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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Feb 04. 2018

어서 와, 캐나다는 처음이지?

국제학생 가르치기


한 달간 국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작년 말 급하게 사람을 구한다는 이메일을 받고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사흘 전 인터뷰를 했다. 한 달 단기 계약이지만 매일 다른 학교, 다른 교실에 불려 다니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가르칠 학생은 어학연수, 이민, 교환학생 프로그램 등 다양한 구실로 캐나다 추운 겨울바람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다. 시차와 무자비한 온도 적응도 힘든데 3주간의 짧은 프로그램까지 듣는다. 공립 고등학교에 편입하기 위한 준비운동이다. 한 달간 수학, 발표, 문법 그리고 오리엔테이션 수업이 진행된다. 2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각자 배정된 학교로 뿔뿔이 흩어져 누군가는 두 달, 누군가는 일 년, 그리고 누구는 캐나다에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나는 오리엔테이션 과목을 맡았다. 캐나다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공교육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르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수업은 처음이라 급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적였지만 초등 교육과 비슷한 조언이라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다른 고려 사항은 아이들이 영어에 익숙지 않다는 점이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은 나이에 영어권 국가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13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적응 기간…. 그 느리고 깊은 시간이 생각나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처음 이민 왔을 때, 영어는 단순한 남의 나라말이 아니었다. 나를 서걱서걱 해체하는 칼이었다. 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자신의 생소한 조각을 마주하고 저울질했다. 여기서 살아남기에 필요한 부분일까, 버려야 하는 부분일까…? 영어는 나의 나됨을 불에 지지고 볶는 매운 양념이었다. 무슨 음식이 탄생할지 당최 예상되지 않는 생소한 맛. 하지만 얼추 어울리는 부위를 눈치껏 추려내야 했다. 살에 닿으면 홧홧하고 한번 휘적여도 깜짝 놀란다.




지나친 배려는 버리고 자신 있어 보이는 태도를 더하면 좀 있어 보일까? 자존심을 반 정도 잘라내고 오기를 조금 추가해야 될 것 같다. 환경이 나를 요리하고 있었다.


안녕이라는 짧은 인사말에 일주일 치 용기를 지급하고,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 되묻는 점원의 사소한 표정 변화에 하루 치의 기분이 저울질당했던 시간. 캐나다 친구들이라면 한두 시간 후딱 해치울 숙제에 온종일 매달려도 갈 길이 멀 때 찾아오던 허탈한 기분. 어떻게 맛봐도 무딘 감각만 전해와 차가운 도시 남자 같았던 영문학과 나 사이의 거리. 이게 한국어라면 정말 잘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볼품없는 내 모습. 개구리 올챙이 때 기억 못 한다고, 구석에 켜켜이 쌓인 감정에는 이제 뒷맛만 남았다.


다시 꺼내 들어 입속에 굴려본다. 기억하려 애쓴다. 나는, 그래서, 이제는 어떤 맛을 내는 사람이 된 걸까? 캐나다의 겨울을 처음 맞이하는 9학년짜리 아이들에게 익숙하게 느껴질까, 아니면 다가가기 어려운 이국적인 향을 낼까? 설마 코 막을 정도까진 아니겠지. 학생 대부분은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 친구들이다. 그래도 내 기본은 너희가 항상 맛보아 아는 쌀일걸. 짜릿하게 새로운 경험은 안겨주지 못하겠지만 이도 저도 아닌 나를 활용해 보기로 한다.



글, 그림 상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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