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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7. 2022

태도에 관하여

재능보다 사랑스러운 것은 '열심히'하는 것

  임경선 작가께서 쓴 《기억해줘》라는 소설이 내가 처음으로 임경선 작가를 접한 작품이었다. 초록색 표지가 마음에 들기도 했고, 나처럼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를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호감이 있었다. 그러던 터에 아는 언니께서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을 추천해주셨고, 며칠이 지나 친구도 이 책이 좋다며 내게 넌지시 이야기를 건넸다.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소설의 첫 문장이었다. 그 소설을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는 한 톤 다운된 분위기와 냉정한 심리 묘사가 어쩐지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소설이 아닌 이번 에세이를 읽자 인간적으로 뭔가 더 친밀해진 기분이다.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글쓰기'를 오랫동안 하고 있는 분이고, 남편과 자식을 둔 한 가정의 어머니이기도 하며, 나와 같이 어떤 작가를 좋아하며 그의 글을 곱씹어보는 독자이기도 하셨다.

 

  이 에세이 속에서 임경선 작가께선 굉장히 허리를 곧게 세우고 정갈한 언어로 이런 저런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분의 말씀처럼 보편성에서 벗어난 개인적인 정의 내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신'이랄까, 뭐 그런 비슷무리한 '자신만의 생각'을 지닌 사람이 멋있다. 그래서 임경선 작가께서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 이 다섯 가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펼치셨을 때 굉장히 기뻤다. 독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를 통해 내가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것 또한 내겐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다. 임경선 작가께선 확고하신 분이고, 그래서 합당한 근거를 들어 이야기하는 정의들이 새로웠다. 나와 다르다는 건 나에겐 커다란 '메리트'이다. 그만큼 더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태도에 관하여》를 읽으면서 한 친구가 떠올랐다. 임경선 작가께서 보여주는 자존감과 당당함이 닮아서일까. 지금까지 이렇게 자기 색깔이 뚜렷한 친구를 본 적이 없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를 분명히 아는 친구다. 좋은 것을 좋다고, 싫은 것을 싫다고 당당하게 표현한다.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서 더하거나 빼는 것이 없이 솔직하다. 자신의 판단과 믿음에 대한 강한 긍지가 느껴진다. 주관과 취향이 뚜렷하고, 소신이 있다. 쉽게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점이다. 자기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대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도 같지만, 기본적으로 의젓하고 대견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또 쉽게 기가 죽지 않는 것도 멋있다. 물론 내가 볼 때 이렇다는 것이다. 사실 그 친구도 많은 것에 흔들리고,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으리라.

 

  나에 대해 말하자면, 타인의 의견을 자주 그리고 많이 수용한다. 강의를 듣다가 교수님께서 "결과가 중요하다"라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셨다. 교수님 말씀을 듣고 과정 만큼 결과도 중요하고, 때로는 오직 결과만이 모든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걸 있겠다 싶어져서 포스팅했다.

 "누구나 '적당히'는 한다. 요점은 '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운이 좋은 사람은, 타고나길 '잘' 하게끔 태어나곤 한다. 재능보다 사랑스러운 것은 '열심히'하는 것!"

 

  그야말로 '심쿵'했다. 내가 과정이 아닌 결과만으로 평가되는 것을 씁쓸하게 여기면서도 수용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그럴 수도 있지만, 이럴 수도 있지'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두 줄의 문장이 내게 준 위로는 정말 커다란 것이라서 지금까지도 댓글을 가끔씩 찾아 읽곤 한다. 그러면 내가 예전부터 바라던 칭찬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걸 떠올릴 수 있다. 중학교 때 정말 누가 봐도 항상 이면지를 가득 끌어 안고 공부하던 친구가 있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을 때도 나는 그 친구를 보면서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친구가 멋있고, 대단했다. 타고난 것이 아닌 스스로 쟁취한 것이야말로 값지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저 포스팅을 읽을 때면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아는 '천재' 같은 친구가 있어서 감사하고, 또 잊었던 내 다짐이 다시금 떠올라 설렌다.

 

  이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좋은 건 물론 이 세상에 굉장히 많다. 그런데 이 친구를 알아가면서 나는 무언가를 꼽아 '이게 정말 좋아'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무언가를 좋아해서 그것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좋아할 수 있고, 남들이 모두 그렇다고 해도 아니라고 할 수 있고,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는 친구가 멋있고, 부럽다. 그리고 뭔가 이 친구에게서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은 정말 '자기스럽게' 그리고 '자기답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친구에게 배우면서 요즘 새롭게 염려하게 된 부분도 생겼다. 나는 타인의 실수를 '그럴 수도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한다. 그런데 이게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일 경우를 넘어서서 만약 어떤 일이 잘못되었는데, 바로잡지 않으려고 하는 건 나의 '무신경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좋게만 보려는 나의 '자기기만'이지도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무언가에 정말 자신을 쏟아부었다면 그렇게 쉽게 슥슥 모든 것을 웃어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론 그 과정에서 웃는 만큼 울기도 하고,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러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할 줄 알고, 또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내가 되려고 한다.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 관념은 갖춰야 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뭐가 나은 건지, 또는 딱 이렇다 저렇다 나눠지지 않는 부분들을 많이 느낀다. 내가 나를 키워 성장하면 그만큼 조금 더 곧게 허리를 펴고 세상을 살아나가야지. 나만의 프리즘으로 이 세상을 바라봐야지. 그리고 그 과정을 겪는 동안 임경선 작가께서 하신 말씀처럼 기꺼이 상처를 받아야지.

 

  흑백논리도 무섭지만, 회색논리도 염려스럽다. 좋아하는 만큼 쏟아붓고 싶다. 난 열심히 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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