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y 20. 2022

눈으로 만든 사람

기다리기로 한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할까. 어떤 날은 조금 화가 난다.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화를 감당해야 하다니.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불편을 감수해야 하다니.

  “너는   물어볼  있을 때만 전화하지.”
  친정엄마가 투정 섞인 핀잔을 했다. 강윤희는 자신이 지금까지 친정엄마한테 물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어떤 콩은  밥에 넣어 지어도 계속 딱딱한지, 잡채에 마늘을 넣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녹말가루는 뜨거운 물에 풀어야 하는지 찬물에 풀어야 하는지…… 하지만 강윤희가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엄마는 어떻게 세상을 믿을  있었던 것인지 강윤희는 궁금했다. 어떤 믿음이 열한  딸과 스물세  시동생 둘만 남겨놓고 여행을   있게 했던 것인지. 강윤희는 살아생전에 그런 얘기들을 엄마와   있는 일이 올까 생각했다.
_120~121, 눈으로 만든 사람
 “엄마
  “.”
  “그때 나한테  그랬어?”
  나는   뒤에 항상 정적이 따라온다는  안다. 은욱이가 자기 애를 자기 쪽으로 끌어간다. 엄마는 자리를  구실을 찾는 사람처럼 눈으로 뭔가를 찾고 있다. 운욱이가 아이 가슴팍에 붙은 밥풀을 털어내다가 엄마한테로 상체를 기울인다. 술도  먹었는데  저러냐고, 그런 말을 속삭였을 것이다.
  “머리끈을  바퀴만  돌려 묶었어도 됐잖아.”
  은석이가 보고 싶다.
  “내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알아, 몰라?”
_206, 美山


  익숙해서일까, 편해서일까. 의도하지 않았던 불행 후에 소설 속 화자들의 화가 너무나 명확하게 내 사람인 '어머니'에게로 향한다. '방치'라는 것 또한 때에 따라 무관심이나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건 상처의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가 아닐까.

  쉽사리 드러내기 어려운 상처를 지닌 화자들의 슬픔이나 분노가 우리가 사랑하는 특정 인물에게만 치우치는 것이 안쓰럽고 마음이 쓰였다.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트라우마가 사과를 받는다고, 용서를 구한다고, 아물어질 상처가 아닐 것을 모르지 않는다. 모른  상처가 곪거나 엉뚱한 곳으로 화가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걸 피해자의 잘못이라고만   있을까. 나는 그럴 수는 없을  같다.


  <눈으로 만든 사람>의 경우에는, 기혼 여성의 경우가 많았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고, 또다른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불행의 굴레. 가깝기 때문에 가깝다는 이유로  상처 주기 더 쉽고, 용서받기 더 어려운 우리들.

  기다리기로 한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는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자  집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담자를, 상담자는 기다린다.  모래치료실이 안전한 곳이며 모래 상자 안에선 무엇을 해도 허용된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기다리는 것으로 전달한다.
_141, 나와 내담자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무엇을 해도 허용되는, 최선을 다해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는, 모래 상자와 모래 치료실이 모두와 함께하기를. 상처를 아예  받고  수는 없겠지만, 그게 극복 가능한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바란다.


  덧붙여서,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단연코 책 뒤표지의 황정은 소설가의 추천글이 놀라워서!

최은미 작가를 보려고 사람 모인 자리에 나가서 최은미 작가가 있느냐고 여기와 있느냐고 묻고 다닌 적이 있다. 그를 만나 당신의 소설이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말하게 될까봐 말할 기회가 영영 없을까봐 초조했다. 나는 최은미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찢어지고 쪼개지고 부러지고 뜯어지고 찢어지고 찢어지는, 뻔뻔하게도 찢는 이가 있어 찢어지는 여자들의 얼굴을 안다. 최은미 작가가 인근에 있는  같다._황정은(소설가)
매거진의 이전글 도서관 런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