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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Mar 02. 2021

첫 출근

중고 신입 두 번째 이야기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시작했다. 

일 시작이 아침 8시이다 보니 다른 때에 비해 출근을 서둘러야만 한다. 7시 이전에 출근해야 했던 건설 현장 생활도 한동안 경험해보았지만,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이른 출근 시간이 여전히 곤혹스럽다.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의 출퇴근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정이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동이 자유로운 나는 과감하게 지금의 반지하 방을 정리하고 회사 근처의 원룸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얼마나 이 회사에 몸을 담고 일할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에 있을 어떠한 결정보다도 현실의 불편이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사회 초년에 처음 직장생활을 했던 강남이란 곳으로 나이가 들어 되돌아왔다.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회사를 입사하고 퇴사하기를 반복했지만, 경력과 상관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미국에서 돌어와서 2년이란 시간을 그저 흘려보냈다. 처음에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새로운 기술을 공부했고,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들이닥쳤다, 역병이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여러 상황이 계획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미 속도를 낸 시간은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커다란 흐름이 되어 버렸다. 물에 빠진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지푸라기라도 움켜쥐듯이, 나 또한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살아야겠다는 심정으로 회사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니던 회사를 떠나 사업이나, 전업 등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다시 회사라는 조직 생활로 돌아왔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을 통해 회사를 알아보기도 하고, 무턱대고 엔지니어를 뽑는 회사들을 찾아 이력서를 보내보기도 했다.      


‘찾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처럼 오래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조건에 근접한 회사를 찾게 되었고, 입사하게 되었다. 내가 원했던 조건은 많지도 크지도 않았다. 첫째는 쉬는 동안 배웠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회사를 원했다. 새로운 기술을 오랫동안 배운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냥 취미 활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회사가 나의 첫 번째 목표였다. 둘째는 해외 현장 및 공사 현장으로의 파견이 가능한 회사였다. 설계 사무소 또는 엔지니어 사무소의 경우,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직접적으로 나의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회사를 원했었다. 

누군가는 연봉을 첫 번째 조건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데 돈보다 나은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걸어온 엔지니어로서의 삶은 돈과는 거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늦은 나이에 정규직 취업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첫 출근 이후, 내가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사십 대 아저씨들의 시답지 않은 농담들과 신변잡기 등을 내내 이야기하던 그가 갑자기 회사의 분위기에 대해 물었다. 아마도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회사인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대답했다.   

“우리 회사가 굉장히 젊어.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들어온 어린 친구들이 많은 편이야. 사실, 중간 경력직 수가 많이 모자란 상태지. 

나이 많은 관리직 인원과 어린 기술직 인원만 있다 보니 실질적인 일을 진행하는데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해."  


”응, 너도 적은 나이는 아니잖아! “    

 

”그렇긴 하지. 

젊은 친구들이 많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 아이들과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지 좀 막막해. 

특히나 20대 초반의 여직원들이 다른 엔지니어 회사에 비해 많은 편이라서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갈지가 걱정이야.”     


내가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회사의 현실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진행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나름의 걱정을 표현한 거였다. 팀장으로서 쥐어진 프로젝트를 아무런 경험이 없는 어린 친구들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그리고 지금의 어린 세대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문제 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친구는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이야기했다.    

 

“어린 직원들이랑 일할 때 조심해라. 말할 때 깊이 생각하고, 될 수 있으면 농담 같은 것은 하지도 말고. 환갑잔치를 깜방에서 치를 수는 없잖냐.”     


그가 걱정하는 것은 요즘 자주 뉴스에서 거론되는 직장 내의 성희롱 또는 성폭력에 관한 부분이었다. 회사와 같은 조직 문화에서 일어나는 성과 관련한 문제들은 대부분이 상, 하의 위계질서에서 일어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나이가 많은 나와 나이가 어린 신참들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위계질서를 갖게 되고, 그 속에서 작은 실수 하나가 서로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기에 그가 걱정하는 거였다. 

물론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하는 약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맞는 일이겠지만, 그는 친구 된 입장에서 나의 걱정을 먼저 해주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은 과장된 표현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친구의 농담을 통해 우리 세대가 사회 초년생으로서 가졌던 회사에 관한 이미지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함께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곳이 아닌, 자신의 안녕을 위해 조직 구성원들 간에 관계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곳으로 변해버린 점에 놀라웠다.  

    

어찌 보면 새로운 회사에서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집중하던 나로서는 너무도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시절에도 구성원들 간의 관계가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었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어느덧 내가 문제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팀장의 지위를 부여받은 입장에서 어린 직원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 것이 무척이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분명 팀을 이끄는 위치와 따르는 위치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에 따른 명령과 이행이 아닌 사적인 감정이 서로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순간, 일이든 개인적인 관계든 불편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최근에 겪은 예로, 지금의 직장에서 부서장이 몇 가지 사소한 것들에 관해 꼰대스러운 강요를 할 때가 있었다. 점심때마다 자신이 먹는 점심 식사 방법에 대해 똑같이 먹어보라고 반복적인 이야기를 한다. 어느 면에 있어서는 건강을 신경 써주는 선임으로서의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반복의 횟수가 10번이 넘어갈 때쯤에는 매번 조사하나 다르지 않은 그의 레퍼토리가 소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젊은 직원들은 그와의 식사뿐만이 아니라 대화까지 피하기 시작했고, 어정쩡한 위치의 나 같은 중간 관리자들만 남아 그의 반복되는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회의 시간에 어린 친구들에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예스러운(?) 농담이나 자신이 경험담을 길게 이야기할 때면, 나조차도 어딘가로 숨고 싶어 진다.     


회사에서 만들어지는 성(Gender)과 관련된 문제들 또한 이렇게 사소한 스캔들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이 든다. 조직 내에서 직급이 높고 나이 든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명령에 따르는 이유는 그들이 권위와 권력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분야에서 쌓아온 경력과 지식이 그들의 권위를 대변한다. 그리고 그들의 권력은 월급이라는 물질적 혜택과 인사평가라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힘이 선을 넘을 때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고착화된 인식 또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원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성희롱 또는 성폭력과 관련한 여러 사회적 이슈들을 최근에 접하면서 나 또한 반성하게 되는 부분들이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이러한 성적인 이슈들에 대해 스스로가 여전히 남성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스를 통해 보았던 특정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왜, 저것도 하나 관리를 못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개별 사건에 대해 감정을 이입하는 경우가 생겨난다는 점이었다. 각 사건에 대해 진위를 파악하지 않고, 표면으로 돌출된 이야기만을 가지고 내가 가지고 있는 젠더의 가치관을 들이 대곤 한다.

변명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나의 삶도 가부장적인 가정과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마초적인 군대문화를 겪으면서 당연하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성 우월주의 위에서 문제들을 판단해 온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다시 조직문화로 돌아와 새로운 동료들을 보면서 느꼈던 점이지만, 사회를 처음 시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무척 재미있고 설레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내가 가르쳐야 할 것도 있을 것이고, 내가 그들을 통해 배워야 할 것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 경계하는 것은 이곳에서 내 권위와 권력을 내세워 어려운 상황에 그들을 앞장 세우고, 나의 만족을 챙기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있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그 길을 지나간 사람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앞서 발자국을 남겨주는 먼저 경험한 사람일 뿐이다.' 

일에 있어서나 회사 생활에 있어서 나를 따를지 말지는 그들의 자유일 것이다. 다만, 시간이 지나서 기회가 된다면 ‘나로 인해 바른길을 갈 수 있었다’는 인사 한마디 정도 들을 수 있으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림은 심재국 화백님의 '물 잔 속의 딸기_01'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aekuk.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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