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dic Flea Market
ㅣ 들어가며 ㅣ
<북유럽 디자인의 비밀>에서는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10여년간 디자이너로 살아오며 경험한 특별한 이야기들을 기록합니다. 우리에게 아직은 생소한 북유럽의 문화와 사회 전반에 관한 흥미로운 주제들을 이야기합니다.
플리마켓 (flea market) , 앤틱 마켓(Antique market), 벼룩시장. 유럽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씩 만나게 되는 익숙한 풍경 중의 하나이다. 현지인들과 여행객이 어울려 북적이는 분위기도 흥겹고 저렴하고 유니크한 제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늘 즐거운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지역의 꾸미지 않은 문화와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라마다 그 풍경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 곳 스웨덴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 곳 스웨덴에서는 플리마켓을 'LOPPIS' 라고 칭한다. 대부분은 집에서 안 쓰는 물건들을 들고 나와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한다. 지역단위로 마켓이 열리기도 하고 시에서 큰 규모의 축제처럼 주최하기도 한다. 과거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가 목적이었다면, 지금의 플리마켓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장이 되어가고 있다. 마켓 내에 카페나 공연 같은 행사가 함께 진행됨으로 그곳을 지나는 관광객들도 정보를 미리 찾아서 오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온라인 중고나라’ 나 ‘아름다운 가게’ , 혹은 ‘아나바다 운동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 등을 통해 중고시장이나 벼룩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 북유럽에서의 중고품 (second-hand products) 은 이미 시장 경제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와 더불어 “ 플리마켓을 통해 재활용과 환경문제에 기여한다“ , “평상시 사용하는 물건도 플리마켓을 위해 깨끗하게 관리하며 쓴다.” “타인이 쓰던 물건도 깨끗하게 관리했을 것”이라는 신뢰가 함께 한다. 이러한 마인드가 기본 바탕으로 마켓이 진행되니 판매자나 구매자나 모두 만족할 만한 경험이 된다.
이 중고 마켓에 대한 스웨덴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바로 아래 사진에 보이는 MYRORNA와 EMMAUS 브랜드다.
https://emmausstockholm.se/butik/second-hand/
이곳은 마치 보물 가득한 창고에 들어가 유니크한 무언가를 찾을 것 같다는 기대감마저 들게 한다. ”이 가방 세컨드 핸즈에서 찾아낸 거야. 독특하지?” , “이 모자 60년대 레트로풍인데?” 주변 지인들에게서 쉽게 듣는 말이다. 세컨드 핸즈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뒷받침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순히 저렴하고 질 좋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 더불어 클래식하고 빈티지한 디자인 제품들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인 것이다.
필자에게도 앤틱 마켓에서 구입한 1960년대 레트로 디자인의 오디오가 있다. 음질도 훌륭하고 보존 퀄리티도 좋은 편이다. 당연히 최신 블루투스나 디지털 기능은 없지만,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그 희소가치와 유니크함은 최신 제품을 클릭 한 번으로 구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곳에서 보이는 플리마켓의 종류는 다양하다. 지역 단위의 커뮤니티 행사로 이뤄지는 소규모 플리 마켓은 상업적이라기보다는 가족적이며 친근하다. 판매자로 참여하는 가족들에겐 즐거운 이벤트와도 같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된다. 더 이상 쓰지 않는 장난감, 옷, 가방 등을 깨끗하게 닦고 정리해 들고 나와, 스스로 가격을 정하고 손님들에게 판매한다. 대부분 부모들이 관여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가 이 판매행위를 책임진다. 아이들끼리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집에서 만들어온 홈메이드 쿠키와 주스를 팔거나, 준비한 공연을 수줍게 선보이는 아이들도 보인다. 이러한 경험들이 아이들에게는 재미있고 색다르다.
플리마켓, 엔틱 마켓, 벼룩시장, LOPPIS 등 다양한 이름 아래 형성되는 이 중고시장 (Second-hand market) 은 이제 유럽 관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관광상품이 되기도 한다. 이 마켓을 통해 북유럽의 고가구 (古家具)와 인테리어 소품 등을 전문적으로 아시아로 수입해가는 비즈니스도 활발하다고 한다.
스웨덴을 비롯한 이곳 북유럽에서는 명품 브랜드의 가방이나 옷에는 그다지 큰 흥미가 없어보인다. 심지어 아무리 눈여겨봐도 브랜드를 알 수 없는 패션을 완벽하게 그들만의 느낌으로 소화해 내는 것을 본다. 이미 북유럽의 미니멀하고 감각적인 패션 트렌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패션에 민감한 문화의 나라와는 분명 다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잘 어울리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시대를 반영하는 트렌드나 컬러 등에는 민감하지만 유독 브랜드에는 둔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관심이 없다. 필자의 이곳 지인들 중에도 (패션에 민감한) 디자인 관련 종사자가 많지만 이러한 흐름에 함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브랜드나 트랜드의 흐름에 무지(無知) 한 것은 아니다.
바로 똑똑한 소비를 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피하고 현명한 소비가 생활화되니 소비의 질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나면 진정으로 원하는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것”
바로 건강한 소비다.
이러한 문화는 패션뿐 아니라 자동차, 인테리어 등의 일상의 소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늘 새것, 첨단의 최신 제품들, 트렌드를 쫓기만 하는 사회적 흐름들이 부차적으로 생산해내는 부정적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부디 플리마켓 (flea market)이라는 조금은 올드하고 투박한 흐름에 그 요소들이 조용히 부서지기를 기대해 본다. 친환경 소비습관이 우리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재활용의 생활패턴이 선진문화의 지표가 된다면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건강한 소비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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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조상우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로, 사진을 기록하는 포토그래퍼로, 그림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유럽으로 향한 한국인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은 책, <디자인 천국에 간 디자이너 / 시공사>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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