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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Nov 09. 2015

인천 국제공항 유감

'세계 최고' 병을 고쳐야 발전이 있다.

이 들을 올린 후 인천 국제공항 버스 승강장이 대폭 개선되었습니다. 새 글 '인천 공항 유감의 반전'을 보세요.

내가 가본 공항 중 가장 편리한 대형공항을 꼽으라면 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일본 동경 하네다 공항과 우리나라의 인천 국제공항을 꼽겠다. 이중 동경 하네다 공항이 2014년 승객수 기준 7,800 만 명으로 가장 크고,  다음이 암스테르담 스키폴 (5,500 만 명), 인천 국제공항 (4,700 만 명) 순이다.


세계 최고의 인천 공항

인천공항 곳곳에는 이 공항이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10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는 포스터와 현수막이 걸려있다. Airport Council International(ACI)에서 주관하는 평가에서 대형공항 서비스 부문 1위를 10년이나 지킨것는 잘한 일이 분명하다. 최근 ACI의 공항 서비스 평가 대형 공항 부문(년 이용 승객 4,000만 명 이상)에서는 인천 국제공항(ICN), 싱가포르 공항(SIN), 베이징 공항(PEK), 상하이 푸동(PVG), 홍콩 공항(HKG) 순으로 1-5위를  차지했는데 싱가포르 공항을 제외한 나머지는 나에게 아주 친숙한 공항들이다. 이들 공항을 이용해 본 내 경험상 개인적으로는 이 순위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마다 견해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순위가 잘됐느니 잘못됐느니 하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아무리 세계 1위라도 개선할 점은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사설기관이 그들 나름대로의 잣대로 세계 1위라는 평가를 해줬다고 해서 개선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발전이 없다.


공항을 평가하는 궁극적인 주체는 해외의 사설기관이 아니라 공항세를 내고 이 공항을 이용하는 공항 이용자들이 되어야 옳다.


정작 이용객들이 만족하지 못한다면 사설기관이 매긴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IT 강국", 모 지방자치단체가 쓰던 "세계 최고" 브랜드와 같이 우리 자신에게 붙이는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들은 그 뜻이 모호할 뿐 아니라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어 실소마저 자아내게 한다. 왜 그렇게 해외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순위에  연연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더구나 세계 최고라는 허황된 자만심이 개선에 대한 의지마저 꺾는다면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는 없느니만 못하다.


그러면 공항 이용자 관점에서 본 인천 공항은 어떤가? 내 경험에 비추어 승용차를 이용할 수 있는 수도권 이용객들의 경우 주차와 공항 이용이 그런대로 비교적 편리하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공항 이용객들, 특히 비 수도권 버스 이용객들에게 인천공항은 절대 세계 최고가 아니다. 인천공항은 가장 서민적인 대중교통수단인 버스 이용자들에게 특히 인색하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버스승강장의 후진성

공항 출구를 빠져 나와 버스를 타려고 하면 쾌적하고 편리한 국제적 수준의 공항 경험은 딱 거기까지. 바로 도떼기 시장 체험으로 들어간다. 왜 그럴까?

인천국제공항 버스 승강장 풍경

인천공항버스 승강장의 구조적 문제 몇 가지를 짚어 보자.


첫째, 이용자 관점의 표지판 부재

인천공항 버스 승강장을 이용하는 공항 이용객은 도로를 따라 길게 나 있는 통로 겸 승강장을 따라 걸으며 승강장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표지판은 도로의 방향과 직각이 되도록 설계해야 이용자가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용할 승강장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인천공항 버스 승강장의 세부 노선 표지판은 아래 사진과 같이 도로와 평행이 되게 설치되어 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경우엔 줄 선 인파를 헤집고 들어가 일일이 번호를 확인해야 한다. 이용자의 관점을 무시한 안일한 행정이다.

