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봐, 누가 엄마라고 하겠어.
엄마는 항상 현관이나 엘리베이터의 커다란 거울 앞에 서면, 나와의 투샷을 비춰보며 물으신다.
“누나라고 해도 믿겠다. 그치?”
“무슨 누나라니. 말도 안돼.”
“50대 아줌마 치고 예쁘잖아, 그치?”
“아, 몰라.”
너는 이제 아저씨 같다며, 아들의 외모를 가차 없이 지적하고, 젊고 예뻐보인다는 말을 이렇게나 듣고 싶어하는 엄마가 있을까. 기억에 한 10살 쯤부터 들었으니 벌써 20년 째 지겹도록 듣고 있는 셈이다.
나의 엄마는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지만, 연배 분들에 비하면 확실히 동안에 속하신다. 그 이유에는 외모도 있겠지만, 말투, 표정, 그리고 행동도 큰 몫을 한다. 어떨 때 보면 나보다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어쩌면 한 없이 철이 없는, 엄마 같지 않은 엄마의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똑똑하고 여성스러운 큰 언니, 인형 같이 예뻐서 항상 주변의 눈길을 받았던 작은 언니, 두 언니들 밑에서 상대적으로 장난끼 많고, 까맣고 평범했던 어린 소녀는 항상 어른들의 직접적인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잘못되었다는 생각 속에 빠져, 컴플렉스로 똘똘 뭉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셨다.
그 어린 소녀도 한 때는 소중한 꿈이 있었다. 가수들을 동경하며,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 나의 집의 오래된 오디오에서는 늘 대중가요가 흘러나왔고, 맑고 단단한 목소리로 크게 따라 부르시고는 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만약 엄마가 어린 시절 데뷔하고 꾸준히 갈고 닦아졌더라면, 가수 이선희님 정도로 빛을 보시지 않았을까. 그런 아름다운 재능을 가졌지만, 그 시절 엄하고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속, 감히 가수라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평범하고 슬픈 이야기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삶 속에는 엄마가 없었다.
결혼 후 다짜고짜 가족, 친구 하나 없는 타지 생활을 시작했던, 숫기 없었던 20대 중반의 여성은, 힘든 형편 속에서 간장계란밥으로 겨우 끼니를 챙겨가며, 뱃속의 나를 지켜내었다. 또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mother’, ‘father’ 밖에 모르는 채로 영어학습지 선생님을 시작하셨고, 여러 유치원, 학원을 하루에 몇 군데씩 돌아다니시며, 스스로의 한계와 싸워가며 일을 하셨다. 그리고 스물 몇해 동안, ‘아빠’라는 한 없이 연약한 사람을 품어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길 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이 돌아오면, 쓸쓸한 갈대 숲에 숨어우는 바람소리.
한 때 듣고 부르기 좋아하셨던 이정옥의 ‘숨어우는 바람소리’의 가사처럼, 떠올려보면 캄캄한 밤, 불꺼진 방문 너머로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울음을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묻으셨을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엄마의 지난 삶 속에서 충만한 사랑이라던지,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은 거의 존재한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낸 것이다. 수 많은 커다란 파도는 엄마를 어둡거나 약하게 만들지는 못했고, 다만 견고하게 밝은, 순수하게 강한 사람이 되게 만들 뿐이었다.
이제는 가끔 마주치게되는 엄마의 주름살, 흰머리, 나는 그런 사소한 변화들에 절대 놀라지 않는다. 세월이 만들어낸 그 자연스러운 변화를 제외하고는, 나의 가장 처음 기억 속의 엄마와, 지금 내가 거울로 마주하고 있는 엄마의 표정, 말투, 행동, 그리고 눈빛, 어느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만약 세상에 휩쓸려가는 것이 늙어가는 것이라면, 어쩌면 이제는 내가 엄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라는 한 단어로 나에게 모든 의미를 표현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종종 말씀하신다. “너에게 많은 것들을 주지 못해서, 늘 아쉽고 미안해.” 실은 정반대인데.
내가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모든 시간들은
엄마에게 선물 받은 것들이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나를 지켜낸 영웅, 내 삶의 지표, 그리고 나의 유일한 가족. 바램이 있다면, 앞으로의 엄마의 시간, 한 사람으로서의 삶에 빛이 가득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조금이라도 내가 보탬이 되고 싶다.
실은 아직 거울 앞에서 물은 엄마의 질문에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한 적이 없다. 참 살갑지 못한 아들이라 귀찮기도, 낯간지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거울 속의 해맑은 엄마를 보며, 늘 생각한다. 수 많은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스스로 수십년 동안 간직해 온 동심, 의지, 그리고 사랑, 그 모든 것들이 쌓여온 엄마의 얼굴. 그 자체로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아름답다. 여전히 말로 뱉을 자신은 없지만 이 곳에서 이렇게나마 꺼내본다.
맞아, 엄마 무지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