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브스 1월호 기고 칼럼
* 이 글은 포브스 1월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https://jmagazine.joins.com/forbes/view/332464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다양한 분야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대중이 모이는 콘서트나 스포츠 행사, 콘퍼런스 같은 이벤트들이 전무후무한 위기를 맞았다. 바이러스가 대책 없이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초중반에 이벤트들은 규모를 가리지 않고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매드니스(March Mdness)라고 불리던 미국 대학농구(NCAA)의 파이널 토너먼트가 취소됐고,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같은 세계 최대 테크+컬처 이벤트도 취소됐다. 최고의 디자인 마케팅 콘퍼런스 행사 중 하나로 꼽히는 어도비 맥스(Adobe Max)조차 온라인으로만 치러졌으며, 초청 강연과 워크숍 구성에 최대한 힘을 쓰고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 같은 초호화 셀러브리티를 초청해 체면치레를 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어떠한 종류의 이벤트건 오프라인 참가자 수를 제한하는 것은 앞으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참여 인원을 줄인다고 해서 이벤트 퀄리티가 갑자기 좋아지지 않을뿐더러 이벤트 종류에 따라 사람들이 없으면 현장감이 주는 역동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20년 중후반을 넘기면서는 급기야 새로운 시도를 통해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눈을 사로잡는 방식은 온라인 게임 포맷의 적극적 활용이다.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자가 주어진 환경과 스토리를 플레이하며 누릴 수 있는 몰입도 높은 경험이다. 오프라인 경험이 빠진 지금, 온라인에서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관객의 몰입도인데, 바로 이 점을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극복하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음악 콘서트의 경우 큰 공연장을 빌려 많은 관객을 모아 돈을 벌었다. 따라서 거대하고 화려한 공연장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공연장은 오프라인에 존재하지 않았다. Z세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포트나이트(Fortnite)라는 게임이 있다. 현재 3억5000만 명에 육박하는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시즌제로 운영되는 게임이다. 이번 시즌 최대 동시 접속 게이머 수는 1530만 명에 달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자랑한다.
바로 이 게임에서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이 지난 4월 아스트로 노미컬(Astro Nomical)이라는 온라인 콘서트를 열었다. 실제 트래비스 스콧이 무대에 올라 공연한 콘서트가 아니라 온라인으로만 진행된 공연이다. 공연이 보여준 시각적 효과와 아트 디렉션은 오프라인 공연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트나이트 게이머들이 그들의 캐릭터로 가상의 콘서트 공간에 모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콘서트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혜성이 콘서트장에 충돌하면서 시작을 알렸고 대형 빌딩만 한 트래비스 스콧이 게이머들 눈앞에 음악과 함께 나타나는 첫 등장 장면부터 임팩트가 엄청났다.
콘서트장은 노래에 따라 우주로 바뀌었다가 심해를 자유롭게 오가기도 하는 등 그동안 오프라인 콘서트에서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각적 효과는 게이머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이 단일 콘서트에 관람객 1230만 명이 참석했고, 트래비스 스콧은 2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이제까지 그가 기록한 한 회 공연 최대 수익이 170만 달러였고, 1년간 전 세계를 돌며 진행한 월드투어의 최고 수익이 5350만 달러라는 것과 비교하면, 그가 포트나이트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 얼마나 크고 파급력 있는지 알 수 있다.
