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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7. 2022

맹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맹자보다 공자가 더 유명한 이유가 뭔지 아나?”

   <역사의 이해>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질문을 던지셨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논어》는 읽어봤지만 《맹자》는 읽어본 적이 없었다. 정책과 관련된 고전을 고민하다가 이 날의 질문이 떠올라 《맹자》를 읽기로 했다.


  ‘맹모삼천지교’와 ‘성선설’로 유명한 맹자는 전국시대 때의 사람으로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왕도정치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오랜 유세의 생활을 해온 인물이다. 《맹자》의 저자가 바로 이 ‘맹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여러 근거를 종합해봤을 때, 맹자의 주도 아래 맹자의 제자인 만장과 공손추가 참여해 쓴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맹자》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남송의 주희가 《논어》, 《중용》, 《대학》과 더불어 ‘사서(四書)’로 삼음으로써 대표적인 유가 철학의 이론서로 인정받는다. 전국시대의 사회적 혼란과 사상적 위기 상황 속에서 유교의 이념을 현실에 접목시키려고 했던 맹자의 땀과 노력이 《맹자》에 방울방울 맺혀 있다. 이 책은 유학의 근엄한 경전이 아니라 실용적인 정치사상서이다. 또한 도덕적인 본성의 선험적 보편성 제시와 왕도정치의 실현을 이루고자 했던 맹자의 글에서 ‘우리의 삶’도 찾을 수 있다.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을 ‘볼매’라고들 한다. 책에도 ‘볼매’가 있다면 나는 《맹자》라고 말하고 싶다. 맹자의 글 일부에 내 생각과 느낌을 더해서 읽어보기를 권장해보려 한다.

 

   첫째, 유학의 핵심은 ‘인의(仁義)’에 대해 알 수 있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거리낌 없이 하는 일에까지 확충해서 적용하는 것이 인이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거리낌 없이 하는 일에까지 확충해서 적용하는 것이 의이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내버려 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도다. 사람들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인의(仁義)라는 건 ‘모두’가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을 ‘거리낌 없이 확충해서 적용하는 것’이다. 또한 도덕 교과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각각의 자신에게서 평생에 걸쳐 찾고, 닦아야 할 마음이고 길인 것이다.

  둘째, ‘정치’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지금 왕의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니,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백성의 부모인 왕으로서 정치를 하면서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한다면 백성의 부모다움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가르침을 원하는 양혜왕에게 맹자가 한 말이다. 이 대화를 보면서 나는 영국의 대법관이었던 토머스 모어가 인클로저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했다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하게 하는 요인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양입니다. 예전에는 얌전하고 조금씩 먹던 유순한 양들이 이제는 무서운 식욕으로 사람까지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절도범의 양산이 당시 영국의 사회 경제적 산물임을 지적했던 토머스 모어와 살찐 짐승과 굶주린 백성을 비교한 맹자의 ‘정치’와 ‘정의’는 결국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에서 맹자는 사상가 이전에 정치가였던 것이다.

  정의와 정치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정치가와 사상가들에게 고민을 안겨다주었고, 우리는 《맹자》를 통해 동양의 위인 중 한 명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 ‘사람’‘삶’에 대한 철학이 생긴다.