도로와 평행이 되게 설치된 인천공항 버스 승강장의 세부 노선 표지판

그나마 그 내용도 체계적인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아 표지판 위에 임시로 덧붙여 놓은 주먹구구식 안내문이 여기저기 보인다. 엄연한 국제공항의 버스승강장 표지판이지만 영문이나 일본어, 한자 병기는 온데간데없다.

표지판을 설치할 때는 이용자의 동선에 맞춰 이용자의 관점에서 쉽게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유저 익스피리언스(User Experience), 줄여서 유엑스(UX) 설계라고 하는데 인천공항 버스승강장은 UX 설계가 없다.


그나마 각 방면(方面) 별로  설치되어 있는 표지판은 통행 방향과 수직이 되게 설치되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대형 기둥에 가려져 있어 이동하면서 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UX 설계를 무시한 인천공항 버스 승강장에도 동선과 수직이 되게, 기둥에 가려지지 않도록 보행자의 머리 위에 설치해 이용객이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표지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다음 사진이다.

UX 설계가 적용된 인천공항 버스 승강장의 표지판

"하늘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표어가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 좁은 기둥 사이 승강장에 따로 예산을 들여 이런 전자 표지판을 설치했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면 인천공항보다 연간 이용승객이 훨씬 많은 일본의 하네다 공항 버스승강장 표지판은 어떨까? 아래 사진은 한 달 전쯤 찍은 하네다 공항의 버스 승강장 사진.

하네다 공항의 버스 승강장

인천공항 보다 훨씬 오래전에 지어진 하네다 공항이지만 UX를 고려해 표지판이 동선과 수직이 되도록 설치되어 있다. 하네다 공항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UX를 고려한 표지판 설계는 기본이다. 하네다 공항의 버스승강장의 표지판은 위 사진에서 처럼 앞으로 올 3대의 버스가 몇 시 몇 분에 출발하고 그 행선지는 어딘지가 일본어, 한자, 한국어로 된 전자 표지판에 나타난다. 우리나라 버스 승강장처럼 노선이 바뀜에 따라 덕지덕지 스티커를 붙여놓을 필요가 없다.


둘째, 협소한 이용객의 공간

인천공항의 버스승강장은 사실 승강장이라는 표현이 무색하다. 출국장으로난 고가도로를 받치고 있는 대형 기둥 아래 자투리 부지에서 알아서 버스를 이용하라고 내 버려둔 듯 한 느낌이다.


아래 사진을 보자. 기둥 아래 부지 중 인도 부분의 폭이 약 20-30미터 정도 되는데 이중 약 절반이 조경부지(왼쪽), 남은 공간의 약 1/3은 기둥이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공간의 약 1/5이 벤치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이용객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은 벤치와 기둥 사이 폭 약 6-8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버스 이용객은 그 사이에서 동선과 수직으로 줄 선 인파를 헤쳐나가면서, 또 동선과 수평으로 설치되어 있는 표지판을 확인하면서 승강장을 찾아야 한다. 난이도가 상당히 높게 설계되어 있다.

이 상황을 이용객 관점에서 보면 대략 아래 사진과 같다.

사람이 다니는 승강장은 이렇게 비좁은데 버스가 다니는 도로는 어떤가?

버스만 들어올 수 있는 일방 4차선 도로에는 여유가 넘친다. 그 옆 택시 승강장과 지상 승용차 주차장도 버스 승강장만큼 비좁지는 않다. 제대로만 이용된다면 4차선이 아니라 3차선으로도 충분히 버스의 통행이 가능하다. 한 차선 정도는 차 대신 사람을 위해서 내어줄 수는 없을까?


또한 세부 노선마다 서로 다른 승강장을 사용해 길게 늘어진 인천공항의 버스승강장 구조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하네다 공항의 경우 세부 행선지가 다르더라도 방면만 같으면 동일한 승강장에 여러 노선의 버스가 정확한 시간대별로 도착하기 때문에 인천공항처럼 버스 이용객이 긴 통로를 따라 걸으며 승강장을 찾아 헤매는 불편을 덜 수 있다. 한마디로 인천공항의 버스 승강장은 승객이 버스를 찾으러 가야 하는 구조이고 하네다 공항의 버스 승강장은 버스가 승객을 찾아오는 시스템인 것.