게임을 활용해 재미를 선사한 또 다른 사례는 정치 행사였다. 일반적으로 정치 이벤트라 하면, 저명한 지식인들을 패널로 초청해 강연·토론하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타운홀 같은 지역의 이벤트홀에서 지역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거나 향후 방향에 관해 토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31세의 신세대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는 젊은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차세대 유권자를 만나기 위해 어몽 어스(Among Us)라는 게임을 소통의 장으로 선택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TAS3EPHJQk
어몽 어스는 지난해 가장 큰 이슈를 모았던 게임이다. 마피아 게임(누가 마피아고 누가 시민인지를 추측해 찾아내는 심리 게임)을 여러 사람과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다. 바로 이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며 젊은 유권자와 미래의 유권자들과 유쾌한 소통을 진행한 것이다. 그녀의 플레이 전 과정이 트위치(Twitch)라는 게임 전문 개인방송 플랫폼을 통해 43만 명이 넘는 사람에게 실시간으로 전송됐다. 기존 정치 이벤트가 시종일관 진지한 이야기를 딱딱한 분위기에서 진행하는 것에 비해 그녀는 실수할 때 얼굴을 붉히며 당황해하기도 하고 마피아를 찾아 너무나 신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면서 진솔한 모습을 대중에게 각인할 수 있었다. 미국 유력 언론들도 그녀가 기존 정치인들이 놓치고 있던 인간적인 모습을 게임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패션업계에서도 게임을 활용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게 큰 화두다. 명품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는 이번 시즌 신제품 라인을 소개하기 위해 대형 패션쇼 대신 게임을 선택했다. 애프터월드(AFTERWORLD)라는 게임인데, 온라인 브라우저로 접속해 게임을 하듯이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제품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게임만 놓고 보면 룩북·카탈로그와 패션쇼의 중간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품의 멋진 디테일을 보여줄 수 있는 고화질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패션의 경우 이 제품이 지닌 형태와 소재를 선택한 배경, 분위기, 철학을 하나의 쇼로 전달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큰돈을 들여 자사 패션 브랜드가 지닌 가치와 이유를 시각, 청각, 촉감이 어우러진 형태로 전달하는 패션쇼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바짝 붙어 근거리에서 모델들이 워킹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만큼 게임 형태로 하이패션이 지닌 그들의 방향성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또 스트리트 패션에서 가장 주목받는 콘퍼런스인 콤플렉스콘(ComplexCon)도 오프라인 행사를 취소하는 대신 콤플렉스 랜드(ComplexLand)라는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가상의 게임을 만들어 공개했다. 이 게임은 아이디를 만들어 가입하면 누구나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다. 롤플레잉 게임처럼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는데, 패션 이벤트인 만큼 나만의 캐릭터를 다양한 조합으로 커스터마이징해 만들 수 있다. 내가 만든 멋진 캐릭터로 가상 공간인 콤플렉스랜드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전시도 구경하고 쇼핑도 하는 것이다. 멋진 스트리트 웨어를 차려입고 콘퍼런스장에서 서로 구경하며 쇼핑하는 경험을 온라인으로 옮겨 와 호평을 받았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와 이 대유행이 잠잠해질 때까지 오프라인 이벤트 개최 및 참가는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지금의 팬데믹 상황을 기점으로 다양한 오프라인 행사가 온라인으로 성공적으로 치러지는 것을 보며, 온라인 경험이 오프라인보다 더 효과적인 분야들은 이후에도 오프라인으로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경험의 만족도를 모두 상승해줄 형태로 재탄생해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 더 많은 3D 캐릭터의 개발과 스토리 라인 구축, 증강현실 등이 더욱 빠르게 도입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게임이라는 장르는 앞으로 더 많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게임은 기존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장악력도 강하고 클라우드 기술을 기반으로 원활한 사용자 환경을 오랜 시간 구축해온 만큼, 이미 존재하는 인프라스트럭처를 이벤트 기획자들이 활용하기 쉽다. 그런 만큼 현재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팬데믹 이후 어떻게 오프라인으로 다시 사람들을 끌고 올 것이냐보다는 어떠한 접근법으로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시할 것인가가 돼야 한다.
쌩스터 소개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클라우드 + 인공지능(Cloud + AI) 부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고, 얼마 전까지는 뉴욕의 딜로이트 디지털(Deloitte Digital)에서 디자인과 디지털 컨설팅을 했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뉴 호라이즌'과 '디자이너의 생각법;시프트'를 출간했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뉴 호라이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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