래픽 디자이너 중 하나로 꼽힙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의 무한한 존경을 받았던 전설의 디자이너기도 하지만 그보다 디자인에 대한 끊임없는 철학적 접근과 그것을 정제된 형태의 언어로 남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전에 여러 편의 에세이를 남겼는데, 그것을 모아 출판되었던 책이 바로 ‘디자인 생각(Thought on design)’입니다. 특히 ‘아름다움과 실용성(The Beautiful and the Useful)’이라는 에세이는 읽을 때마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명문입니다. 저는 어쩌면 이 글이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업에 대해 가장 정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 글의 구성은 무엇이 (좋은) 그래픽 디자인인가에 대한 두 개의 문단으로 시작됩니다.

그래픽 디자인이—
형태의 법칙을 준수해
심미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이차원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
기호학과 산세리프, 기호학의 영역 안에 속한 것;
추상, 변형, 번역, 회전, 확장, 반복, 반영,
구성, 재구성하는 것—
만약에 상황에 적절하지 않는다면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Graphic design—
which fulfills esthetic needs,
complies with the law of form
and the exigencies of two-dimensional space;
which speaks in semiotics, sans-serifs,
and geometrics;
which abstracts, transforms, translates, rotates, dilates, repeats, mirrors,
groups, and regroups—
is not good design
if it is irrelevant.

첫 문단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의 존재 이유, 구성 요소, 적용 방법이 함축돼있습니다.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는 요즘 시대에 때로는 디자인 사이의 경계를 나누는 척도가 무언인지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기호학, 산세리프, 기하학의 사용은 분명 그래픽디자인의 필수 불가결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픽 디자인의 필수요소들을 재료로 여러 조리법(추상, 변형, 번역, 회전, 확장, 반복, 반영)들을 통해 어떤 요리가 가능한지 보여줍니다. 특이한 점은 ‘구성과 재구성’을 다른 줄에 배치함으로써, 그래픽디자인이 가변적 성질을 구조적 장치로 완성한다는 것을 완곡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필수요소와 실행방법을 모두 완수하여도, ‘상황에 적절하지 않다면’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천명합니다. 심미적, 기능적 만족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하더라도 결국 처한 상황 혹은 목적과 어긋나는 것이라면 좋은 디자인이라고 볼 수 없죠. 일전에 한국에서 강남역 지하철 출구 안내판 디자인이 형형색색으로 다양하게 바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혼란스러운 공간에서 사람들의 방향키 역할을 해야 할 안내판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했던 격이었죠. 그때 많은 사람이 디자인만 너무 강조하다 보니 기능을 상실했다고 깎아내렸습니다. 아니죠. 그 안내판 디자인이 상황과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들어진 잘못한 디자인이었습니다.


두 번째 문단을 통해 그는 그래픽 디자인의 다른 중요한 측면인 ‘소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래픽 디자인이—
비트루비우스의 대칭,
햄 브리지의 역동적인 대칭,
몬드리안의 비대칭;
등을 떠오르게 만드는
직감 혹은 컴퓨터,
발명 혹은 협력적 과정에 의해
탄생한 좋은 조형—
만약에 제대로 된 소통의 도구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Graphic design—
which evokes the symmetria of Vitruvius,
the dynamic symmetry of Hambridge,
the asymmetry of Mondrian;
which is a good gestalt;
which is generated by intuition or by computer,
by invention or by a system of co-ordinates —
is not good design
if it does not co-operate
as an instrument
in the service of communication.

그가 제시한 대칭과 비대칭의 세 가지의 예시는 적절하게 통제된 가변성의 결과 즉, 좋은 조형을 나타냅니다. 또한, 균형을 나타내는 두 가지 예시를 전면에 배치하고 불균형의 예시를 마지막에 놓아 균형과 불균형의 적절한 사용으로 만들 수 있는 리듬을 보여줍니다. 이 결과를 만드는 주체를 ‘직감 혹은 컴퓨터, 발명 혹은 협력적 과정’으로 표현한 것은 대단히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디자인이 개인보다는 팀워크 혹은 과정의 산물임과 동시에, 인간의 직감뿐 아니라 기술의 힘을 통해 성취될 수 있음을 논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초창기 컴퓨터 기술이 분명 존재했었지만, 대부분의 디자인 작업이 여전히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을 고려했을 때 대단히 진보적인 발언입니다. 특히 인공지능, 머신러닝과 같이 기술의 발전이 디자인의 영역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면 기술은 분명 좋은 디자인을 위해 협력해 나아가야 하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더욱 자명해집니다. 이 문단 마무리에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소통의 도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좋은 디자인이 될 수 없다고 말이죠. 디자인은 어떠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능력과 재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능력들은 제대로 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어떠한 지점에 도달해 연결되어야만 그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곳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도 사람들과 끊임 없는 소통을 거치고 여러 변곡점을 거치며 가게 되는 여정입니다. 그러므로 디자인에 있어서 소통은 그것의 시작이자 과정이고 그 끝이기도 합니다.


각각 문단 첫머리에서 언급하는 여러 디자인의 필요조건들은 일종의 교전규칙 같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디자인에 있어 어떠한 방법을 우리가 디자인에 적용할 것이냐 이전에 더 중요한 물음은 ‘왜’에 대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그래픽 디자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무엇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왜’에 대한 탐구 없는 디자인은 그저 허공에 무수히 쏘아대는 총탄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는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먼저 목표를 정조준 해야 합니다. 그래야 디자인을 통해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로고 디자인부터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인 혹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미래의 디자인까지 변하지 않을 ‘좋은 디자인’의 대전제일 것입니다.



글쓴이 '쌩스터' 소개
'디자이너의 생각법;시프트'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클라우드 + 인공지능(Cloud + AI) 부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고, 
얼마 전까지는 뉴욕의 딜로이트 디지털(Deloitte Digital)에서 디자인과 디지털 컨설팅을 했습니다.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책 링크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96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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