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다시 겨울이 되었다. 작년보다 훨씬 추워진 느낌이었다.
왜국에서 벌써 삼 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나는 열여섯이 되었다.
“활은 아직이야?”
다케토모는 나를 재촉했다.
내가 선물한 녹각궁이, 지난 가을 타쿠마 평원의 전투에서 망가졌다. 다케토모는 부드럽게 당겨지는 각궁의 시위를 특히 좋아했다.
모르면 모를까, 이미 맛본 이상 목궁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사냥 때문이었다. 다케토모는 이번 겨울에도 산짐승을 잔뜩 잡고 싶어 했다.
요시나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고 병사들의 입을 즐겁게 만들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투르, 엔주(延寿) 가문에서 칼을 바쳤어. 네 거야. 타쿠마 평원의 영웅에게 바치는 귀한 선물이지.”
다케토모는 검은 상자를 열어 보여줬다. 단정하게 만든 왜국의 칼이었다.
아직도 왜국의 태도는 손에 익지 않아서 욕심나지 않았다.
심드렁해 있자 다케토모는 안달이라도 났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칼이 아냐. 신검(神劍)이다! 어때, 멋있지? 칼날의 물결을 봐봐. 수십 번을 접어 두드렸다. 콧대 높은 장인 엔주가 몇 날 며칠 망치질하느라 어깨가 다 상했단다. 활을 가져와. 맞바꾸자.”
“선물이라며?”
“내 맘이다. 가지고 싶으면 어서 활을 가져와!”
엔주는 히고(肥後) 제일의 대장장이 가문이었다. 기쿠치 일족의 병기를 도맡아 만들었는데, 이번에 나를 위해 칼을 만든 모양이었다.
내 생각에, 히고를 다스리는 기쿠치의 명을 거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엔주가 정말 나를 위해 만들었는지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타쿠마 평원 전투에서 우리는 극적으로 승리했다. 다섯 배가 넘는 로슌의 대군에 맞서 싸워 이긴 것이다.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요시나리의 칼을 휘두르자 당황한 오오우치는 돌격전을 포기하고 도망쳤다.
만약 그가 침착하고 끈기있게 대응했다면 수적으로 불리한 우리는 결국 패배하고 말았을 것이다.
로슌의 비책이었던 별동대가 퇴각하자 적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반대로 기쿠치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나의 농담처럼 정말 하늘이라도 날 것 같았다.
로슌의 병사들은 뒤를 돌아 강으로 뛰어들었다. 도망치는 적군의 뒤통수를 향해 화살이 끝도 없이 날아갔다.
전투가 끝난 후, 요시나리로 변장한 나를 뒤늦게 알아본 무사들은 친왕을 사칭했다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릎을 꿇고 존경을 표했다.
그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다. 우리에겐 승리가 필요했고, 무사들은 자기 목숨이 귀한 줄 알았다.
고려의 관리도 이러했다면 아버지는 곤장을 맞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검을 물끄러미 보았다.
좋은 칼을 받으면 휘둘러야 한다. 그리 달갑지 않았다.
다케토모는 곧 다가올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규슈 일대의 가문들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동맹을 모의했다.
로슌과 사이가 멀어진 쇼니 일족과 시마즈 일족과는 이야기가 잘 되었다.
특히 시마즈는 규슈 남부를 장악한 유력 호족이었다. 기쿠치가 고립되더라도 남부에서 도와줄 응원 세력이 생긴 것이다.
오노(大野) 일족과 아마쿠사(天草) 제도(諸島)의 여러 가문과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오노는 히고 지방의 오래된 가문으로, 기쿠치강 하류 이쿠라(伊倉) 지역에 터를 잡았다.
아마쿠사 제도는 아리아케해의 입구에 위치한 곳으로, 그곳의 여러 일족이 기쿠치에 합류하면서 서쪽 바닷길은 완전히 열렸다.
아리아케해 건너 시마바라 반도와 그 북부의 히젠(肥前) 지방에서 암약하는 마쓰라토(松浦党) 일당들도 일부 끌어들인 모양이었다.
다케토모는 다가올 결전을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였지만, 나는 근본적인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어째서 기쿠치성에 집착하는가?
로슌의 전략은 너무나 한결같고 노골적이었다. 포위하여 말려 죽인다, 그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풍부한 보급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뜻이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우리가 기쿠치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 타쿠마 평원의 전투는 언제든 재현될 것이다. 두 번 다시 기적을 바랄 순 없었다. 로슌은 바보가 아니니까.
같은 상황이 생겼을 때 동맹을 맺은 일족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줄까? 쇼니와 시마즈에게 목숨을 걸고 기쿠치를 도울 만큼의 동기가 있을까?
분주한 다케토모의 움직임이 모래성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케토모에게 근거지를 옮기자고 여러 차례 설득했다.
타쿠마 남쪽 산지는 북으로는 타쿠마 평원을 두고, 서쪽과 남쪽엔 바다가 있으며, 동쪽은 산악지형으로 군사 이동이 어려웠다.
대군과도 감히 싸워볼 만한 천혜의 요충지였다.
마침 남부지역의 시마즈와 동맹을 맺었겠다, 지역의 영주 때문에 문제 될 일도 없었다.
그러나 다케토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근거지에 대한 왜인들의 집착과 일념은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었다.
조 삼촌은 그냥 받아들이라 하였지만 동의하지 못하겠다. 목숨이 달린 일을 그냥 그렇게 넘어갈 수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못할짓이 무엇인가. 집을 버리고 전통을 무너뜨리더라도 무슨 수라도 써야 하지 않겠나.
목숨 귀한 줄은 알면서, 한편으로 엄한 데 고집을 부리는 왜인들이 나는 이상하게 여겨지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조 삼촌은 왜인들의 관습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다.
타쿠마 평원에서, 삼촌은 오오우치의 나기나타(薙刀)에 목을 베이셨다. 기쿠치는 침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