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자국은 누구나 두렵다.
수많은 고민 속에서 결심을 했다는 것은 많은 생각의 결실을 내었다는 것과 같다.
여기서 나는 애매모호 한 사람과 열정적인 사람이 나뉘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걱정과 고민들을 끝으로 결심을 했지만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계속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단계를 넘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나는 나의 결정으로 한, 혹은 내 의지로 되어있는 제대로 된 결심을 하지 못했기에 애매모호한 사람으로 계속 살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계속 있는 것은 내 스스로의 자존감을 낮추게 되고, 비난하게 되며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만들게 된다.
그래서 나는 벗어나고자 얄팍한 결심을 버리고 진정한결심을 했다.
나의 한 발자국이란 부모님께 나의 계획을 말씀드리는 것이었다.
임용고시를 원하셨던 부모님께 내 얄팍한 결심은 항상 철없고 생각이 부족한 것들이었고, 또한 진정한 결심이 아니었기에 제대로 설명을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엇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는지, 흥미가 금방 떨어지는 나에게 꾸준히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한 분야에서 어떤 세부적 하위분야들을 선택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예상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등에 대해서 말하기까지 2주, 부모님께서 진정으로 받아들이실 때까지 5달이 걸렸다.
처음 부모님 반응은 아주 무덤덤하셨다.
마치 내가 또 그냥 공부가 힘들어서 잠깐 이야기하는 거겠구나 싶은 말투이셨다. 그래서 반대도 크게 하지 않으셨었다.
그러다 내가 정말 공부에 손을 모두 떼고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블로그, 브런치작가신청 같은 글과 그림들에 대해 시작하자 갑자기 모르는 척을 하셨다.
마치 내가 그림과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애초에 하지 않았던 것처럼,,
‘요즘 공부는 잘 되어 가니?’ ‘이제 며칠 남았지?’ 등등
그래서 난 말했다. ‘말씀드렸듯이 저 공부 이제 안 해요. 그림 그려요 저 이제.’ 그러자 침묵이 일었다.
그러곤 종종 일상생활 속에서 나에게 임용고시에 대한 장점과 임용고시까지 남은 시간들을 자주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그 와중에 내가 카카오톡 이모티콘까지 시작해보려 하자 응원하시는 말을 남기셨으나, 그림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던 나를 믿지 않으셨다. 부모님 생각으론 미술 같은 예체능은 무조건 재능이 확실한 사람들이 하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미술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에 학원을 다녀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술은 미대까지 다닌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했고, 내가 정말 실력이 안되는데 나서는 것일까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본 칭찬과 인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내 그림체를 발전시키다가 막힐 때 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기본과 기초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이지만 나는 내가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 1순위였기에 미술학원은 클래스 101에서 공부하고 막히면 학원을 찾아보자 싶었다.
다시 돌아와서, 이런저런 나의 불안이 있었지만 흥미를 꾸준히 보이지 못하여 금방 그만두는 나의 모습들은 그림과 글에서는 꾸준할 수 있음을 보여드리는 것이 부모님께서도 받아들이실 수 있는 시간을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꾸준함을 보여드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부모님께선 모르는 분야 속에서의 불안을 해소하고 싶으신 마음이 크셨기 때문에 확실한 것을 원하셨다.
인스타그램으로 5달 정도 그림을 올려 팔로우 수가 계속 오르고 있었으나 2달 정도 1,200명에 머무르자 발전이 너무 더딘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시며 불안해하셨다. 그림으로 외주를 받는 것이 목표인 것은 완전한 프리랜서를 뜻하는데 부모님께서는 내가 말한 1만, 2만 정도 되어야 첫 외주를 받을 수 있는 수치에 너무 못 미친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내면 속에서는 계속 깔려있으신 것이었다. 저 그림으로 뭘 먹고산다는 것인지, 그냥 공무원으로 꾸준히 월급이나 따박따박 먹고살지, 불안하게 왜 프리랜서를 한다는 것인지 등등 말이다.
그러면서 엄마는 나에게 임용고시 떨어져도 좋으니 시험만 이번에 보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한 차례, 두 차례 반복되니 내게 남아있던 임용고시 지식들이 조금씩 떠오르면서 팔랑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내 스스로를 갉아먹고 나의 시간을 없애는 임용고시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 거절하고, 두 번 짜증 내고 하다 나는 말로만이라도 알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곤 책 한 두 번 펼치곤 나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그렇게 총 5달이 흐른 후
드디어 완전히 내 그림과 글을 인정해 주셨다.
내 그림체에 대해서 왜 귀여운지 괜찮은 그림인 건지는 생각이 드시지 않는 것 같지만 부모님께서는 내게 '그림 이렇게 홍보하는 것도 있던데 한 번 해봐~'라던지, '그림으로 이런 것도 하더라~' 등 말씀을 남기셨다.
대학교 3년, 일과 학사학위 병행 1년, 임용고시 3년
총 7년의 시간을 누르고 난 새로운 곳에서 첫 발자국을 떼었다.
드디어 난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