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 2017년 신년호 기고 글
*이 글은 제가 '월간 디자인' 2017년 신년호에 기고하고 김은아 에디터님이 수정해 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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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힐러리 클링턴이 오바마의 민주당 정권을 이어가는 듯해 보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결과는 정반대였다.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성차별주의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였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한 그다. 이 시대에 웬 만리장성이냐고? 물론 문자 그대로 장벽을 설치할 일은 없어 보인다. 다만 이는 멕시코인으로 위시되는 이민자 정책 전반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과 태도를 잘 나타내는 요약본이다. 지금 트럼프의 안중에는 그간의 지식산업 위주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미국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일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희생되어야 할 것은? 이민자들이다. 그간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온’ 이민자들은 어서 다시 그 일자리를 뱉어내라는 논리다. 이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가 내세운 정책은 출생 시민권 제도 폐지, 불법 이민자 단속 강화, 추방 유예(DACA) 중단, 합법 이민 대폭 축소, H-1B 비자 임금 기준 대폭 강화, J 비자 철폐,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 철폐, 전자 고용인증(E-verify) 의무화등이다. 이 중 가장 일반적으로 한인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끼칠 만한 것은 H-1B 비자, J1 비자, OPT에 대한 변화다.
H-1B 비자
보통 취업 비자라고 불린다. 취업하고자 하는 분야와 관련해 대학 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취업하는 데 필요한 비자다. 사실 이 비자 자체를 철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자 미치오 카쿠(MichioKaku)는 "H-1B 비자는 미국의 비밀 병기이며, 이것 없이는 실리콘밸리도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내 인재만으로는 구글,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의 인재 수급에 한계가 있고 인종의 다양성이야말로 지금의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잘 알려진 대로 시리아계 난민의 자손이요, 현재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모두 인도인이 아니던가. 주요 인재 공급원인 H-1B비자를 없애겠다고 한다면 미국상·하원 또한 말도 안 된다며 반기를 들 것이다. 다행히 이 정도는 인지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주장하는 바는 ‘없애지는 않되 기준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최저 기준이 무려 연봉 10만 달러(약 1억 2000만 원)다. 다시 말해 연봉이 1억 2000만 원 정도인 이들에 한해서만 비자를 발급하겠다는 거다. 이 정도 금액은 대졸 출신 디자이너에게는 어차피 불가능한 액수다. 뉴욕을 기준으로 디자인 에이전시의 주니어 디자이너 초봉은 대략 5만~6만 달러(약 6000만~7000만 원)에서 많아야 7만~8만 달러(약 8000만~9000만 원)다. 실리콘밸리 기준으로 보면 초봉이 10만 달러 언저리인 디자이너도 있겠지만 드문 일이다. 사실상 철폐나 다름없다는 평이 대다수인 이유다. 미국 회사 입장에서도 외국인 디자이너 한 명을 고용하기 위해서 투자해야 할 금액이 이렇게나 높다면, 미국인 디자이너 몸값보다 몇만 달러씩이나 더 주고 외국인 디자이너를 고용할 확률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J 비자
우선 이 J 비자에 대해서 주한 미국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의 J 비자는 교육, 예술, 과학 분야의 인재, 지식 및 기술 교환을 장려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J 비자는 일반적인 취업비자인 H-1B와는 달리 인턴십 혹은 단기 취업을 목적으로 발급한다. 그래서 굳이 미국에서 학위나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더라도 취업이나 계약직을 통해 미국에서 삶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실제로 많은 디자인 인력이 J 비자로 미국에 첫발을 디디곤 한다. 사실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감각과 손끝이 뛰어난 한국인에게는 영어의 장벽을 차치하고 취업이 가능한 영역 중 하나인 게 사실이다. 특히 주니어 포지션이나 프로덕션 파트는 영어가 부족해도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학비 등으로) 미국에서 돈 한 푼 쓰지 않고 돈만 벌어 가겠다고?’ 하는 식의 비난이 일게 하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제대로 된 경험을 쌓고자 하는 의지보다 어떻게 해서든 미국에 발을 들여놓은 뒤 적법한 기간이 지난 후에는 불법체류로 거주를 이어나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비난이 불거질 만한 비자였다. 바로 이것을 트럼프가 아예 없애겠다는 것이다. 현재 LA에 있는 패션 디자인 회사에 J1 비자로 취업한 김지상 씨는 "나이 때문에 H-1B 비자 발급이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미국 외 학교 졸업 1년 미만’ 조건에 부합해 미국 취업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는 비교적 쉽게 고급 외국인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비자인데, 이를 철폐하면 미국에 어떤 이득이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난색을 표했다.
OPT 철폐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는 미국에서 대학 혹은 대학원을 마치고 가질 수 있는 H1-B 비자 없이 취업하여 일정 기간 일하거나, 다른 진로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연구를 할 수 있는 일종의 선택적 유예 기간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외국 학생들에게 황금과 같은 기간임이 분명하다. 사실 대학 재학 중에 일자리를 찾는다거나 졸업 후 3개월 이내에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학부의 경우 일반적인 경우 1년 정도(대학원과 특정 학과들은 기간이 최대 3년까지 다양하다.) 주어지는 이 유예 기간 동안 인턴쉽을 시작으로 정직원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 대다수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부분도 손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사실상 OPT는 부시 행정부 시절 대통령 시행령으로 시작된 제도이기 때문에 H-1B나 J 비자에 비해서 수정 혹은 철폐가 훨씬 간편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트럼프가 마음만 먹으면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대학들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진 않을 거라 믿지만 말이다. 현재 OPT 기간을 본인의 작품 리서치에 사용 중인 아티스트 최주열 씨는 “OPT가 없었다면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작업에 대한 시간 투자보다는 그저 일자리를 찾는데 급급했을 것이다”라며 걱정을 드러냈다.
미국의 산업 구조는 외국인 노동자 없이 굴러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미국의 경제계와 학계가 이 아이디어에 전혀 동조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 개정을 위해서는 미국 상. 하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얼마 전 백악관에 최고 전략 책임자로 입성한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이 ‘실리콘 벨리에 아시아인 CEO가 너무 많은 것 같다.’라고 한 과거 발언이 회자되며 공분을 산 것을 감안해보면 앞으로 심각한 인종 정책적 압박을 예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트럼프 정부의 공공연한 인종차별적 기조가 70% 넘게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백인 미국인들에게 끼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그 파장은 더욱 크다. 공적으로는 금기시된 인종차별적 발언과 행동이 가시적이고 우발적으로 남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분위기에서 심리적인 위축도 무시 못 한다. 여기에 행정적 불이익들이 현실화된다면 재미 한국인 디자이너 아니, 한국인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처로는 무엇이 있을지, 앞으로 두고 봐야 할 답답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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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사진 출처 - Business Insider
글쓴이 이상인은 현재 뉴욕의 Deloitte Digital에서 Studio lead(Associate Creative Diretor)로 일하고 있으며, 미주 지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비영리 예술가 단체 K/REATE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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