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y 09. 2022

이게 다예요

당신은 당신 됨됨이 그대로예요, 난 그게 기뻐요

  N드라이브를 뒤적이다 보니까 20150515 일자로 사진이 있었다.

  『이게 다예요』라는 책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어 필사하지 않고 사진으로 찍어뒀던 거였다. 사진으로 찍어 텀블러에도 올렸었고, 친구에게 보내기도 했었다. 나름 바쁜 2015년 상반기를 보냈는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따로 포스팅을 하려고 마음먹다가 의외로 놓치는 작품들이 더러 있다. 이 책도 그래서 한 달이 지나서야 글을 적는다.


  『이게 다예요』는 1994년 11월에서 1995년 8월까지의 일기를 엮은 것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께선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자신의 오랜 연인 얀 앙드레아를 향한 글을 일기에 남긴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는 그 두려움을 짊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진심을 써 내려갔다.


  1925년에 태어나신 우리 외할머니를 뵐 때면 지금도 정말 고우시고, 생각하시거나 말씀하시는 것도 가끔씩 낭랑 18세 소녀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외할머니랑 어머니를 뵐 때면 '마음은 늙지 않는다'라는 게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 참 순수하구나. 순진하구나. 소녀 같구나.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분명 이 분들도 고생이라는 걸 하지 않고 살거나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고 살지 않았을 텐데, 어쩜 이렇게 때 묻지 않고 그대로를 간직하며 살고 계시는 걸까.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저렇게 항상 소녀 같고,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나는 얼굴에 수줍음을 띤 사람을 좋아한다. 쉽게 기대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고, 어쩔 줄 몰라 얼굴을 붉히기도 하는 사람이 좋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드러난다는 건 아직 어리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게 좋다. 세상살이 물들지도 않고, 자신이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 좋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가슴에 확 와닿는 감동이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사진을 찍은 게 바로 그런 부분이다. 특히나 가장 좋은 부분은 이것.

  '당신은 당신 됨됨이 그대로예요, 난 그게 기뻐요.'


  있는 그대로의 네가 좋다는 말처럼 반가운 말이 또 있을까. 가끔씩 친구들이 적어줬던 편지나 댓글을 읽곤 한다. 어저께도 한 친구의 댓글을 다시 읽었는데, 마음이 찡했다.

  "대학교에 와서 많이 친해지고 초반에는 너의 밝은 면과 남을 대하는 태도가 참 좋았는데 지금은 그냥 네가 좋아유!!!"

  누가 봐도 좋은 모습이 아니라, 그냥 나라서 좋다는 말이 참 고맙다.

  나라는 사람은 내 얘기도 쉽게 잘 못하고, 인간관계에 미숙하다. 눈치가 없는데 눈치를 잘 보려고도 하지 않는 편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무신경하고, 연락도 먼저 하거나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타고나기를 귀엽지가 않아서 애교 부리는 것도 어색하다. 재치 있는 입담이나 우스운 농담에도 재주가 없다. 생각이 많아지면 말이 급격하게 없어지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얼굴에 딱 드러난다. 어른 공포증이 심하기도 하고, 안 어울리지만 낯도 꽤 가린다. 낯간지러운 말을 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나를 그냥 나라서 좋다고 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든든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나의 그대로가 좋다고 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더 좋은 내가 되고 싶다.


  요즘 성시경 씨의 '당신은 참'이라는 곡을 즐겨 듣는다.

  당신은 참 내게는 참 그런 사람. 바보인 날 조금씩 날 바꾸는 신기한 사람
가지 마라 이 순간이 내게도 불빛 같은데


  함께 바다를 갔던 작년도, 각자 책상 앞에서 공부를 하는 올해도, 나한테는 여전히 불빛 같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하늘 아래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우와. 진짜 웃긴 게 이 글을 아침 9시에 쓰고 있다. 나는 아침 챙겨 먹고 이렇게 센치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뇨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침이 고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