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내년 봄 축사 초안)
3월이면 봄이 오고, 선풍기 꺼내면 여름 오고, 하늘이 높아질 때쯤 가을 오고, 밤이 길어지면 겨울 오는 줄 알았습니다.
22년 유월 여름, 합정역 한 카페에서 까눌레와 소금 초코 라테에 감탄하는 저를 앞에 두고 결혼식 축사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야 제 모든 계절이 ㅁㅈ이와 함께 오고 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ㅁㅈ이 생일을 챙겨야 비로소 봄이고, 함께 파랑과 초록을 누벼야 여름이고, 제 생일을 핑계 삼아 안부를 주고받으면 가을이고, 서로의 새해 복을 주고받고 나서야 그제서야 겨울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ㅁㅈ이는 저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었네요.
앞으로 저보다 더 빼곡하게 ㅁㅈ이와 사계절을 동고동락할 눈앞의 새신랑과 ㅁㅈ이에게 영원한 축하를 보내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여름방학을 마친 아홉 살에 전학을 가서 처음 ㅁㅈ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90살까지 산다면 이 친구는 저의 열에아홉입니다.
사물함에는 항상 우유에 타 먹는 제티를 맛별로 상비하고 친구들이 모르는 걸 곧잘 가르쳐주던 초등학교 시절, 교내 도서관 사서를 하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집에 데려가 피아노도 쳐주던 중학교 시절, 모의고사 날이면 만나 멀지 않은 미래를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 초대해 맛있는 걸 대접해줬던 대학교 시절, 나고 자란 곳이 아닌 다른 지역 다른 국가에서의 시공간도 함께 할 수 있게 된 지금까지. 함께한 모든 시간이 알알이 탐스럽고 복됩니다. ㅁㅈ이 덕분에 어느 것 하나에도 추억할 것이 이리 많아 허투루 살지는 않았구나 하고 안도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느 시기를 돌아봐도 또래보다 똑똑하고 야무지던 제 친구 ㅁㅈ이는 스스로에게는 무던하게 넘어갈 줄을 알고 자기 사람에게는 부단하게 노력하는 천성이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큰 마음을 지닌 ㅁㅈ이가 커다란 행복에 웃을 일이 많을 수 있게, 알아서 배려할 아이니까 그 마음까지도 헤아려서 서로 사랑하고 의지가 되어주시기를 제 친구를 신부로 맞은 신랑님께 바라고 바랍니다.
각자 살아온 삶보다 함께 살아갈 삶이 더 긴 서로에게 서로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기를. 과거는 품어주고, 현재에 함께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만으로 이미 소원 성취 같아서 그 밖의 여남은 것들은 욕심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저 둘만으로 충만하기를 바라며 축사 마칩니다.
ㅁㅈ아, 조금 더 같은 챕터 안에 우리로 남기를 바라던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네가 결혼 소식을 전하며 웃을 때 반짝반짝 빛이 나서 나도 너를 따라 다음 챕터로 넘어갈 용기가 생겼어. 언제나처럼 네 삶으로 깨달음을 줘서 고마워. 마음으로부터 축하할 수 있어 누구보다 기쁘다, 정말.
ㅁㅈ아,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 오늘은 사월 중 가장 기쁜 날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