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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06. 2024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

홍콩의 ㅅㅁㅎ, 내일을 기대하는 일이 수월하던 요 며칠

홍콩 여행 가서 아침 사과처럼 꺼내 먹은 책

“물론 좀 흐릿하게 살아도 괜찮고 혼자 있을수록 명징해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내가 쓰러져도 그 역할은 쓰러지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나는 원체 무른 사람이라서 이런 글을 읽으면 좀 힘이 난다. 쓰러지지 않는 뭔가가 있다면 물렁하고 동그란 나도 단단하고 네모나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지난 여름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얼굴들이 쏟아졌다.”

정말 그랬다. 마음속으로 누군가들을 좋아하며 여름을 보냈다. 여행지를 거닐듯이. 누군가의 장점을 찾아내는 데 탑티어급 재능이 있다(정말 그렇다). 장점을 조속히 발견하고 그 사람의 지배적 이미지로 설정한다(이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해 버림(!!!!!). 아무렇게 사랑해 버린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사람들을 좀 더 겪어 본 사람들이 은밀하게 경고장을 제출해 온다. 더 많은 경우에는 덜 겪어본 사람들이 경고장을 제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설사 당신에게 좋지 않은 사람이어도 나한테는 찰떡일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지금 당장 별로이고 잘난 것보다는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 애쓰는 모습에 항상 눈길이 가고 마음이 자주 묶였던 것 같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두었다. 민희가 또 저러네, 또 사랑에 빠졌구나, 하고. 어쨌든 내가 누구 좋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이러저러함에 대해 고발하는 사람이 수두룩 빽빽한 세상이지만, 아무에게도 고발당하지 않는 사람을 나도 만나보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ㅇㅁ를 설명해야 할 때가 오면 보통은 한의학을 공부했고 몸이 열 개여도 모자라고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갓생인 사람인데요 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구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일은 늘 조금 어려운 것 같다. 가끔 ㅇㅁ가 한 말이 제멋대로 데굴데굴 굴러가고 나는 그걸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되도록 그 말 그대로 들으려고 하지만 굴러가는 말을 내가 제대로 보기나 했을까 그건 어디까지나 그냥 바라다보는 거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감탄하는 수신자를 뭔가를 전달하는 게 더러 지친 날이 있지는 않을까 어떤 날에는 이런 고민을 조금 길게 해봤었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기울어진 경사를 기어서라도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올라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산이 있을 것이다. 나도 어디를 올라가긴 올라가는데 그게 어딘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내가 올라가는 건 뭡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산이 필요해. 명명할 수 있는 경사..!

“함께 자는 사람이 있으면 눈을 뜨자마자 꿈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희한하게 이런 걸 읽으면서 결혼 바이럴을 느낀다. 눈 뜨자 마자 말할 사람이 있고 당장 안을 사람이 있다. 너무 좋은데?!?!?

“비가 와도 달리기를 해야 하는 날이 있다. 특별한 날도 아니고 특별한 일도 아니다.”

산다는 건 대부분 비가 와도 달리기를 해야 하는 날의 연속이 아닐까. 특별하지 않은 것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랫동안 내 장래희망은 반듯한 마음이 번듯한 사람이었다.

“만일 우리가 만날 수 없게 된다고 하면, 그 다음 달에 만날 것이다. 그렇게 계속 우리는 다음 달에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기약 없음을 좋아하게 되었다. 수많은 작가님들 덕분이다. 계속 해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니는 이유는 전에 없던 행복을 알아가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약함 때문인데 그 약함은 역시나 나 혼자 하는 착각이겠지 생각하다가 말았다.”

 누군가의 약함으로 인해 사랑하게 되는 것도 좋고, 그러다가도 혼자 하는 착각이겠지 하고 누군가의 약함을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특히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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