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도 너도 강한 사람들이야”
경아는 가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의 다음 생을 상상해 보곤 했다. 다음 생이지만 할머니는 과거로 갔을 것 같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왜 다음 생은 꼭 미래라고만 생각할까.
_238, 조만간 다시 태어날 작정이라면
<조만간 다시 태어날 작정이라면>에서 경아는 "사람들은 왜 다음 생은 꼭 미래라고만 생각할까"라고 의문을 품는다. 그렇다면 '경아'의 다음 생은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윤경준, 그러니까 윤경아였을까.
한정현 작가는 인물들에게 동명을 주고 가로 세로로 잘 엮어 멋지고 탄탄한 옷감을 만들어낸다.
<괴수 아키코>에서 아키코는 가수 김추자 님이시지만, <대만호텔>에서 아키코는 "산책하는 건 어떤 가능성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낭만적인 사람이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 주희는 해녀 이 씨에게 '이보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했고, <오늘의 일기 예보>에서 해녀 이 씨에 손주이자 한서의 조카의 이름은 '이보나'다.
<생물학적 제인>은 제니의 생모지만,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는 제성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안나 서의 한국 이름은 '화련'이다. 그리고 <대만 호텔>에 나오는 지혜로운 사람의 이름도 화련이다.
<조만간 다시 태어날 작정이라면>에서 친구들이 경아의 오타루 인력거와의 사랑을 말할 때는 <줄리아나 도쿄>가 떠올랐다가 <과학 하는 마음>에서 사츠케가 인력거라는 말이 있었나 도쿄에서 만났던 거 아니었어? 막 그런 생각을 했다.
다른 한편으로, 한정현 작가는 주어진 이름에게 자신이 선택한 이름으로 살아가는 삶을 보여준다. 그들의 낙관은 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강한 사람들이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 제성은 스스로를 '제인'이라는 삶을 준다. 제성이었다면 니나 시몬을 좋아할 수는 있어도 미군 클럽에도 자신이 원하는 드레스를 입고 니나 시몬 노래를 부를 수는 없었을 거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에서 화련은 '안나'라는 삶을, 경아는 '경준'의 삶을 각자 스스로에게 선사한다. 화련은 '안나'이기에 간호사로 활동할 수 있고, "낙관"할 수 있다. 경아는 '경준'이기에 누군가를 경찰서에서 빼낼 수도 있고, 책도 쓸 수 있다.
서로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은 인물들을 옴니버스로 묶어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고 커다란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우리 모두 사연 없는 무덤 없고 사정 없는 사람 없다고 말하곤 했는데, 개인은 자신의 삶에서만 주인공이므로 타인의 삶에서 볼 때는 하나의 조연에 그치고 만다. 그런데 여기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선 한 단편에서 조연이었던 인물이 다른 단편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만들고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를 말한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 한서는 제인의 미군 클럽 공연을 보러 가는 길에 “그래서 제인이야, 혁명이야?”라는 질타 섞인 질문을 받지만, <오늘의 일기 예보>에서는 "한서는 한 사람을 사랑해보았으니까. 그래서 모두를 위한 혁명도 말할 수 있던 거 같아요."라고 자신을 회상하는 친구가 생겼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에서 안나와 경준이 오래 꿈꿔왔던 관광하는 모던 걸의 삶이 <과학 하는 마음> 경아에게로 이어진다. 그리고 "모던 걸은 원래 자신의 선택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 그러므로 관광하는 모던 걸 또한 어디든 갈 수 있다."
“낙관하자.”(266쪽) 이 낙관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지 않고 갖고 싶은 이름을 스스로에게 지어주는 사람의 의지로부터 시작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_339, 작품 해설 우리는 더 많은 사랑과 아름다움을, 인아영(문학평론가)
“나는 이 사랑의 이야기들 속에 천사가 산다고 생각한다.”
이장욱(소설가)
인아영 문학평론가의 작품 해설과 이장욱 소설가의 추천사에 공감한다. 과연.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 믿지 않고, 갖고 싶은 이름을 스스로에게 지어주는 사람의 의지로부터 시작되는 낙관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사랑의 이야기들 속에 천사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