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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8. 2022

도가니

그만하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오늘은 하지 맙시다

  2011년, 영화 '도가니'가 개봉했을 당시 나는 고등학생 3학년이었다. 청소년 관람 불가(만 18세 이상, 재학 중인 고등학생 제외) 영화였다.

  수능을 치루고 나서 처음 본 영화가 바로 '도가니'였다. 어둑어둑한 겨울밤이었다. 어머니와 중학생인 동생과 나는 안방 이불 안에 함께였다. 어머니께선 TV에서 영화 목록을 살피다가 '도가니'를 보자고 하셨다. 나는 만 18세였다.  초반에 남동생이 잠이 들고, 어머니께서도 어느 순간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이불을 꼭 끌어안고 영화의 엔딩을 지켜봤다. 꽤 많이 손으로 눈과 귀를 가리며 영화를 다 본 후, TV를 껐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심란함이 이어졌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언니도, 오빠도, 남동생도, 그때의 그 느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깨어있지 않았다. 화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복잡미묘한 감정을 한 켠에 쥔 채로 나도 어느새 잠들었던 것 같다.


  공지영 작가의 장편소설 《도가니》를 다 읽고 난 후, 문득 영화 '도가니'를 봤던 그 겨울밤이 생각났다. 내 기억으로는 영화에서는 배우 공유 씨가 비를 맞으며 많은 것이 담긴 눈빛을 보내면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주인공 '강인호'가 결국 집회에 참여하지 않고, 선배 '서유진'의 편지를 받는 것이 결말이다.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 기억이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야말로 쏟아지는 비를 맞던 그 모습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영화 '도가니' 개봉 후, 소설을 찾아 읽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소설도 차마 읽을 수가 없었다. 탐정학원Q의 '메구'도 아닌데, 종종 순간 기억 능력 비슷한 게 발휘될 때가 있다. 그런 경우는 대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장면들이었다. 그래서 폭력적인 영화나 자극적인 소재의 창작물들은 의도적으로 자제한다. 그래서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딱지가 붙지 않았다 해도 아마 나는 개봉 당시에는 그 영화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를 본 이후에는 더 무서워져서 이 소설을 내가 읽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현대작가론을 수강하지 않았거나, '공지영' 작가님으로 작가론을 작성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소설 《도가니》도 읽지 못했을 것이다. 보고싶은 것만이 아니라 봐야할 것까지 조금은 보려고 할 줄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소설책의 마지막 페이지 '작가의 말'을 살피면 공지영 작가께서는 우연히 인턴 기자의 스케치 기사를 읽은 후, 이 소설 외에 다른 소설을 쓸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공지영 작가께선 유독 씁쓸한 현실을 마주한 작품을 많이 쓰셨다. 《인간에 대한 예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이 대표적으로 그렇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진심이 담긴 소통을 통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된 '사형수'를, 《봉순이 언니》에서는 어린 짱아네 가족의 식모이면서 동시에 온갖 고초를 겪는 '미혼모'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금 그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선도 깨닫고야 마는 것이다.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발문 '무소의 뿔처럼 결연한 고독 안에 희망'에서 유현미(동아대 여성학 강사)께선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는 박완서 씨의 오래된 팬이다. 웬지 어머니의 냄새 같고, 슬픔 같고, 그래서 혼자서 그리움까지 느껴가며 읽는 박선생님의 글은 여성문제를 예민하게 지적할 때도 따뜻함이 배어있어서 좋다. 나는 그것을 완숙한 인간의 향기이고, 너그러움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소설 《도가니》를 읽고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공지영 작가님의 글에도 따뜻함이 배어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그런 따스함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먼저, 자애학원을 돕고자 했던 '강인호'라는 인물이 불과 얼마 전에는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말이야, 누가 누굴 도울 수 있지? 돕는다는 건 결국 돕는 자의 자만심을 채우는 일일 뿐이야. 냅둬, 도와달라고 먼저 말하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라고 말했던 바로 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비관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냉소적인 시선을 내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처지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때로는 다수의 따가운 시선도 감수하며 애쓰기도 하고, 누군가를 돕고 싶어하며 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자신을 바라기도 한다. 세상살이 그리 '녹록치 않다'고 많이들 말하지만, 그래도 역시 '살만하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선(善)'으로 한발짝을 내딛는 스스로와 타인을 마주하는 덕분이지 않을까.

  또 하나는, 가을의 어느 맑게 개인 날의 풍경을 본 후 '이 모든 풍경에서 다른 것은 모두 남기고 오직 사람들만 지워버린다면 여기가 천국일 것이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아름다운…… 천국.'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은 사람들이 풍경에서 지워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표현에서 콕 찝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을 지워버린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아름다운 천국일 것이라고.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그런 천국. 그런 천국이라면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더 아름답고, 더 의미있는 그런 천국이다.

  마지막으로, '서유진'이라는 인물이 눈물 나게 인간적이고 또 용감해서였다. "근데 왜 그렇게 떨어. 무서워하지 마. 선배는…… 용감하잖아."라는 강인호의 말에 서유진은 "그래? 그랬어? 이상하다, 난 늘 무서웠는걸."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사실 그녀도 무서웠던 것이다. 눈앞에 펼처진 편안한 길을 놓기가 그녀라고 쉬웠겠는가, 유별난 척한다며 쳐다보는 비난의 시선을 그녀라고 감내하고 싶었을까? 그렇지만 그녀는 역시나 용감하게 자신이 감당하려고 했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죄인 것처럼 여기며 누군가는 필요 이상의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그녀는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게 아니라 세상이 자신을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것이다.


  '서유진', 그녀가 싸울 필요가 없는, 그녀가 그냥 그녀일 수 있는, 세상을 얼른 마중 나가고 싶다.

  일단 그러러면, 나부터 가드 좀 올리고 잊지 말아야 할 질문에 대답하고 진정한 의미의 싸움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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