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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5. 2022

2022년 08월 30일

따로 또 함께 티타임

저녁 해가 눈에 띄게 짧아지고, 출근길마다 여름을 알리던 능소화도 이제 온데간데없어. 가을이 오는 줄은 알았는데, 여름은 가는 줄도 모르고 늦장을 부렸나 봐. 가을이 되어서야 여름 끝 누군가의 생일을 챙기는 일은 조금은 낯간지럽고 또 많이 게으른 일인 걸 모르지 않아. 하지만 세상은 늦은 걸 알면서도, 늦게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겠지. 그게 지금 나한테는 너에게 늦은 생일 축하 편지를 쓰는 일이야.


8월 중간에 대프리카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남은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 짧은 여행을 마치고 대구공항에 가던 자동차 뒷좌석에서 창밖 풍경을 보면서 몇 번이고 꺼내볼 풍경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자주일 줄은 몰랐어. 이번 여름 막바지는 대프리카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그러기만 하다가 간 것 같아.


혼자 밖을 나서는 점심에는 유독 네 자리를 생각해. 네가 아니라 네가 하루 꽤 많은 시간을 머물 그 자리를. 거기서 끼니를 거르는 날도 있을 거고, 끼니를 때우는 날도 있을 테지. 화장실이 자유롭지 못할 만큼 바쁘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하고, 딱 너처럼 반듯하고 예쁜 마음을 가지고 다니는 분들만 만났으면 좋겠다고 터무니없는 기대도 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쉽고 좋기만 할 수는 없더라도 스스로가 대견한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전부를 다 알지도 못하고, 아마 다 알 수도 없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응원하는 마음이라도 보내고 싶어.


날이라도 좋은 날에는 은삼이 안에 있던 캠핑 의자를 펼쳐 다같이 앉아 봤어야 했는데, 하고 아쉬워하고 있어.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부재와 함께하는 오후를 보내. 지금 나와 함께하는 것은 부재지만, 우리 함께한 시공간들의 존재가 그 부재마저도 고맙게 만들어. 네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 참 많아. 대전 복층 게스트 하우스도, 광주 펭귄 마을과 청년다방 고구마 라테도, 그리고 제천 또깨비 드라이브 코스도!


윤슬, 저녁놀, 새벽 네 시 반, 여름밤, 십센치 ep 앨범, 무한도전 가요제, 가을방학 1집, 영화 <희재>의 도입부, 미온수, 710ml 텀블러,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미드 프렌즈와 모팸, 짧고 둥근 손톱, 그늘진 속눈썹, 짝 보조개, 새까만 눈동자, 피아노를 오래 친 손가락, 올라간 입꼬리, 두유에 파우더 추가한 그린티 프라푸치노, 밤편지 가사, 빙과류, 자동차 방향지시등 소리.

어느 하나 좋아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그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애정하고 애정하는 나의 은둘기야. 세상에 좋은  ~ 많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까이 두고 기꺼이 누리며 살갑고 다정한 오늘 보내!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를 받는 동시에 생일 축하를 하는   의미 있다. 히히.


나는 봄날의 햇살 받침잔이 오는 대로(9월 15일 오후 17시 26분 도착) 네가 마련해준 티타임을 가질 요량이야. 호락호락하게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제대로 나만의 시간을 따로  거야. 다정보스의 하루에도  너만을 위한 시공간이 함께하기를!


사랑해 마지않는 9월, 날마다 다정이 돋고 마음이 피고 사랑이 달린다. 매일이 수확이야. 역시 열매달.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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