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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Oct 11. 2015

#07 어느 하마의 쓸쓸한 최후

하마가 내어준 몸은 언젠가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는데 쓰일것이다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구에 들어 온지 삼일째 되는 날 오후. 게임 드라이브(크루저를 타고 야생동물을  찾아다니는 일)를 마치고 캠프로 돌아오는 길에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수컷 하마와 마추쳤다. 눈을 껌뻑이고 숨을 몰아 쉰다.


광야 한 가운데 혼자 쓰러져 숨을 몰아 쉬며 죽음을 기다리는 하마의 모습. 그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마는 어느 정도 이상 성장하면 별다른 천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 누가 이렇게 깊은 상처를 냈을까? 가이드 말로는 분명 무리 중 다른 수컷 하마였을 거란다. 싸움에서 상처를 입고 무리에서 쫓겨나 혼자 남은 것이다. 상처가 너무 깊어 살아날 가망이 없을 것이란다.


상처가 깊지 않다면 희귀종의 경우 치료한 후 돌려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하마는 이미 가망이 없는 듯하다. 더구나 한번 무리에서 쫓겨나면 다시 돌아가도 무리가 받아줄 확률은 적다고 한다.


이제 세상에서 이 하마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벌써부터 상처부위는 미생물과 벌레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 하마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접어든 것이다.


깊은 한숨을 몰아 쉬며 천천히 죽어가는 하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한숨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마음 편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 일까? 아니면 증오와 분노, 삶에 대한 갈망의 한숨일까?


다음 날 아침. 다시 찾은 마라 평원에서는 멀리에서도 어디에 그 하마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벌처들이 앞 다투어 날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마 주위는 이미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하마는 숨을 거두고 그 몸은 벌처들의 잔치상이 된지 오래. 하마의 두터운 가죽을 뚫기 어렵기 때문에 벌처들은 상처부위와  눈부터 파 들어 간다. 아마도 냄새를 맡고 올 하이에나들에게 뺏길지 모르니 빨리 배를 채워야 할 것이다. 벌처들끼리의 먹이 싸움도 치열하다. 벌처들에게도 먹여 살려야 할 새끼들이 있기 때문이다.

야생에서 죽음은 동물의 몸이 담고 있던 고농도 영양분의 재분배를 의미한다. 하마가 내어준 그의 몸은 돌고 돌아 마라 평원 어디선가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는 데 쓰일 것이다. 하마의 쓸쓸한 최후가 미추(美醜)를 떠나 복잡하게 얽힌 마라 생태계의 한 단면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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