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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9. 2022

미움받을 용기

너 자신을 속이고 사랑받느니, 너 자신을 드러내고 미움받는 게 낫다

  2015학년도 1학기 <사회 보장론>이라는 전공을 수강했다. 학기 말에 교수님께서 돈 주고 사서 봐도 아깝지 않다며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권하셨다. 이후 교내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했지만, 번번이 대출 중과 예약도서라는 글만 나를 반길 뿐이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동네 도서관에 들러 도서를 예약했다. 그런데 한 달이 넘게 지난주에야 예약 도서를 빌릴 수 있다는 도서관 문자를 받았다. 도서관이 여는 시간에 맞춰 9시가 되기 조금 전에 도서관에 도착해 책을 대출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 며칠 전, 베스트셀러는 쳐다보지도 않는 친구가 이 책을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궁금하던 참이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이 책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목을 보고 내용이 대충 예상이 가서 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의지에 불타오르지만, '~해라', '~ 하지 마라'라는 식으로 흘러가는 자기 계발 서적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미움받을 용기』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구스타프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사상과 철학을 접목하였다. 청년과 철학자가 서로 질문하고, 대화하는 형식이다. 새롭게 깨우친 부분도 있었고, 너무 극단적이지 않았나 싶은 부분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충실한 게 분명하지만, 각자의 내면에 있는 목표와 동기가 그들이 더 진지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 게 아닐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까'도 중요하지만,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검토와 반성이 그 시작이지 않을까? 나는 이 두 가지 예에서 앞의 적은 것처럼 의문을 갖은것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시각과 마음가짐을 얻었다.


청년
선생님의 지론은 계획성 있는 인생을 부정할 뿐 아니라 노력까지도 부정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고 맹연습해 마침내 동경하던 악단에 들어가 활약하는 인생이요. 아니면 열심히 공부한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인생이라든지. 모두 목표와 계획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인생이라고요!

철학자
즉 그 사람들은 산 정상을 목표로 묵묵히 전진했다는 말인가?

청년
물론이지요!

철학자
과연 그럴까? 그 사람들은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았던 건 아닐까? 즉 길 위에 있는 인생이 아니라 항상 '지금, 여기'를 살았던 거지. 이를테면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꾼 사람은 늘, 당장 연습해야 할 악보를 보면서 한 곡, 한 소절, 한 음에만 집중했을지 모르지.

청년
그렇게 해서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철학자
이렇게 생각해보게. 인생이란 지금 이 찰나를 뱅글뱅글 춤추듯이 사는, 찰나의 연속이라고. 그러다 문득 주위를 돌아봤을 때 "여기까지 왔다니!"하고 깨닫게 될 걸세. 바이올린이라는 춤을 춘 사람 중에는 그대로 전문 연주자가 된 사람이 있을 거야 사법고시라는 춤을 춘 사람 중에는 그대로 변호사가 된 살마이 있을 테고. 집필이라는 춤을 추고 작가가 된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 어쨌든 저마다 다른 장소에 다다를 거야. 단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의 삶도 '길 위'에서 끝났다고 볼 수는 없어.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청년
지금을 즐기면 그걸로 충분하다?

철학자
그래. 춤을 출 때는 춤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춤을 추면서 어디론가 가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지. 그래도 춤춘 결과 어딘가에 도달은 하겠지. 춤추는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아.

청년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런 흔들리는 바람에 내맡기듯 살아가는 인생을 누가 인정해줍니까!

철학자
자네가 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인생은 '키네시스(kinesis)적 인생(키네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운동'을 말한다. 어떠한 가능성이 있는 사물(뒤나미스, 잠재태)이 목적을 완전히 실현한 상태(엔텔레케이아, 완전현실태)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정해진 목적을 향해 가는 운동이다.)'이라고 할 수 있네. 그에 반해 내가 말하는 춤을 추는 인생은 '에네르게이아(energeia)적 인생(에네르게이아란 현실태라고 하여 키네시스 중 목적의 완성보다는 '실현해가는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실현이 되어가고 있는 상태, '과정의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실행되고 있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지닌다.)'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청년
키네시스와 에네르게이아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인용해보겠네. 일반적인 운동-이를 케네시스라고 하네-에는 시점과 종점이 있네. 그 시점에서부터 종점까지 이르는 운동은 가능한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급행열차를 탈 수 있다면 일부러 역마다 정차하는 보통열차를 탈 필요가 없는 것처럼.

청년
단적으로 말하면, 변호사가 된다는 목적지가 있다면 되도록 빨리, 되도록 효율적으로 거기에 도달하는 편이 낫다?

철학자
그래.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여정은 불완전하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말이야. 그것이 키네시스적 인생일세.

청년
아직 가는 중이라는 거군요?

철학자
그렇지. 반면 에네르게이아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된 운동을 가리키네.

청년
하고 있는 것이 이루어졌다고요?

철학자
달리 말하면, '과정 전체를 결과로 보는 운동'이라고 할까. 춤을 추는 것이나 여행하는 것처럼 말이야.

청년
아, 혼란스럽네요…… 여행은 대체 왜죠?

철학자
여행을 하는 목적이 뭐지? 예를 들어 자네가 이집트로 여행을 갔네. 그때 자네는 되도록 효율적으로, 되도록 빨리 쿠푸 왕의 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에 도착했다가 그대로 최단거리로 돌아올 텐가? 그런 건 여행이라 부를 수 없지. 집에서 나온 순간, 그 자체가 이미 '여행'이네. 목적지를 향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순간이 '여행'이야. 물론 어떤 사정이 생겨 피라미드에 도착하지 못한다고 해도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네. 그것이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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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선이 아니라 점으로 본다는 아들러의 사상을 읽으면서 15년 4월 9일에 영화 <스물>을 보고 나서 적은 다이어리의 일기를 떠올렸다.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스물의 문턱에서 나는 두 갈래 길 중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그 자리에 멈춰 나를 지나가는 이를 쳐다보기도 하고, 근처를 서성이는 친구와 이야기도 좀 나누고, 먼저 간 이의 뒤꽁무니를 좇거나 아직 내 뒤에서 갈림길에 놓이지 않은 이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2015년. 스물의 3년차.
지금 나는 걷고 있나. 뛰고 있나.
아직 멈춰 서 있나.
그것도 아니면 뒤돌아가는 중인가.

모르겠다.

  인생이 선이 아니라 '점'이었다는 걸, 키네시스가 아니라 '에네르게이아'적인 삶이라는 걸, 알았다면 나의 스무 살 문턱이 조금은 수월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알았다고 하더라도 스물세 살의 나는 지금과 같았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이었지만, 대학교 졸업반의 내가 있기까지 이런저런 일을 겪고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면서 요즘의 나는 '점묘화' 같은 인생을, '여행' 같은 삶을, 알 수 있었다. 알았다고 해야 하나, 느꼈다고 해야 하나. '개구리 뒷다리'를 소리 내면서 올라가는 입꼬리처럼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내가 살아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의 철저하게 직접 얻은 가르침을 이렇게 글로 정리된 책으로 읽으니 새삼 신기하다.


  스물의 4년 차가 다가오고 있다. 드래곤볼의 '에네르기파' 대신 나는 '에네르기아'!!!!!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간 끝나니까'라고 나지막이 속삭이시는 이상은 님의 '삶은 여행'이라는 곡을 틀어놓고 한참을 흥얼거린다.

  언젠가 끝난다는 것은 분명하니까 이왕이면 많이 즐기고 누리면서 함께 삶을 여행하자!


  우리 조금만 천천히 갑시다. 멀미 나! (깨알 그사세 주준영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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