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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Mar 21. 2021

사월의 여수 밤바다

한국에 들어오고 난 이후, 한 달에 한두 번은 경조사에 불려 다니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결혼식이나 돌잔치보다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대부분이 내 동년배들이거나 비슷한 또래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이다. 내가 아는 모든 친구 부모님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거나, 약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티신다. 간혹 친구들로부터 뜻하지 않는 소식을 접할 때면, 어릴 적 보았던 그분들의 모습이 떠올라, 지금의 소식이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큰 사고가 아니고서는 대부분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지병으로 돌아가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병세가 깊어갈수록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정해진 절차를 하나씩 밟아 나아간다. 

간혹, 가족 간의 불화나 고통으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가 된 이들도 있지만, 떠나는 이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감정이 되고 만다. 대상이 사라진 원망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내 삶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긴 간병 생활로 오랫동안 힘들었던 이들도 정작 고인을 보내는 순간에는 함께 보낸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고들 한다.      


”이렇게 갈거라 생각은 했지만... 마음의 준비도 다 못했는데, 허무하게 떠나보낸 것 같아. “     


그네들이 말하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간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고 나의 마음이 생각보다 덤덤했던 이유를 지금도 잘 모르겠다. 바쁘게 일을 하고 있던 어느 오후, 처음 보는 전화번호로 갑작스럽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오영옥 씨 아드님 되십니까?‘     


”네, 말씀하세요. “     


”00 병원입니다. 어제 어머님이 정기검진 받으러 저희 병원에 방문하셨거든요. 어머님 몸이 많이 안 좋으신데, 아드님께는 알고 계셨습니까? “     


평소에 많이 안 좋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몸이 안 좋다는 의미는 ’ 몸이 늙어서 기력이 많이 약해졌다 ‘정도의 의미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자식의 삶보다 자신의 삶에 더 열심이던 엄마를 보고자란 나는 엄마의 삶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던 엄마도 자신의 고통을 자식인 나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혹시 간암인 건 알고 계셨나요? 어머님의 상태를 정확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오늘 저녁에 무조건 시간 내셔서 병원에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연륜이 있어 보이는 사무적인 그의 말투에서 엄마의 몸이 상당히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엄마가 검진을 받고 온 병원을 바로 찾아갔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꼬장꼬장해 보이는 인상의 전형적인 의사 선생님은 꽤나 직접적으로 엄마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이게 어제 오영옥 씨가 찍은 X-Ray에요. 잘 모르시겠지만, 지금의 간 상태가 상당히 안 좋습니다. 30년을 넘게 간에 관한 X-Ray를 본 제 소견으로는 간암 말기입니다. 정확한 것은 종합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제 생각에는 4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으신 것 같습니다. 내일이라도 종합병원에 모시고 가세요. “  

   

그의 설명은 너무도 간결했고, 정확했다. 다음날 찾아간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고 엄마의 현재 상태에 관해 설명을 듣게 되었다. 결과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았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나의 마음은 충격도 당황함도 없이 덤덤하게 지금의 현상을 받아들였다.    

  

의사들이 간암이나 간경화를 설명할 때, 늘 상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간이란 것이 장기중에 가장 둔하다는 것이다. 장기 중, 맡는 일은 가장 많으면서도 가장 묵묵하게 일하는 장기가 바로 간이다. 모든 독소를 해소하고 피를 맑게 해 준다. 간은 거의 24시간 일하지만 아프다고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지도 않는다. 단지 한순간에 자신의 역할을 놓아버릴 뿐이다.     

어쩌면 내 어미의 삶이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자신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물론 자식인 나를 위해서 그렇게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그녀의 모습은 돈과 일에 정신없이 집착했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쉼 없이 전진해 왔다. 


사실, 엄마와 나누었던 마지막 유언 같은 말이 그녀를 설명하기에 더 충분할 것 같다.      