그러다 보니 노선별 승강장의 거리가 2-3 미터로 좁아 승객들이 도로와 수평이 되도록 줄을 설 수 없고 도로와 수직이 되도록 줄을 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통행이 더욱 불편하다.

하네다 공항의 버스 승강장은 노선간 거리가 확보되어 있어 통행 방향과 수평으로 줄을 설 수 있기 때문에 통행이 덜 불편하다.


셋째, 승차 프로토콜의 부재

이 문제는 인천공항의 문제라기 보다는 버스 운수회사와 버스 이용객이 개선해야 할 문제다. 이 문제의 요지는 이렇다. 먼저 버스가 오기 전 줄을 길게 선다. 그런데 막상 버스가 도착하면 줄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 왜냐면 모두 우르르 짐을 싣기 위해 버스 옆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동행이 있는 사람은 줄 어디에 섯건간에 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앞사람이 짐을 싣는 동안 먼저 승차할 수 있다. 그래서 버스가 오기 전에 앞쪽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하더라도 막상 짐 표를 받고 승차하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좌석이 없으면 장거리 버스를 이용할 수 가 없다. 그러면 짐을 실은 승객은 다시 본인의 짐을 빼야 한다. 한참 바쁜 시간대에 특히 자주 발생한다. 줄 선 순서대로 짐을 싣고 승차하면 되는데 짐을 실으러 우르르 몰려가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인천 국제공항이 개항한 직후부터 지적된 고질적인 문제다. 14년 전 한 지방지의 오피니언 난에 올라온 글을 보자 (2001년 8월 7일 헬로 디디 기사 참조).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을까? 이제는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


넷째, 무용지물이 된 버스 승차권 자동판매기

아마 작년이었던 것 같다. 비좁은 인천공항 버스 승강장에 승차권 무인발권기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때 이 기계를 이용하던 외국인이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아 도와줬던 일이 있다. 이 외국인은 줄을 서서 기다리다 발권기 앞에 섰는데 본인이 가려는 행선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문으로는 찾을 수 없어 나는 한글로 바꾸면 찾을 수 있으려나 했으나 그것도 헛수고. 알고 보니 승차권 자동판매기는 서울지역만 발권이 가능하다고 조그맣게 화면에 쓰여 있다. 표지판 어디에도 서울 행선지 전용이라는 말은 없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지방행 사람들은 막상 자동판매기 앞에서 자판기와 씨름을 좀 해본 후에야 본인의 행선지는 아예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안일한 행정.     

그나마 제대로 작동되는 장비도 몇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버스 승차권 자동 발매기를 이용하는 승객이 별로 없다. 분명 예산을 들여 좋은 의도로 만든 장비일 텐데 무용지물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세계 최고' 공항에서 느낀 씁쓸함

세계 최고의 인천 국제공항에서 버스 이용객을 위한 배려는 찾기 힘들다. 버스는 아마도 이용객 수로 따지면 아직까지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항 이용 교통수단일 것이다. 버스 이용객이 부담하는 공항세도 따라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인천공항의 버스승강장은 이 공항의 다른 시설에 비해 특히 낙후돼 있을까? 물어보나 마나 한 얘기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특히 없는 인천 국제공항 버스승강장에서 나는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인천 국제공항 버스 승강장의 문제는 분명 해결 가능한 문제다. 의지만 있다면, 이용객의 시각에서 문제를 보려는 노력만 있다면 현행 일방 4차선인 버스 전용 도로를 3차선으로 줄이고 버스 승강장 구조를 대폭 개선해 버스 이용객들이 정류장을 찾아 헤매는 불편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버스 이용객을 배려해 승강장 구조를 개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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