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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ster Apr 17. 2017

트럼프의 빨간 모자와 안철수의 포스터

미국과 한국의 대선 마케팅 승부 수에 대하여


지난해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이슈 중 으뜸을 뽑으라면 단연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된 것을 뽑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었건 대한민국이 왜 상관할 일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트럼프의 행정부가 가져올 동북아 및 전 세계에 미칠 어마어마한 영향뿐 아니라, 그가 대통령 당선 과정에서 보여 준 충격적인 발언과 행동들은, 대선을 한 달도 채 남겨두고 있지 않은 우리에게 충분히 고민할 거리들을 던져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한국의 IT 업계의 거목 출신인 안철수 후보는 사업가 출신의 정치인으로 기존 정치권에 도전을 한다는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비웃음 거리였던 트럼프

맨 처음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을 때 많은 이들은 이를 두고 철없는 억만장자의 장난질로 폄하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강력한 경선 우승 후보였던 잽 부시 및 다른 기성 정치인들을 제치고, 미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등극한다. 그 후 본선에서 사실상(?) 대통령 당선인과 진배없었던, 민주당의 힐러리조차 꺾어버리는 파란을 연출했다. 선거 전날까지 각종 미디어와 여론조사 기관으로부터 압도적으로 당선될 것으로 여겨지던 힐러리를 제치고 트럼프는 역전승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마케팅적인 혹은 디자인적인 부분에서 어떤 기술들이 시전 되었는지 한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옥상으로 따라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명대사다.


학교에서 크게 존재감 없던 권상우가 학교의 일진이었던 이종혁에게 대결을 신청하며 일갈했던 대사다. 트럼프가 아무리 유명한 기업인이자 셀러브리티였지만 사실상 정치판에서는 말 그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애송이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그에 반해 아버지와 형에 이어 가문의 세 번째 대통령을 노리던 잽 부시는 사실상 공화당의 적통 중에 적통이었다. 한마디로 공화당 안의 일진과 정치 듣보의 대결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힘의 불균형 속에서 그가 외친 구호가 있었으니...


"Make America great again."


잠깐,,, 뭐라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아니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줄 곧 전 세계를 주름잡던 미국 아니었던가? 많은 사람들이 즉각 '미국은 원래 위대했다고!’라며 비난하기 시작했고, 그의 부적절한 언사를 조롱했다.


하지만, 엄청나게 비난을 받던 그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너희는 애국자가 아니야!'라며 되려 낙인을 찍기 시작했고, 이후 신기하게도 그가 원했던 결과들이 도출되기 시작했다. 바로 지지층 집결이었다. 미국에는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살기는 하지만 아직 백인들이 상류층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백인의 프라이드를 강조하는 상류층들과 함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미국의 제조업 중심의 노동자 층도 그에게 열렬히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술의 발전과 라틴 아메리카 및 중국의 값싼 노동력등에 일자리를 잃어 빈곤층으로 전락하게된 전통적 생산 노동자 계층이었는데, 과거에 제조업 중심 경제 발전에 향수를 가지고 있던 그들은 시원시원한 트럼프의 발언과 차별적(?) 일자리 정책 등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이 말 한마디로 그는 말 그대로 백인들을 위한 '대의'를 세운 것이다.


마이클 베이루트가 디자인한 힐러리 캠프의 로고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뒤에는 Pentagram의 파트너인 Michael Bierut 같은 근현대 그래픽 디자인사에서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히는 이가 버티고 있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캠페인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이루어진 힐러리 캠페인의 다양한 실험과 적용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디자인 전문가들에게서도 호평을 이끌어내기 충분한 수준이었다. 알아보기 쉽고 또한 의미의 전달 또한 좋았던 힐러리의 'H'와 화살표의 결합은 아마 최상의 브랜딩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말죽거리 잔혹사로 잠깐 되돌아가 보자.

권상우는 운동으로 체력을 길렀을 뿐 아니라, 비장의 무기 아니, 필살기를 준비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쌍절곤이었다.

그 무기로 일진들 모두를 제압하고 그는 학교를 평정할 수 있었다.

