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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Jul 28. 2017

자기주장이 겸손할 때

[ 1 ]

2015년, 첫 교생 실습을 마무리했다.


방 안에 앉아 혼자 그림 그리던 아이가 선생님이라니. 그것도 캐나다에서. 11월, 3/4학년 교실에서 과학 한 단원을 짜고 가르쳤다. 초등학생들 앞에 서는 것 음청 떨린다. 당황할 때는 어버버 아는 단어를 겨우 짜서 내뱉는다. 아이들이 비웃지 않는 것은 내가 측은해서...? 아니면 뻣뻣한 안면근육 덕에 생긴 내 내추럴 포커페이스 때문에...?


생짜의 나를 조우하는 것은 쓰고도 단 경험이었다. 이런 게 사는 건가! 싶었다. 
생각의 벽 뒤에 숨어 안락을 누릴 것인가, 그놈의 깨달음이 내 안에 실재하는지 경험해 볼 것인가.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은 내 모습도 있었고 역시나 보이는 한계도 있었다. 그래도 지난겨울 도서관에 처박혀서 책만 읽던 때보단 살맛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렇다 할 계획 없이 지원서를 남발하던 시기였다. 흘려 버리는 듯한 시간에 어떻게든 의미와 보람을 주입시키려 
동네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곳은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았다. 책에서 본 내용을 토대로 무슨 이론이나 개념을 조립해 놓아도 머릿속의 검증일 뿐이다. 내가 꽤나 지식인이라도 되는 양 위험한 착각에 빠진듯한 위화감에 괴로웠다. 진행되는 일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 허우적거리는 발길로 전진하고 있다고 믿는 것. 저 바깥에는 내가 모르는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과의 전투가 무중력의 시공간 안에서 이루어졌다. 현장에서 뛸 때나 공부를 할 때나 나름의 투쟁이 있었다. 






캐나다의 사범대학인 Teacher’s College에서 다른 동기와 교류하며, 실습을 나가서 아이들을 대하며 내가 표현하고 만들어 가는 내 모습, 나에게 나란 어떤 이미지인지 집중해서 살펴보게 됐다. 한 나라의 가치관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곳이 공교육 기관이다. 인간사 미래에 대한 담론이 끊임없이 오가고, 그에 따른 연구와 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그런 장소에 발을 들였다는 것은 나의 문화 정체성이 도마 위에 오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 겸손이라는 명분 하에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우선으로 여기자는 기준을 세웠다. 나의 나약함을 어느 정도 잘 포장해서 (다른 말로 융통성 있게)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을 높이는 행동은 유용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게 올바른 소통 방법이라 생각했고. 그러나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캐나다 문화 속에서 자란 친구들과 그룹 과제를 하면서 문제가 드러났다. (그러니 개인 의견 존중 1위 국가의 위엄을 무시하면 안 된다.)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하거나, 결정하기 전 동의를 구하는 제스처 등 다른 조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한 나의 행동이, 내 의견에 대한 불확실, 자신 없음으로 비칠 때가 있었다. 이민자 계층이 아닌 소위 주류에 속한 아이들과 대화할 때 그런 오해가 심했다. 나이나 성숙도 문제 일 수도 있지만, 실습을 나가서 캐나다인 교사들과 교류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을 고려하면 대체적으로 캐나다 사람들은 그런 대화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어느 문화권이나 사람 사는 데라면 비슷한지, 확신 없는 의견은 비중 있게 논의되지 않는다. 알맹이가 실한 지 부실한 지 따져 보기도 전에 말이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자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한국의, 동양의 정서에 (그리고 원체 표현에 인색한 성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서 권장되고 또한 존중되었던 방식이 캐나다 문화 안에서는 소통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자기주장(self-advocacy)이라는 개념을 일찍부터 심어주려 한다. 실습했던 교실에는 Individual Education Plan을 가진 아이들이 다섯 명 있었다. (IEP는 공립학교에서 개별적인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정부가 절차를 거쳐 (심리 진단, 지능 검사, 부모 면담 등) 공식적인 지원을 받도록 하는 프로그램) 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실 안의 나머지 학생들도 자기주장을 연습하도록 격려한다. Self-advocacy는 보통 지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인생의 결정권, 주도권을 주장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그것과 비슷하게 사회적 약자인 어린아이 때부터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습관을 심어주려 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런 문화적 차이를 통해 단순한 ‘캐나다 생존 스킬 101’을 넘어선 통찰을 얻게된다
자기주장은 보통 자연스레 길러지는 것이 아닌 발전시켜야 할 하나의 기술이다. 꼭 캐나다 사람들 앞에서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맺는 중에도 나를 적절히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위해주고 받쳐주는 것만이 사람의 마음 길을 여는 최고의 수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 나를 표현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면 깊은 관계를 도모할 수 있다. 쌍방으로 알아가는 수고를 덜어주는 셈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자기주장의 기술을 연마한다면 이것도 겸손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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