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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4. 2022

2022년 08월 15일

대프리카 서랍장 언박싱

2022년 08월 15일 월요일 오늘의 풍경.


나는야 서랍이 많은 수납장.

이미 꾸역꾸역 많이 담아두고서도 더 넣을 게 없나 계속 두리번거린다.

아마 앞으로도 숱하게 반할 테니, 내 삶이 계속되는 한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할 거다.


전혀 모르고 살던 생전 처음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어 감탄하는 것은 즐거운 일.

그리고 그 새로움을 주워 담으려 서랍을 열 때마다 반듯하게 개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는 건 소중한 일.


내 서랍 어디를 열어도 칸칸이 반갑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고마운 것들.

하하호호 요란스럽게 들춰도보고 어떤 날은 남몰래 쓰담거리기도 한다.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새삼 이것이야말로 내 삶의 훈장.


나는 이제 '현풍'을 가려면 최소 두 번의 환승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은삼이의 투명한 지붕을 알고, 지붕이 닫히는 줄 몰랐던 친구 어머니의 귀여운 에피소드도 알고, 친구가 구독하던 잡지를 알고, 커피맛이 나는 초코파이를 알고, 친구가 좋아하는 카페의 대표 원두를 알고, 직접 모는 오리배의 속도를 알고, 유니폼이 주는 동지 의식을 알고, 인풋이 있어야만 아웃풋이 있다는 아쉬움이 뭔지를 조금은 알고, 친구의 퇴근길을 알고, 친구의 키에 비해 작은 발 사이즈(=225)를 알고, 전기차 주차 비용 할인을 알고, 친구에게 미사용 기프티콘이 26개인 것도 알고, 친구들이 꽤 바다에 진심이라는 걸 알고, 샌들이나 슬리퍼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비를 맞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내가 2022년 8월 15일 대구공항 가는 길 은삼이에서 바라본 뚱뚱한 백팩 둘/초록 종이가방 둘/갈색 종이가방 하나/간격을 둔 구름들이 사이좋게 걸린 풍경을 서랍장에 두고 한동안 자주 꺼내볼 것도 안다.


'지금이 우리에게는 꿈'인지 '죽어도 상관없는 지금'인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의 어디든 귀를 갖다 대면은 맥박소리가' 뛰는 게 어떤 건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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