트럼프의 빨간 모자


트럼프가 처음 ‘Make America great again’이 써진 빨간색 모자를 쓰고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사용한 폰트는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고, 자간과 횡간 또한 과연 이것이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모자를 한 번이라도 본 이들 모두 어렵지 않게 기억할 정도로 각인이 쉬웠을 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쉽게 적용 및 패러디하기 용이했다. 곧 뉴스에서도, 코미디 프로에서도 모두 이 모자를 이용한 콘텐츠를 생성했고 그것에 인터넷 트롤 문화가 덧되어져, 무한 양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트럼프가 '조커'가 아니라 '킹'이었다는 것을.
그것도 최고의 마케팅 실력을 가진.


처음부터 그가 노린 것은 막말을 가장한 '판 깨부수기'였다. 그것을 위한 첨병이 '미국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캐치프레이즈와 그것의 상징물 '빨간 모자’였던 것이다.


정말 무섭기 시작했다. 만약에 트럼프가 진짜 대통령이 되면, 우리는 저 모자를 평생 기억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4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지금 백악관에 앉아 세계 대통령 놀이에 여념이 없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는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바로 이 시점에서 등장한 안철수 후보의 포스터



사실 이 포스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내 느낌은,

응?


다시 봤을 때 내 느낌은,

아, ㅋㅋㅋ


그리고 정확히 내 느낌처럼 많은 이들의 '응?'은 곧바로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피드백들이 쏟아져 나왔고, 어떤 이들은 이거 디자이너가 안티 아니냐는 반응이기도 했다.
디자인적으로 조악한 구성, 기존의 선거 포스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때깔(해상도와 라이팅 등등)등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게 뭐야?'라는 평이 나오게 하기에 충분하다. 분명히 동의하는 바이다. 시각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정말 못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광고의 제 1원칙, '다른 이들의 눈을 사로잡아라'에 완벽히 부합하는 포스터였다. (사실 이러한 방식의 적용은 포스터를 제작한 이제석 씨의 주특기이긴 하다.) 분명히 이전 대통령 후보 포스터들에서 사용된 적 없던 시각적 접근법이었다. 주로 근엄함을 강조하거나, 인자함으로 포장하는 얼굴 중심의 인물 사진에서 안철수 후보는, 역동적인 포즈와, 본인의 포스터 프레임 밖에 있는 후보들 포스터와의 연관성(자세히 보면 안철수 의원이 양옆에 있는 2번, 4번 후보를 옆으로 밀며 나오는 그림이다. 새 시대를 여는 인물이라는 메타포를 주고자 함일 것이다.)까지 고려해 작업한 포스터는 아주 새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게 안 후보에게 맞는 방식이었다. 사실 안 후보의 이미지는 근엄하지도, 인자하지도, 그렇다고 호감형이지도 않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오히려 '뛰어남', '독특함(?)', 'IT 기업인'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이런 그에게 정공법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은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호감형이 아니다(예전 청춘 콘서트 할 때 빼고).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판을 바꾸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분명히 이 포스터는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안철수 후보의 포스터는 지금의 이러한 임팩트를 주고 사람들에게 각인되게 한 것만으로도 아주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포스터가, 트럼프의 빨간 모자만큼 선풍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트럼프의 모자가 가지고 있는 '확장성'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의 발언처럼 '중서부 지역 사람들은 어려운 정치 뉴스는 안 봐도, 다들 야구모자 하나쯤은 집에 있다.'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한국 정치판이 조금은 다각화되고, 재미있어진다는 반증이 아닐까 해서 환영한다. 또한,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며, 디자인과 마케팅의 근원에 대해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두기 위한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애초에 그런 것이 존재 하기는 하는 것인가? 사실 그런 정답이라는 게 있었다면, 진작에 돼야 할 사람은 되고, 안될 사람은 안되도록 누군가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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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상인은 현재 뉴욕의 Deloitte Digital에서 Studio lead(Associate Creative Diretor)로 일하고 있으며, 미주 지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비영리 예술가 단체 K/REATE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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