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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ster Jun 01. 2018

미안하지만, 블루보틀은 스타벅스를 넘을 수 없다.

브랜드의 경험과 발전의 관점에서 본 스타벅스와 블루보틀


블루보틀을 처음 접한 것은 2011년 어느 더운 여름날 브루클린에서다. 


주말이면 브루클린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 다니며 이런저런 샵을 구경하곤 했었는데, 블루보틀을 처음 접한 날도 크게 다를 것 없던 토요일 오후였다. 친구들과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다가 그중 한 명이 ‘뉴 올리언즈’ 한 잔 하러 가자는 것이었다. 엥? ‘뉴 올리언즈? 재즈로 유명한 동네 이름 아냐?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친구의 대답이 그것도 맞는데, 블루보틀이라고 하는 커피숍의 아이스 커피 대표 메뉴라는 것이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뉴 올리언즈’를 시켰다. 바리스타는 이미 만들어놓은 베이스 커피와 주먹 만한 얼음 위에 무심하게 우유를 부어주고는 내게 건넸다. 그리고 한 모금 들이켰는데, 


스르륵 입안으로 들어온 그것은 찰진 단맛과 약간의 신맛 그리고 우유의 고소함이 조화되어 내 혀를 감 싸돌았다. 커피가 입안에서 재밍(Jamming)되며 마치 한여름 밤의 제즈 음악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블루보틀의 팬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 뉴욕의 유일한 지점이던(현재는 꽤 많다) 블루보틀 윌리엄스버그 점은 이내 뉴욕의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 성지처럼 되어갔다.  


블루보틀 윌리엄스버그 점
여름철 최고의 아이스 커피를 꼽으라면 당연히 뉴 올리언즈!


심플한 파란 병 로고의 블루보틀 커피숍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포틀랜드, 킨포크 등과 함께 힙스터의 상징 혹은 프리미엄 커피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지며 자연스레 블루보틀 커피를 소비하고자 하는 수요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느새인가 내셔널 체인으로 번지더니 이제는 한국에 까지 지사가 진출할 정도로 전 세계 커피 씬에 엄청난 임팩트를 끼치는 커피 기업이 되었다.  


그에 반해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스타벅스는 내게 사람 만나러 가거나, 앱을 사용해서 쿠폰을 모으는 정도의 커피숍 정도로 치부되었다. 


별다방 별모으기.


그리고 캐러멜 마끼아또 같이 아주 무지막지하게 달콤한 음료 외에는 그냥 커피는 혀를 조금도 섞고 싶지 않을 정도로, 수준 낮은 미제 커피 체인 정도로 느껴졌었다. 특히 미주 안에서 출장이 잦은 내게는 어디서나 접할 수 있고(사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몰먼교도들이 많이 거주하는 유타주의 타운에 가면, 호텔에 있는 스타벅스 외에 커피를 마실 방법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여러 옵션이 있는 커피 브랜드라는 존재감 정도의 느낌만 있었다.  


그냥 커피는 너무 맛이 없어 시킬 수 밖에 없는, 달달한 마키아또


그럼에도 몇 년 주기로 그들의 진열대 안에는 많은 변화가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물론 신메뉴들이 개발되어 나오긴 했지만, 그것보다 어찌보면 더 큰 규모의 변화들 예를들면 원래는 없었던 브래드 라인업이 꽤나 비중있게 진열되기 시작하기도 하고, 또 언제부터인가는 건강 음료 혹은 콜드 프레스 주스 등이 계속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속으로 참 별걸 다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직장 때문에 2014년 시애틀에 1년간 살게 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이지만, 시애틀은 스타벅스의 고향이기도 하고 자타공인 미국 최고의 커피 도시이다. (스텀프 타운의 고향인 포틀랜드나 블루보틀의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도 최고라는 말이 많지만, 커피 메니아들 사이에서는 시애틀을 최고로 쳐주는 분위기가 단연 높다.) 사실 스타벅스 매장이 설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로컬 커피 브랜드가 존재하고 각각의 브랜드들 마다 그들의 커피에 대한 노하우와 깊이는 대단히 수준급이었다. 그래서 자칭 커피 성애자인 나로서는 매일 다른 커피숍을 출근 전에 들려 보는 것이 하루의 일과 같이 되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캐피톨 힐로 불리는 시애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 어귀에 스타벅스가 새로운 형식의 매장을 낸다는 뉴스를 봤다. 스타벅스의 고급 버전인 리저브 로스터리의 1호점이었다. 공사 중인 건물은 꽤 근사해 보이기도 했기에, 오픈하면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다.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1호점의 모습.


리저브 1호점 오픈이 있던 그 주 주말에 찾아갔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흡사 커피숍이 아닌 흡사 디즈니 랜드 같은(여기저기 펼쳐진 거대한 커피 로스팅 기계들과 진공관들은 흡사 롤러코스터들이 즐비한 놀이공원 같아보였다.) 인상을 받기도 했고, 녹색으로 점철된 기존 스타벅스와 전혀 다른 모던한 분위기도 한목했다. 