  “사람들은 추구해야 할 도가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먼 곳에서 찾고, 해야 할 일이 쉬운 곳에 있는데도 어려운 곳에서 찾는다.”
  “사람이란 하지 않은 것이 있은 후에야 무엇인가 하는 것이 있게 된다.”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진정 부끄러워할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수많은 위인들이 훌륭한 명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남겼다. 일 년에도 수십 권씩 발행되는 자기 계발 서적들의 ‘현명해지는 법’, ‘행복해지는 법’ 등 방법 알려주기도 끝이 없다. 그런 상황에 지치기도 할 때쯤이었는데, ‘~해라’, ‘~하지 마라’의 명령이 아니라 저렇게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전해주다니, 맹자에게 참 고마웠다. 위의 세 글 말고도 더 많은 대화와 글들이 나에게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었고, 나만의 삶의 철학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맹자》는 500페이지가 안 되는 한 권의 책으로 남아 내게 이렇게도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 책을 주말 동안 두 번 더 읽어봤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좋은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 좋았던 이유와 두 번째 읽었을 때 좋았던 이유, 그리고 세 번째로 읽었을 때 이유가 또 각각 다르게 다가오는 구절들도 있었다. 한 번에 다 읽지 않아도 좋다. 문득 심심할 때 꺼내어 하나의 대화를 읽고 다시 내려놓는 연속이어도 좋고, 읽고 싶은 부분부터 찾아 읽은 후 나중에 순차적으로 정독을 해도 좋다. 어떻게 읽어도 좋지만 조금씩이라도 꼭꼭 곱씹으면서 읽으면 분명히 자신에게 남는 여운이 다를 것이다. 뻔하디 뻔한 이야기라는 오만과 어차피 어렵고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뒤로 하고 과감하게 자신을 위해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인생의 글도 하나 얻게 되었다. 정보의 홍수라고 일컫는 세상에서 누구나 쉽게 멋지고 강렬한 글귀들을 접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때뿐일 것이다. 꽃게 속 알까지 온 몸으로 스며든 간장게장의 간장처럼 두고두고 자신의 삶에 스며들기를 원하는 구절을 찾는 건 흔치 않다. 그것은 뭐랄까, 한 문장 또는 문단에서 자신의 진리를 찾아내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보통의 우리들은 진리를 찾기에 아직도 많이 미숙한 부분도 있고, 또 누군가 진리를 알려주려면 그 누군가부터가 진리를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온전히 느끼고 골똘히 생각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런 사람은 드물고, 되는 것 또한 힘들다. 각설하고 이런 이유들로 인생의 글귀를 얻는다는 건 참 값진 일이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내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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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가 남들과 다른 까닭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자는 인으로써 마음을 간직하고 예로써 마음을 간직한다. 인한 사람은 남을 사랑하고, 예를 지닌 사람은 남을 공경한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항상 그를 사랑하고,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도 항상 그를 공경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도리에 어긋나게 할 경우, 군자는 반드시 '내가 틀림없이 인하지 못하고 틀림없이 예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겠는가?'라며 스스로 반성한다. 스스로 반성해 보아도 자신이 어질게 행동했고 스스로 반성해 보아도 예를 지켰는데도, 어떤 사람이 여전히 도리에 어긋나게 대한다면 군자는 틀림없이 '내가 진심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고 다시 스스로 반성한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해 보아도 자신의 진심을 다했는데도 그가 여전히 도리에 어긋나게 대한다면 군자는 '이 사람은 몹쓸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금수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금수에게 무엇을 따지겠는가?'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에게는 죽을 때까지 지니고 가는 걱정거리는 있어도 일시적은 근심은 없다. 군자에게 있는 걱정거리는 이러한 것이다. '순임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그런데, 순임금은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서 그 명성이 후세에 전해지고 있는 반면, 나는 아직 시골의 평범한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이러한 것이야말로 걱정거리로 삼을 만하다. 그것을 걱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순임금처럼 해야 할 뿐이다. 그것 말고 군자가 근심하는 것은 없다. 어진 일이 아니면 하지 않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갑작스럽게 닥치는 근심이 있다 하더라도 군자는 그것을 근심으로 여기지 않는다.”

   다른 이들은 이 책을 읽고 어느 구절이 인상 깊을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이 말이 참 절절하게 다가왔다. 내 나름대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또 내 마음에 대해서 표현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일이 인간관계였다. 책에서 배운 대로만 한다고 모두 좋은 게 아니고, 적당한 때와 정도를 모르는 자기 피력은 관계의 악화를 가져올 뿐이다. 《맹자》에서 이 글을 읽는데, 처음에는 눈물이 날 것 같다가 좀 지나자 위로가 되었다. 저 말이 백 퍼센트 정답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하고 싶어서 아등바등 매달려있는 사람에게는 분명 하나의 빛이 되고, 길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저 글에서 찾았고, 일시적 근심이 아니라 평생을 지니고 가는 걱정거리에 대해서 더 몰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옳고 바르게 나만의 보폭으로 내 길을 우직하게 나아간다면, 그 길을 나에게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다. 설사 그것이 낭떠러지라고 할지라도 내가 진정이었다면 그 낭떠러지도 내게 길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역사의 이해> 교수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전하려고 한다.

  “공자와 다르게 맹자는 ‘역성혁명’을 이야기했다. 자네들이 왕이라면 말 잘 듣는 공자와 뒤엎을 수 있다는 맹자 중에서 누구를 좋아하겠나? 역사는 승자들의 이야기라는 것도 이런 차원의 하나일 수 있네.”

  교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생각했다. ‘역성혁명을 논하는 자를 내 옆에 두고, 역성혁명이 필요 없는 군주가 되겠다.’ 그리고 역성혁명을 인정했다는 것은 그 시대에서 굉장히 획기적인 발상이었고, 미운 털 박히기 딱 좋은 주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승자는 공자였을지 모르지만, 현대에 그리고 미래의 둘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사가 승자들의 이야기라고들 하는데, 역사는 계속 되니, 아직 우리는 누가 승자인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맹자가 승리하기를 바란다.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고 하는데, 난세는 또한 사상가를 낳는다. 맹자라는 인물은 분명 보통이 아닌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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