”내 가방에 수첩 꺼내 봐라. 거기에 내가 받아야 할 돈하고 줘야 할 돈 적어놓았거든. 가게 가믄 거기 사거리 커피집 있지? 거기 가서 이 이름들 보여주면 다 알려 줄테니까 가서 꼭 돈 받아야 한데이.“   

  

”걱정 말고 여기서 쉬다가 가셔. 낼모레 갈 사람이 뭔 놈의 돈타령이여. “     


”그래도 아깝잔여. 열심히 일해서 번 돈 인디. “     


돈 버는 일에 집착했던 어미와 가족에게는 너무도 무뚝뚝한 아들의 대화는 항상 이러했다. 그리고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하지만 그녀의 생각 속엔 하나 있는 자식의 걱정보다는 그녀가 두고 가는 돈이 더 아깝게 여겨졌던 것 같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돈에 관한 집착이 일반인들의 생각하는 상식을 뛰어넘었다. 큰돈을 벌 수 있다면, 가족을 놓아두고 어디라도 달려갔다. 어린 시절, 친척 집을 전전하던 나의 기억에 엄마는 돈에 미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기억이 남아있던 시절부터 엄마는 나를 방치한 채 남처럼 살아온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평생 번 돈을 모두 잃고 동대문 시장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된 그녀의 삶은 어지간한 사내도 버티기 힘든 과정이었다. 몸이 아파서 밤새 끙끙 앓아누워도 아침 6시가 되면 알람도 없이 기계처럼 일어나서 아침 밥장사를 하러 나갔다. 시장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일요일도, 공휴일도 장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일 년에 단 이틀만을 쉬었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그녀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몸은 육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급속히 무너졌다.      


그녀의 삶이 단 4개월 만을 남긴 시점에 나는 그녀와 가장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고통을 같이 경험하게 됐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짜장면과 단 음식을 찾기도 하고, 입고 있던 가운이 답답하다고 병원의 넓은 중앙홀에 나가 벌러덩 눕기도 자주 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도 잠시, 갑자기 기능을 정지해 버린 간은 결국 온몸을 집어삼키는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간이 기능을 잃어감에 따라 배에는 복수가 차오르고, 걸러지지 않은 피가 흘러 뇌로 들어가 세포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3개월이 지나가는 어느 시점부터는 황달이 오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인사까지 하고 회사에 다녀온 어느 날, 그녀는 옆에 있는 자식마저 몰라보는 상태가 되었다.      


옆에서 계속 지켜보시던 간병인이 그녀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오전부터 정신을 잃고 고통에 몸부림을 쳤어요.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진통제랑 수면제 주사해주시고 나서 편안해지셨어요. “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손끝의 감각마저 느끼지 못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 하고 이제 편히 가자. 나머지는 내가 정리할게. “     


그녀가 듣지 못할 것을 알지만, 나의 마지막 인사가 그녀를 안정시켰는지 그녀는 며칠 후 더 이상의 고통 없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죽기 전에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넓은 바다에 그녀를 묻기로 했다. 당시에도 사람의 뼛가루를 산이나 바다에 함부로 뿌리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도 원했던 일이라 한적한 바닷가로 가서 그녀를 바다에 뿌려주고 왔다.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보지 못한 그녀가 늘상 이야기했던 '세상 멀리 돌아다니고 싶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죽어서까지 뭔가에 구속받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뜻만큼은 이루어졌으리라 믿는다.   

  

벌써 12년이 되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있으면서 나에게 많은 것을 주고 떠났다. 심지어 그녀의 피를 이어받은 나에게 가지고 있던 질병마저 남겨주고 떠났다.      

어느 날 갑자기 안 좋아진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았을 때 일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병의 조짐이 나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원했던 자식의 삶이란, 그녀 자신과는 다르기를 바랐지만, 그녀가 주고 간 유산이 어딘가 그녀의 삶을 따르게 하는 것 같아서 슬펐다.      


엄마의 기일이 다가온다. 그녀를 떠나보낸 사월의 여수 밤바다가 기억난다. 다음 달에는 엄마를 만나러 여수에 다녀와야겠다.



[그림은 심재국 화백님의 '파도'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aekuk.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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