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세계적 피아니스트 윤디 리(李云迪; Yundi Li)와 시드니 심포니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에 대해 말이 많다. 윤디 리가 1악장 초반부터 실수를 연발하더니 급기야 연주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날 SNS에 사과 한 마디 없이 핼러윈 의상을 입은 사진을 올려 윤디는 다시 한 번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뉴스와 SNS에 올라온 글 들을 보면 비난 일색이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들 중 일부는 도를 한참 넘어선 인신공격도 보인다.
연주자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한다. 관객이 느끼는 실수도 있지만 이 보다는 본인만 아는 소소한 실수가 더 많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전문 연주자의 공연이 중단될 정도로 악보를 까먹는 경우는 드물지만 없는 것도 아니다.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암기하는 암보(暗譜)에 의존해 연주하기 시작한 데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작곡가이자 고도의 기교를 구사하는 천재 연주자이기도 했던 리스트는 30대의 젊은 나이였던 1841년부터 8년간 전설적인 유럽 순회 연주회를 감행,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 즉 리스트 광(狂) 팬을 유럽 전역에 걸쳐 확보했는데 이때 리스트는 이전 피아노 연주자들이 악보를 놓고 연주했던 것과는 달리 전곡을 암보로 연주해 더 드라마틱한 감정이입을 연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피아노 독주에 나선 전문 연주자라면 암보 연주가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같은 피아노 연주라도 현악사중주나 피아노 반주 등의 경우에는 아직도 악보를 넘기며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실 연주회가 기억력 테스트도 아니고 굳이 암보 연주를 고집할 필요가 있나 싶다. 더구나 리스트 시대 리사이틀은 보통 30분을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독주자가 두 시간 동안 복잡한 고난도의 연주를 소화해 내야 하는 요즘 연주회에서도 완벽한 암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물론 악보를 앞에 놓고 본다고 해서 실수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1921년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1875–1962)와 역시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였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는 카네기 홀에서 협연을 한다. 그런데 공연 도중 크라이슬러가 어느 부분을 연주하고 있는 지를 놓쳐버리는 사태 발생. 다급해진 크라이슬러가 라흐마니노프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Where are we?
지금 우리 어디지?
그러자 라흐마니노프는
Carnegie Hall, Sir!
카네기 홀인데!
지금도 카네기홀 투어를 하면 들려주는 일화 중 하나.
어찌 보면 대형사고인데 유명한 일화로 남아 웃음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로 불리는 국제 차이코프스키 대회(International Tchaikovsky Competition)의 1958년 첫 회 피아노 부문 1위는 밴 클리번(Harvey Lavan "Van" Cliburn; 1934–2013)에게 돌아갔다 (참고로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은 1974년 피아노 부문 2위를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밴 클리번은 20대 때 이미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린다.
1994년 7월 11일 60세 생일을 맞아 오랜 공백기를 접고 할리우드 보울(Hollywood Bowl)을 가득 매운 14,000의 관객 앞에 다시 선 밴 클리번.
첫 곡인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 중 몇몇 부분을 잊어 버려 작은 실수를 했던 그는 중간 휴식시간 동안 심각한 무대공포에 휩싸인다. 중간 휴식 후 예정 보다 십분 늦게 무대에 나온 밴 클리번은 결국 두 번째 곡인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포기하고 관객들에게 사과한다.
그러면 이때 당시 화난 관객들이 밴 클리번에게 야유를 퍼 붓고 욕설을했을까? 관객들은 오히려 무대공포에 휩싸인 밴 클리번에게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거장들도 나이가 들면서 겪는 기억력 쇠퇴를 피할 수는 없다. 아더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 1887–1982), 클리프 쿠르존(Clifford Curzon; 1907–1982),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Sviatoslav Richter; 1915–1997)와 같은 거장들도 악보를 잊어 무대 위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했던 기록이 있다. 어떤 연주자들은 암보 연주를 기피하거나 리사이틀 레퍼토리를 축소해야 하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호로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도 무대 밖에서는 악보를 놓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했으나 리사이틀에 사용하는 곡은 극히 일부로 한정하였다. 무대공포증이 심해 무대에 오르면 암기한 악보를 모조리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강박 때문이었다고 한다.
수천의 관객이 자신의 손끝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주자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엄청나다. 이것이 심해지면 무대공포증(stage fright)이 되기도 한다. 완벽주의자에게 실수에 대한 공포는 특히 심각하다. 아무리 열심히 연습을 했어도 막상 무대에 올라 약간의 실수라도 하게 되면 연주 내내 그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또 실수를 하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급기야는 걷잡을 수 없는 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연주자도 사람이다. 누구든 실수를 할 수 있다. 물론 윤디 리가 졸연을 펼친것과 시의적절한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악담을 퍼붓고 인신공격까지 서슴치 않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윤디 리가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우리나라의 조성진을 너무 의식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넘은 억측성 기사에는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지금 윤디 리에게는 비난 보다는 따뜻한 격려와 포용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아무쪼록 윤디 리가 이번 경험을 계기로 한층 더 성장해 훌륭한 연주자로써 오랬동안 좋은 연주를 들려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