내부 전경과 바로 옆에서 커피빈을 로스팅 하는 모습


처음 입장하자마자 옛날식 커피 카트를 개조한 듯한 안내 대 옆의 직원(포틀랜드에서 갓 공수해 온 힙스터 같이 생긴)은 내게 인사와 함께 아름답게 일러스트 된 건물의 조감도와 설명이 담긴 설명 브로셔와 함께 이전 그 어떤 커피 브랜드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세련된 메뉴를 건넸다. 그리고 주문을 하러 간 매대 앞에는 스타벅스에서 파는 빵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먹음직 해 보이는 빵들이 나를 반겼다. 주문하려고 했는데, 내가 매일 주문했던 캐러멜 프라푸치노 같은 커피는 애초에 메뉴에 있지도 않았다. 무슨 커피를 추천하냐고 점원에게 물었다. 그래서 받은 오렌지 시럽이 약간 들어간 라테를 초콜릿 크라상과 함께 받아 들었다. 뉴 올리언즈를 먹을 때만큼은 아니였지만 거진 80% 정도의 충격은 될 정도로 맛있었다. 그러고 거기서 판매하는 다양한 굿즈들을 실컷 구경하고 한 바구니 담아 구매해 나왔다. 


힙스터 바리스타의 커피 브루잉


얼마전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을 1주일씩 연속으로 출장할 기회가 있었다. 


블루보틀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내 숙소는 블루보틀이 그들이 다운타운 안에서 처음 제대로 자리 잡기 시작한 매장과 멀지 않아, 매일 아침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뉴 올리언즈와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들처럼 매장이 많이 늘어도 퀄리티가 이 정도로 유지된다는 게 신기했다. 내가 뉴욕에서 그리고 예전 샌프란시스코 출장에서 맛보았던 맛과 차이 없이 여전히 수준 높았다.  


블루보틀의 뉴 올리언즈와 아보카도 토스트


1주일 후, 볼일을 마친 후 시애틀로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들로부터 스타벅스가 얼마 전 그들 본사 1층에 새롭게 리저브 로스터리 2호 매장을 오픈했다는 정보를 듣고 바로 시간을 내어 방문했다. 2014년 리저브 로스터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것이 ‘혁신'이었다면, 이번에 느낀 것은 ‘진화'였다. 


스타벅스 리저브의 아침 메뉴


거기서 아침을 먹었다. 그냥 빵 한조각이 아닌, 웬만한 브런치 집들보다 훨씬 뛰어난 퀄리티로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그들이 새로이 치중하는 듯 보이는 칵테일 믹솔로지(Mixology)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하이브리드 커피들을 맛보았다. 내가 먹은 것은 독주인 진(Gin)을 담근 오크 통에서 숙성시킨, Gin Barrel-Aged Iced Coffee와 단맛과 텍스쳐가 일품인 셰커라도(Shakerado)였다. 


이날 받은 충격은 사실 외식 관련 경험 중 근래에 가장 큰 울림이었다. 


왜냐하면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 혹은 퀄리티일 수 있겠지만, 일정 시점과 수준을 넘어가면 시스템과 확장성(Scailability)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스타벅스의 진화는 놀라웠다. 스타벅스 정도의 규모를 지닌 회사가 이 정도의 변화를 드라이브한다? 그리고 이게 탑다운 형식으로 전 세계에 퍼진다? 이는 단순히 한 브랜드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커피 씬 전체를 바꾸는 것이다.  



커피란 자고로 음료를 파는 것이 아닌 취향을 대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취향이란 단순한 생필품 혹은 소비재 영역으로 보기 어렵다. 효율성과 경제성이 전부가 아닌 향유의 개념이다. 커피의 그 오묘한 쓴맛을 보러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일부다. 커피를 마시며 느끼고 보고 듣고 기억하는 모든 것을 넘어 어떠한 가치적 지향점이 바로 그 커피 한 잔에 담긴 것이고 이는 분명 브랜딩의 영역이다. 브랜딩이란 단순히 로고를, 서체를, 컬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험을 이야기하고 또 여운을 이야기해야 한다. 스타벅스는 그들의 시그니쳐 스토어에서 매일 같이 엄청나게 쌓이는 다양한 경험들을 분석해 체계화시키고 그 DNA를 전 세계 리저브 매장 혹은 일반 매장에 꾸준히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블로보틀에서 느낀 것은 어쩌면 ‘유지'와 '확장'이지, ‘발전’과 '혁신'은 분명 아니었다. 그에 반해 스타벅스는 그들이 가진 유통, 온라인 그리고 부동산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우리의 생활 패턴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 것이다. 또한, 앞서 잠깐 언급했던 스타벅스 앱과 그의 디지털 생태계 또한 어마어마한 자산이다. (얼마전 통계에 보면 미국에서 애플 페이 혹은 삼성 페이보다 가장 많이 결제되는 디지털 결제 수단이 스타벅스 결제 시스템임을 감안해 보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이 이미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타벅스가 이러한 행보를 꾸준히 이어나간다면 커피를 넘어, 식문화 전체를 바꾸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사실 '브랜드'라는 것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같다.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해서 발전하고 또 변화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소멸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글이나 아마존같은 세계 최고의 회사들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물론 3대째, 4대째 가업을 물려받는 장인들의 공방들 처럼 '변하지 않는'이 사람들이 원하는 키워드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위 잘나가는 최고의 회사들에게서 우리가 찾아 볼 수 있는 키워드의 교집합은 '정체된' 보다 '변화하는'이 분명 맞을 것이다. 특히 우리가 향휴하고 즐기는 '커피'라는 카테고리의 비즈니스에서는 더욱이 말이다. 




글쓴이 '쌩스터' 소개
'디자이너의 생각법;시프트'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클라우드 + 인공지능(Cloud + AI) 부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고, 
얼마 전까지는 뉴욕의 딜로이트 디지털(Deloitte Digital)에서 디자인과 디지털 컨설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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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책 링크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96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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